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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인생역전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찾아왔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강렬함으로는 톱 10에 든다.

27년 전 이 즈음에 나는 대전에 있는 충x고에서 내 인생을 건 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 당시에 나에게 수능이란 하늘에서 내려 준 동아줄과 같았다. 줄만 잘 잡으면 인생이 180도 바뀔 거라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수능시험. 나는 언어, 사회, 외국어에는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수학과 과학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학과 과학시험지를 받는 순간, 꺼먼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종이다. 그래도 앞페이지는 그럭저럭 풀만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눈앞이 깜깜했다. 시간은 반의반도 안 지났는데,  풀 수 있는 문제가 없었다.


공소시효가 지난 지금에야 솔직히 고백해 본다. 너무나 절실했던 나에게 검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컨닝이라도 해.' 알다시피 수능시험 장소의 책상 간격은 굉장히 넓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돌려봤다. 이게 웬일인가. 어렴풋이 옆 학생 문제지가 보이는 것이다.

나에게 초능력이 생긴 것일까.


역시, 절실함이 답이다. 다행히? 이 친구는 문제지에 답을 크게 체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컨닝하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100퍼센트 확신하는 문제를 컨닝했는데, 다른 답이 쓰여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마음을 비우고 컨닝한 답을 다 지웠다. 어차피 찍나, 컨닝하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찰나의 순간에 모든 희로애락을 다 경험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첫 수능은 평생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올해는 다행히 수능한파는 없는 것 같다. 모든 수험생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길 기도해 본다. 하나 더 기도해 본다.


나처럼 정말 절실하지만 실력은 떨어지는 사람 옆에 범생이가 앉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10미터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초능력이 생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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