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민음사
최근에 별세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어보기로 했다. 이전에 한번 읽었지만 충분히 소화를 하지 못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들었다.
줄거리가 큰 의미를 띠지는 않는 것 같다만, 간략하게 소설의 초반 줄거리를 적어본다.
외과의사 토마시는 우연히 작은 마을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테레자를 만난다.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프라하로 돌아간 토마시를 테레자가 찾아와 그와 함께 살게 된다. 토마시는 여러 여자들과 비종속적인 관계를 추구하였고, 테레자에게 동정심(저자는 싸구려가 아닌,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의미에서 co-sentimet라는 단어를 사용한다)을 느껴 그녀와 결혼해 살면서도 외도를 멈추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테레자도 외도에 찢어질 듯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그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소련이 체코를 점령한다. 온사방에 위협이 가득하여 두 사람은 스위스로 망명을 가지만 얼마 있지 않아 “목숨을 걸고 거리에서 소련군 사진을 찍으며 그녀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던 테레자는 프라하로 혼자 돌아간다.
토마시는 테레자가 떠나고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하게 느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드시 돌아가야만 한다는 무거운 운명의 목소리(Es muss sein!)에 화답하며 프라하로 돌아간다. 그리고 테레자와 조우한 직후 이 결정을 후회한다. 그러나 이 결정, 그리고 파생된 다른 결정들에 대한 대가는 꽤나 모질고 혹독했다.
제목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이 책은 가벼움과 무거움, 빛과 어둠, 영혼과 육체 등 대비되는 두 성질에 대해 깊이 탐구한다. 그중 가장 중요한 소재가 바로 가벼움과 무거움이다.
인간은 한 번밖에 살 수 없다. 그렇기에 과거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 알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의 영원회귀와 반대되게) 인간의 존재는 참을 수 없이 가볍다. 어떠한 가정도 증명될 길이 없으며 우리는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p.12)
토마시는 가벼움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둥둥 떠다니다 테레자를 만나 땅에 발을 붙이게 된다. 반면 테레자는 숨 막히는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나, 때로는 참기 어려운 추락 욕구를 가지는 인물이다. 과거를 벗어던지기 위해 토마시와 함께하지만 소련군이 가득한 프라하로 돌아간다. 따라서 토마시와 테레자의 만남은 가벼움과 무거움 양 극단의 만남이다.
밀란 쿤데라는 토마시와 테레자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탐구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사라예보 사건이나 소련의 체코 점령과 같은 역사적 사건들 또한 다룬다. 인간에 관한 통찰은 역사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번은 중요하지 않다. 한 번이면 그것으로 영원히 끝이다. 유럽 역사와 마찬가지로 보헤미아 역사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p. 364)
3년쯤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토마시의 이상 성욕에 대한 메스꺼움 탓에 문장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새가 없었는데, 다시 읽으니 인간 존재를 향한 쿤데라의 집요한 고찰이 느껴진다. 가벼울 것 같은 인물의 무거운 선택, 무거움을 통해 역설적으로 평온함을 얻는 인물, 인간의 삶을 악보와 악상에 비유한 부분, 몰락한 지식인들을 향한 거북살스러운 마음, 키치에 대한 정의 등.
우리의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이를 가볍고도 무겁게,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진지하게,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다루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그토록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시절 그녀는 탱크를 배경으로 이 젊은 여자들의 사진을 무수히 찍었다. 그때 그들을 얼마나 존경했던가! 오늘 그녀 앞으로 다가오는, 심술맞고 험상궂은 여자들은 바로 그때 그 여자들이다. 깃발 대신 우산이었지만 여전히 그때처럼 당당하게 우산을 치켜들고 있었다. (p.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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