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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지롭다 Jul 28. 2023

침몰하는 배를 고치는 사람들

“선생님께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일까 계속 고민했어. 나한테 한 줄기 빛이 되어줬던 말이 떠오르더라.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그 말을 해주고 싶었어.”



학급운영에 자신감을 가지고, ‘나 정도면 참 괜찮은 교사야.’라 우쭐하던 시기가 있었다. 나름 어렵다는 학년을 맡아 큰 사고 없이 마치고, 어여쁜 아이들을 만나 꿈꿔왔던 교육활동을 모두 펼치던 해다. 같은 해에 바로 윗학년에 학생이 던진 야구공에 얼굴을 맞아 시퍼렇게 멍이 든 선생님이 있었지만 위로를 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그 선생님의 생활지도 방식에 대해 훈수를 두고 있었다.


이듬해, 반 뽑기를 하는 순간부터 같은 학년 선생님들이 걱정하시는 학생 A가 속한 반을 맡게 되었다. A는 욕설, 폭행, 기물 파손을 일삼았다. 문제 행동에 대해 훈육하고자 방과후에 남기려 하자 내게 “이 씨발련아!”라 외치더라. 그리고 A가 아무리 교실을 휘저어도 교사가 크게 제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B가 A보다 갑절은 더하게 각성하여 폭군처럼 군림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A와 B에 의한 교권 침해의 자세한 내용을 구구절절 쓰는 것은 지금 글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그 해에 나는 이제껏 교실이 붕괴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았다.



오늘날, 공교육이라는 배는 서서히 침몰하고 있다. 각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한 두 건 발생하던 교권침해 사안이 어느 순간 각 학교에서, 여러 학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교권침해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지척에서 일어난다. 사회를 향해 교권침해가 심각하다 호소하였지만 누가 교사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는 조롱으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의미 있는 수업이 될까 연구하던 선생님들이 이제는 어떻게 하면 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를 논의한다. 오죽하면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되네였을까.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으로 교사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학교 현장의 붕괴된 현실이 알려졌다. 그리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자성과 함께 어떠한 기류의 변화가 일어났다.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학부모의 요구에 순응한 결과가 신규 선생님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이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려 했는데 이 배에 탄 막내가 괴롭힘을 못 이기고 세상을 등졌다. 더는 동료 교사를 잃을 수 없다. 침몰하는 배를 고쳐야 한다.




도대체 내가 그곳에 가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의문을 품으며 서초구로 향했다. 즐비한 근조화환을 지나 서이초에 들어섰다.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가는데 교내에는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와 우산 펴는 소리, 조용한 흐느낌만이 고요히 퍼져나갔다.


애도와 분노와 죄책감과 위로가 교문부터 강당 벽까지 학교 전체를 덮고 있었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진 선생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의무만 지워주고 권리를 박탈한 이 사회를 향한 분노,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라 적힌 포스트잇도 간간이 보였다.



어제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갑내기 친구 J를 만났다. 지난 1년 반 동안 글로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서이초 선생님 못지않게 고통받았다. 학기를 잘 마무리한 것을 기뻐하며 만났지만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서이초로 흘러간다. 서이초의 선생님은 나였다고 J는 담담하게, 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J 또한 추모를 위해 학교를 다녀왔다더라. 학교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J에게 포스트잇과 펜을 주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막막해서 한참을 고민했더랬다. 한 줄기 빛과 같이 느껴졌던 말을, 나였던 당신에게 전한다.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이 말의 의미를, 깊이를 그제서야 깨달았다. 감히 나는 공감한다고 말할 수 없을, 같은 아픔을 당했던, 생사의 기로에 섰던 선생님들이 건넨 위로였다.



도저히 답답해서 못 참겠다고, 우리 모이자고 한 선생님이 보신각에 집회를 신청했다. 200명이 모이겠다고 신고한 집회에 경찰 추산 1만 명 이상이 모였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짓밟힌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분노하고 울분을 터뜨렸다.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고,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교사의 인권을 지켜달라고 목청껏 외쳤다. 종각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검은 물결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동안 참고 마음에만 담아 두었던 외침. 나 혼자만의 작고 미약한 소리가 아닌, 보신각 일대를 뒤흔드는 일만 명의 외침. 그것은 우리는 이 침몰하는 배를 더는 외면하지 않겠다는, 탈출하지 않고 고쳐내고야 말겠다는 단단한 각오였다.


아직도 쉬이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어렵다. 루틴을 따라 생활을 하다가도 핸드폰을 건드리면 온갖 기사와 뉴스, 선생님들의 성토를 몇 시간이고 붙잡게 된다. 마음을 가라앉히다가도 새로 쏟아진 서울 사립초 교사 유가족의 절규에 또 울컥하고 눈물 흘리곤 한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꿈쩍도 않던 이 사회가 변화하려 한다. 더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움직이자. 더 나아가 학생, 교사, 학부모 삼주체가 서로를 신뢰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정상적인 교육환경을 회복하도록, 우리는 이 침몰하는 배를 고칠 것이다.



(사진 출처: Pexels Dmitry Zvolsk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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