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응답은 미안함을 느끼는 데에서 시작된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점점 무감각해지는 자신이 느껴진다. 기도, 명상, 마음돌봄, 무어라 부르든 상관없다. 그 시간만큼은 나 자신으로 있으며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나는 있는 나다(탈출기 3.14)'라는 의미를 되뇌여본다.
존재가 존재로 있는 것.
살아있음은 나와 타인의 수많은 감정과 마음을 느끼는 일이다. 우리 마음이 무감각하다는 착각은 돌덩이처럼 굳어버인 마음이, 혹은 졸고있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이다.
그저 억누를 뿐인 마음의 빗장이 열리면 우리는 일순간 괴롭기도 하며 외롭기도 하다. 또 미안하기도, 죄스럽기도 하다. 혹은 샘솟는 사랑이나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저녁에 손을 모으고 마음을 모았다. 기도의 부재 만큼이나 죄를 짓고 살았지만 평소에는 합리화를 하며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지 뭐.'
미안한 마음을 외면하고 충분히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스러운 행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스스로나 누군가에게 미안함이 느껴지는(부끄러움이 느껴지는) 일일테다. 남편에게 잔소리 하던 일, 누군가의 험담에 동참하던 일 말이다.
깊이 생각해보니 남편 마음을 잘 헤아리지 않고, 나 내키는 데로 잔소리를 했던 듯하다. 기도를 하고 잠들었다가, 이른 아침에 깨어나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잔소리를 듣고있자니 분명 위축이 되었을 남편은, 누구보다 나의 응원과 신뢰가 필요했을것이다.
또 누군가의 험담을 들으면서 속시원한 기분이 들었던 일도 떠올랐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떨까? 없는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걸 알면 속상하겠지.' 마찬가지로 죄스런 마음이 들었다.
헌담을 한다는 것은 사실 창피한 일이며 '사랑없음'과도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헌담에 대해 자주 경고하시며 "험담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나쁜 전염병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vatican news, 2020.9.6)
미안함을 느끼는 것, 있는 그대로 나의 마음을 느끼고 죄스러움을 인정하는 것. 회개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성장하기 위한 힘이 된다.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은 크지 않다.
다만 내 잘못을 깨닫고싶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하다. 무슨 일이든 숨겨진 사람의 의지를 하느님께서는 늘 알고계시다. 그런 의지만 있다면 변화를 청하는 기도는 늘 응답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