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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유 Oct 06. 2024

나를 찾아 떠난 곳 - 한남동

우리 이제 만나

엄청난 힙스러움의 한가운데에 있고 싶어졌다. 바로 떠오른 곳은 성수지만, 그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 내게는 가벼움이 자욱한 번거로움으로 느껴져 그다지 좋아하는 곳이 아니다. 토요일에 가기도 하니 일단 패스.


그 다음 떠오른 곳은 서촌. 이 가을날씨에 최고지. (글쓰는 지금 옆테이블에서 갑자기 서촌!하는 소리가 들리는 이 우연이란) 그런데 지난주에 다가왔고, 힙스러움이 필요해!


끝내 다다른 곳은 한남.

한남은 친해지고 싶은 곳인데 내게는 왠지 진입장벽이 높은 곳이다.

엄청 멋 부리고 가야하는, 내게는 그곳으로 향하는 입장권이 꽤나 부담스러운 곳이다.


그런데 이번엔 한남이야! 그냥 가볼래.

나 그냥 화장도 하지 않은 민낯으로, 청바지에 후드집업, 백팩 매고 떠나볼래.

아침 일찍 도착해 하루종일을 꼬박 보내고 싶었지만 체력이 걱정돼 12시 버스를 예매했다.

고양이와 좀 더 있어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고속터미널에서 내려 한남동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다.

서울이 좋은점. 버스가 금방 온다. 앞차를 놓쳐도 그다음 차가 바로 온다. 최고다.

어제 동물원을 가기 위해 두번째 환승버스를 기약없이 기다렸던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났다.

정말 서울에 왔구나.


마음이 들떴다. 그 멋진 곳들에 빨리 닿고 싶어 마음이 바빠졌다. 안달이 났다. 오랜만에 이러네 허허.

후 하 후 하 심호흡을 한다. 뭐에 쫓겨 온 사람 말고, 느긋하게 평일에 휴가내고 즐기러 온 사람처럼 행동하자. 사실이기도 하다. 오늘 나는 하루 휴가를 내고 평일에 그 붐비는 곳으로 향하는 거다.


나는 옷을 좋아하는 편이다. 예전에는 정말 많이 좋아했다. 취업전에 좋아했던 브랜드들이 있었는데, 취업하면 이 브랜드만 입을거야 라고 당돌한 맹세를 했던적도 있다. 취업 후에는 내돈으로 사기 돈 아까워서, 그리고 취향이 변해서 그 브랜드는 안가게 되었지만. ㅎㅎ


한남동에서의 시간을 알차게 써야하니 어제 최단거리 지도를 손으로 그렸다. 가고 싶은 옷가게는 20여곳. 원래 다섯군데 정도였는데 열심히 서치해서 늘렸다. 내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지. 그나저나 쇼룸이 이렇게나 많이 생겼다니, 근사한 동네다. 그리고 중간에 쉴 카페가 필요했다. 한남동은 어딜가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좋아하는 카페를 찾기가 쉽지 않다. 잠깐 글을 쓸 수도 있는 곳이면 참 좋겠다 싶었는데 그런 곳을 한두군데 찾았다.


우선, 가장 좋아하는 옷가게에 갔다. 미리 봐둔 트랙팬츠를 입어봤는데 생각보다 길이가 짧았다. 입고 간 청바지도 그 브랜드라, 직원분께 "이거 너무 잘 입고 있어요 ~" 로 시작해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보는 이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즐겁다.


버스에 내리면 바로 보이는 계단 많은 이곳


바로 위에 위치한 매장에도 들어갔다. 유명한 브랜드였는데 내 스타일과는 조금 맞지 않았지만 흥미롭게 둘러봤다. 역시나 직원분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 근처에 혼자 갈만한 카페를 물어봤다. 웃음이 귀여운 직원분이 커피가 맛있는 카페 하나를 추천해주셨다. 연달아 친절한 직원분을 만나 오늘 운이 좋네 싶었다.


그래도 이 길을 몇번 와봤다고 다른 옷가게로 향하는 길이 눈에 익었다. 다음 옷가게는 층을 좀 찾기 힘든곳이었는데 이번에도 잘 못찾아서 그냥 2층에 있는 다른 옷가게(이름을 들어본)에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매장이 작아서 매장이 맞나? 그냥 사무실인가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며 직원분이 음식점 찾아 왔는지 묻는다. (1층에 유명한 음식점이 있다.) 사실 이 매장을 온 게 맞지만 막상 들어서니 너무 포멀하여 들어갈 생각은 없었던 터라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자 직원분은 똑부러지게 주변 상점들을 안내해주셨는데 그게 또 하나의 재밌는 상황이었다. 모르는 이의 친절함은 언제나 빛난다.


거리와 상점에는 사람들이 바글했는데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듯했다. 예전에는(아마도 1년전) 옷이나 머리, 화장 스타일이 우리나라의 그것들과 많이 달랐는데 크게 다르지 않은 분들도 많았고 조금 차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남동에 오니 이런걸 또 느낄 수 있군? 하며 오길 잘했다는 뿌듯함이 더해졌다.


그리고 10여개의 옷가게를 더 찾았다. 마음에 드는 옷은 크게 없었다. 배가 고파져 추천받은 카페에 들어갔다. 사실 다른 옷가게에서 카페를 하나 더 추천받았었는데 커피가 맛있다는 평이 있었던 곳에 들어갔다. 오늘 만났던 직원분들 다 너무 친절하고 따뜻해서 기분좋은 편안함이 계속되었다. 한남동 사람들은 다 친절한가? 워낙 관광객들을 많이 접해서 그런가. 나같은 소심이가 구경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귀여운건 일단 저장


마지막 일정은 책방이었는데, 이곳은 예약제라 오후 7시에나 입장이 가능했다. 결론적으로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셈이다. 한남동과 조금 친해진 것 같다.


그전에는 '한남동'이라 하면 최선을 다해 꾸미고 두둑한 지갑도 준비하고 까칠한 표정으로 걸어다녀야하는 그런 곳이었는데 오늘은 후리(?)하게 좋아하는 곳 구경도 하고, 새로운 곳들로 내 지도를 넓히고, 그 안에 친절한 이들과 잠깐씩 이야기도 나누는, 친절함이 북적이는 곳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내 주요 그라운드는 홍대, 합정이다. 이 쪽은 하도 많이 가서 그냥 집 앞 같다. 어디에 뭐가 있는지 대충 알고, 혼자서 잠깐 시간을 보낼 곳, 오래 보낼 곳,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곳, 모두가 머리속에 있다.


처음엔 낯설고 두렵다. 그렇게 몇번을 왔다갔다하면 익숙해진다. 낯설고 두려워했다는 사실 조차 잊혀진다. 그리고 편안해진다. 우리에겐 항상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안걸리는 앵글을 찾기 어렵다. 조금씩 모두 초점이 나갈 수밖에 없다 ㅋ

다음엔 한남에서 혼밥도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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