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론 모범생이지만 속으론 불손했던 중학교 3학년 시절. 고등학교 입시에 반영할 성적처리를 위해서인지 3학년은 1, 2학년들보다 더 이른 시점에 2학기 기말고사를 치렀다. 11월 말쯤으로 기억한다. 자연스럽게 시험에 들어가는 범위도 줄어들었는데, 수학에서는 마지막 단원이었던 구의 겉넓이와 부피가 빠졌다. 기말고사를 보고 나서 배웠던 것 같기도 하다. 시험도 끝났겠다, 중학교 생활도 안녕이겠다, 선생님이 아무리 애를 써가면서 가르치셔도 온몸으로 강의를 거부했더랬다. 그 결과, 나는 아직도 구의 겉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방법을 모른다.
학창 시절 배우고 어른이 되어서 흐릿하게 잊어버린 것들이 많지만, 유독 구의 부피와 겉넓이는 연필로 빽빽하게 적은 공책에 지우개로 부욱- 그어버린 듯 빈자리가 유독 선명하다. 왜냐하면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의 부피와 겉넓이는 내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의 상징 그 자체이다. 그때는 시험에 안 들어가면 마치 인생에서 하잘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철저하게 ‘시험’이라는 외부 요인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 수년이 지난 이제는 시험을 보는 자리에서 시험을 출제하는 자리로 옮겨 앉았다. 가르치는 사람의 눈으로 보니 “이거 시험에 나와요?”라 묻는 아이들 틈에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을 아는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다는 외부의 보상이 주어져야만 공부를 했던 그 시절의 내가 안타깝다.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호의를 못 받는 차원이 아니라, 내적 동기가 부족해 스스로 배움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아깝고 안 됐다.
글을 쓰면서 구의 겉넓이와 부피 구하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구의 겉넓이는 4πr², 구의 부피는 4/3πr³. 구는 전개도가 없지만 귤껍질을 까면서 전개도 비슷하게 만들어 보았던 수업이 이제야 떠오른다. (중3을 데리고 구체적 조작물까지 사용하셨던 당시 수학 선생님께 존경의 마음이 든다.) 일상에서 구의 부피와 겉넓이를 알아서 뭐 그렇게 쓸모가 있겠냐마는, 말했듯이 이건 배움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
나는 이제 구의 겉넓이와 부피 구하는 방법을 안다. 이제는 감탄고토의 속물적인 태도를 버린다. 내가 만나는 모든 달고 쓴 것에서, 당장은 도움이 되어 보이지 않는 것일지라도 그것에서 배움을 얻어 보겠노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