2020년 8월 16일, 장마가 그친 날
이번 여름부터였다. 그동안 노숙인(홈리스) 이슈에 관심이 많았던 지라, 우연히 '아웃리치' 근무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다. 아웃리치(Oou reach)는 사회복지 용어로 거리에서 직접 노숙인(혹은 거리 청소년 등) 분들을 만나는 거리 상담이자 구호 활동이다. 서울의 지하철 역사에 도착하니 사회복지사 한 분과 재활에 참여하는 선생님 두 분이 나와있었다. 초면에도 친절하게 맞이해주셔서 감사했다.
지하철 역에 서있으니 노숙인 분들이 더러 찾아와 복지사에게 반갑게 말을 걸며 일상을 나누었다. 한 분은 구직을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한 분은 나를 보더니 또 새로운 사람을 뽑았냐며, '잘 부탁드려요. 근데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택하셨어요.'하고 궁금하다는 듯 물으셨다.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몰라서 우물 거리는 새에 다른 분에게 말을 걸러 자리를 옮기시기에 그냥 두었다.
빨리 답을 내어놓지 못한 이유는 생각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나는 노숙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돕고 싶은데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논리정연한 대답은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내가 해야할 일 같다. 우리는 2인 1조로 함께 역사 근처 골목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동행하던 복지사 분도 내게 '왜 하필 노숙인에 관심을 가지세요?' 묻는다.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때에 센터 담당자 분도 여자 분이라 좀 걱정스럽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기회가 되면 여성 노숙인 센터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요.'하고 대답한다. 여성 노숙인을 돕고 싶은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노출되어있는 역 광장이나 거리에는 남성 노숙인이 많고, 여성 노숙인은 적다. 여성 노숙인은 노출된 거리에서 안전에 위험을 느끼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건물 안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24시간 찜질방, 만화방, pc방, 공공화장실, 은행ATM 창구, 주차장, 폐건물 등 숨어 지내는 곳은 다양하다. 때문에 찾기가 어렵고 지원을 제공받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아웃리치를 경험하며 받은 질문 <왜 노숙인에게 관심을 가지세요?> 때문에 보다 구체적으로 홈리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노숙하는 선생님들의 체온을 재어드리고, 마스크나 양말, 면도기 등 생필품을 건네드렸다. 상담 기록지에 메모를 하고 응급 처치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조치를 취한다. 아웃리치 활동에 대한 메뉴얼을 읽고 갔는데, 관계를 맺고 재활 프로그램까지 이끄는 일련의 개입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웃리치는 단순히 구호활동이라기 보다는 관계를 유지하며 신뢰를 쌓는 일이다.
노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학습된 무기력'이 강하고, 거리 노숙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노숙 생활이 긴 사람일 수록 재활 목표로 나아가는 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거리 생활이 짧은 사람일 수록 탈노숙 기간도 짧아지는 것이다.
사실 학습된 무기력과 다양한 트라우마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찾아올 수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느낌이 아닐까. 살다가 누구나 희망이 없는 것 같은 극심한 무기력을 겪을 때가 있다. 특히 지금의 청년들은 구직난 속에서 수년을 구직 준비를 하기도 하는데, 기나긴 시기 동안 아무도 필요로하지 않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울함에 시달리다가 취업을 포기한다고 한다. 그렇게 취업을 포기한 인구는 '실업율'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의하면 이 비율은 청년의 경우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작년 8월 기준, 30만 명 증가 https://bit.ly/31UU5n4)
노숙인은 비록 중장년층과 노인이 가장 많지만 무기력과 우울함, 불안을 겪는 것은 청년들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나도 그런 시기를 겪었고 일을 하면서도, 또 일을 관두고 나서도 이러한 무기력과 불안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인지 나는 거리에서 만나는 분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가정 환경, 가난함, 실직, 이혼 등 비주거 생활의 시작은 다양하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기도 하고, 상처를 받고, 일을 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려서 또 다시 실직을 한다. 건강을 챙길 여유 따위는 없다. 가정의 해체와 일할 수 없는 아픈 몸 때문에, 월세가 밀리다가 원룸촌에서 고시원으로, 쪽방촌으로, 여인숙으로, 또 거리에서 지내게 된다. 비주거 생활과 거리 생활을 반복하다가 노숙인으로 낙인찍히는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다 체념하고 무기력한 생활을 하기도 한다.
내가 노숙인 거리 상담을 한다니까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들은 왜 시설에 안들어가? 왜 일을 안해? 그냥 일 안하고 그렇게 살고싶은 거지?" 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평소 기부 활동에 우호적인 지인이었는데도 집도 가족도 없는 빈곤함은 선뜻 이해하기가 어려웠나보다. 사실 시설에서 생활을 해보지도, 그 입장을 겪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바로 홈리스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육교 바로 아래, 수풀 사이에 한 남성 분이 텐트를 치고 살고있었다. 근처 골목 길에서 술을 드시다 잠든 분도 있었다. 홈리스 선생님들은 대체로 인사를 하면 또 인사를 건네주시고, 반갑게 맞이해주시기도 한다. 나는 인사를 나누며 나를 소개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여쭈어본다. 면도기, 양말, 컵라면 등을 나누어드리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끼니를 굶는 분들이 많았다. 8월 말이 되어가자 끼니라도 챙기기 위해 자발적 입소자 분들로 보호시설이 가득 찼다. 개인 공간이 없는 큰 방 하나에 사람들이 줄줄이 누워있다. 시설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거리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아, 당장 그 분들의 하루 끼니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걱정을 하며 컵밥이며 컵라면 등을 나르니, 한 홈리스 선생님이 '그냥 굶어야죠. 뭐."하며 익숙한 일처럼 말하여 마음이 안타까웠다.
일시적인 수혜가 많은 사회복지 일이 과연 이 분들을 도울 수 있을까, 첫 달부터 나는 그런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