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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Sep 09. 2020

회사를 관두니 남은건 병이라더니

자궁내막증에 대해서

회사를 관두었다. 관두면서 동료와 상사에게 내가 진로를 고민하고 있고, 건강도 안좋아서 당분간 쉬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몇 달간 내가 생리통을 수반하는 병 때문에 생리휴가에 연차까지 붙여쓰며 골골거리는 걸 보아온 사람들은 '생리통 때문에 아프구나' 하고 이해했다.


병원을 다니면서 '자궁내막증'이라는 병명을 받았는데, 설명을 해도 그게 어떤 병인지 알고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뭔지 몰랐으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대체로 여자 선배들은 '나도 자궁이나 난소에 혹 떼는 수술을 했었다'며(혹은 내 주변에도 수술한 사람이 있다며), 그 수술이 별 게 아니고 지금은 아이 낳아서 잘 지낸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그러니까 일을 관두지 말라고. 그런 말들이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회사 여성 30명 중에 6명이 근종이나 혹을 가지고 있었다


내 경험과 고민을 주변에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이 작은 회사에 비슷한 경험이나 수술을 받은 사람이 여럿 있는 것이 정상인가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여성이 30명 정도 있었는데, 야근이 많아서인지 자궁과 난소 혹으로 수술을 했다는 사람만 3명이었고, 수술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그 사람들도 나처럼 오래 앉아 있거나 혹이 눌리면 복통이 있었다.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 운동 부족, 기름진 식습관, 이런 건강하지 않은 생활이 여성의 몸에 공통적인 질병을 만들어내는 걸까? 정말이지 궁금했다. 그녀들은 또 수술을 하고 아이도 잘 낫고, 건강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병이 나아져서(출산 후에 생리통이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있다. 혹은 나처럼 여전히 병을 달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나 나는 병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내린 결심은 다른 일을 찾을 때까지 쉬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건강 되찾기가 퇴사의 목적 중 절반 정도는 차지했으나, 회사를 관두고 막상 찾아온 것은 '당장 생활비는 어쩌지'하는 지극히 물질적인 걱정거리였다. 


몸이 아파서 일을 관둘 경우에 정말 일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프다는 것을 의사가 증명하고 사업주가 휴직을 주지 않는 경우에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아픈지 증명하는 일이 어려웠다. 사무실 분위기가 가뜩이나 그냥 '생리통'처럼 여겨지는 병이었고, 사업주도 내가 떠나지 않길 바라던 상황이라 그런 부탁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회사 사람들과는 송별회를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회사를 관두니 남은 건 생활고와 아픈 몸뚱이


실업 급여를 받지 못한 바람에 쉬는 동안에도 생활비 걱정에 얼마나 마음이 쫄리던지. 다시 구직이 되긴 할까, 불안감이 가장 힘들었다. 일정기간 일했다면 내가 선택해서 직장을 관두었을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몸이 아프지 않더라도 심적으로 힘들거나 관계나 일이 너무 고되어 퇴사를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직 기간 동안 생활비 수익이 있는지, 아니면 저축금이나 퇴직금을 깎아 먹으며 버티느냐에 따라서 심적으로 참 다르다. 심적으로 안정이 되면 걱정하는 대신 몸도 추스르고 일을 찾을 기운도 난다. 


야근이 잦은 직장에서 병이 나서 퇴사를 하고, 실업급여를 받지못해 치료에 전념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보는 나를 남편이 어르고 달랜다. "돈 버는 것보다 중요한 건 치료하는 시간을 갖는 거야." 그 걱정이 담긴 다정에 말에 나는 '일을 안하고 쉬는 시간, 그런 여유를 부려도 되는 걸까.' 의문에 빠졌다. 회사를 관두니 남은 건 아픈 몸뚱이라더니, 내 이야기였다.

제목 배경 pixabay_WandererCreative

이미지 pixabay_st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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