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고 싶어
물건을 잘 빌려주고 빌리는 편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어떻게 쓸지도 모르고, 내 물건엔 내 지문만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조금 깔끔떠는 게 있긴하다.)10대땐 또래들과 어울리기 위해 체육복, 책, 노트, 때론휴대폰 따위를 빌려달라는 요청을 어쩔 수 없이 들어줬는데 20대가 되자 그럴 일이 없어졌다.
그럼에도, 간간이 책을 빌려달라는 사람은 있었다. 어떤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 내가 한 얘기가 재밌었는지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대부분 가까운 사이여서 흔쾌히빌려줬는데 돌려받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자주 보는 사이였다가 만남이 뜸해지기도 하고, 책의 존재를잊기도 하고, 그 친구에게 더 필요한 것 같아 선물로 주기도 했었다.
연애를 하면서도 당시 만났던 사람에게 책을 빌려준 적이 꽤 있다. 그 사람이 읽고 싶어했던 책을 내가 가지고 있어서 빌려준 적도 있고, 우연히 내 책장을 둘러보던 그가 읽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한 적도 있고, 내가 ‘이책 좀 읽어봐’ 하고 먼저 건넸던 적도 있다.
빌려주면서 이상하게도 이 책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내 손에서 그의 손으로 넘겨질 때 항상 그 생각이 튀어올랐다. 나를 보내지마 하는 책의 강렬한 외침이었을까. 다시 못 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 사실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그 책들을 빌려주고 싶었다. 왜일까?
지금의 내 일부가 된 한 부분을 그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한 걸 같이 이해했으면, 그래서 나를 조금 더 알아줬으면, 나를 좀 더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내게 좋아하는 책에 대해서도 내가 직접 요약하여 설명하는 것보다, 그 책의 원문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의 시각들도 궁금했다. 같은 책을 통해 그를 더 알고 싶었다.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당신도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과, 내 취향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였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많이 물어보는 편이다. 책은 즐겨읽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영화는 대부분 좋아한다고들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영화를 통해 그 사람의 취향도 알 수 있고, 만약 운이 좋아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그 영화가 닮아있다면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를 조금 더 담아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이해받고 싶은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