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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연주 Apr 08. 2020

삶을 사는 기술

feat. 나만 없나요

옷장 서랍을 닫다 손가락이 끼었다. 왼손이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채 오른손이 닫아버린 것이다. 이렇게 내 몸의 각 부분이 서로 타이밍이 안 맞는 일이 종종 있다. 텀블러를 든 손이 입에 닿기도 전에 커피를 부어버려 흘리기도 하고 몸을 돌려 일어나야 할 것을 엇박자로 일어나 책상 바닥에 무릎을 쾅 찧기도 한다. 발이 다 나오기 전에 손으로 문을 닫아버리고 찬장을 열어야겠단 생각만으로 찬장 바로 앞에 있는 내 머리는 아랑곳 않고 냉큼 열어버려 머리를 박는다. 엊그제 길에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가를 보면서 저렇게 걷던 아이가 어떻게 금방 잘 걷게 될까 신기해한 게 무색하게 실상은 내가 내 몸을 사용한 지 30년이 넘어가는데도 나의 신체는 서로 협동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신체들끼리 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들끼리도 협동이 잘 되지 않는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후후 불고 먹는 걸 늘 완전히 깜박해 입천장을 다 데고, 과자를 먹을 때면 혀로 자꾸 입천장을 꾹꾹 눌러 다 까지고 만다. 야채를 챙겨 먹겠다고 다짐하고도 눈 앞의 야채를 놓치고는  다른 것만 집어먹기도 하고 식단관리를 하겠다 다짐해 놓고 그 다짐을 잊고 태연하게 간식을 먹기도 한다. 정신과 행동의 어쩜 이리 일치가 안될까. 생체리듬은 또 어떤지. 여태 한국에서 살아와 놓고 왜 때문인지 매일 오후 9시에 너무나 졸리다. 어느 나라 시차인지, 전생이 있다면 전생 중 하나의 나의 생활습관이었을지 뭔지 모르겠으나 내가 이 생에서 여태껏 그 시간에 졸린 걸 참아낸 세월이 얼만데 어김없이 그 시간이면 졸려지는 걸 보며 나의 졸음 패턴은 언제 내 생에 맞춰질는지 기약 없게 느껴진다.


뭐가 되었건 '나'로서 꽤 많이 살았는데, 어째서 이렇게 나는 여전히 나와 손발이 맞지 않고 서투르고 어려운 것 투성일까.


게다가 으레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고 노련해진다고 생각할 법한 것들 -이를테면 모국어와 직업의 숙련도, 그리고 다른 살아가는 기술들- 도 놀랍게도 여태 조화를 이루며 발전하지 못하는 것들 천지다. 직업인 연기도 여전히 어렵고 늘 쓰는 모국어는 짧게 대강 나누는 메신저와 줄임말과 신조어를 즐겨 쓰는 탓에 오히려 알던 문법도 잊어지는 것 같고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술도 어렸을 때와 다른 세련된 능력이 생겨나지도 않았다. 내가 사는 작은 집 하나를 관리하는 것도 버겁다. 매해 갱신하거나 이사할 때 해야 하는 부동산 계약이라던지 세금이라던지 이런 것들은 더더욱 복잡하고 그것과 관련되어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너무나 까다롭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알려주었으면 어땠을까. 매번 아침에 일어나면 해야 할 일들, 물을 한 컵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습관을 들여주고, 나이 상관없이 좋은 사람을 친구로 사귀는 방법과 의견이 다를 땐 어떻게 서로가 토론해야 하는지 연습시켜주고 물건 정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집안 청소는 무얼 사용해서 어떻게 하는지, 건강을 위해 무얼 먹고 요리를 어떻게 하고 재료는 어떻게 보관하는지, 수상한 사람을 알아보는 법과 집 구할 때는 무얼 체크해야 하고 자동차 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며 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식은 어떻게 사고 길을 가다 불의나 사고를 발견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마음이 아프거나 힘들 땐 어떻게 마음을 돌보아야 하는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떠한 가치들이 중요한지 등등 말이다.


물론 교육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어떤 정도로든 삶을 살아가는 기술에 대해 알려줬을 법 한데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건 유치원생 때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작은 볼일은 두루마리 휴지 3칸, 큰 볼일은 5칸을 사용하는 거예요.’라고 알려 준 것만 남았다.


이렇게 나는 학창 시절에 습득하지 못했던 살아가는 기술을 시행착오를 겪고 매번 찾아봐서 알아보고 물어보며 좌충우돌 살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학창 시절을 보냈을 다른 사람들은 잘만 가정을 꾸리기도 하고(심지어 아이도 낳고 기르고), 직장을 오래 다니기도, 커리어를 쌓기고, 직업전환을 하기도, 회사를 만들기도, 외국에 나가 일을 하기도 하니 모두들 참으로 딴 세상 사람 같이 대단하게만 보인다. 나를 뺀 수많은 사람들은 왠지 늘 계획을 세우고 있고 넘어지거나 부딪히지도 않고 정리정돈을 잘하고 알맞은 보험을 들고 세금 처리도 뚝딱해내고 모국어도 유창하게 하고 새로운 경험을 쑥쑥 받아들일 수 있는 법들을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어디서부터 시작한 걸까.


그래, 어디서든 시작했겠지. 무엇이든 시작은 있는 법이니까. 비록 지금 나는 미리 먹지 못해 유통기한까지 꽉 채운 불고기를 발등에 불 떨어진 것 마냥 급하게 먹기 위해 불고기가 왕창 들어가는 스키야끼를 해 먹으려 야채를 사고 보니 먹는 것보다 남는 게 훨씬 많은 부추의 보관법을 인터넷으로 찾고 있지만(헉헉 .. 숨차다), 이렇게 하나씩 찾아 터득하고 그걸 이제라도 잘 쌓다 보면 이걸 발판으로 삼아 나도 다른 이들처럼 멋진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꿈을 꿔본다. 그리고 꼭 하연주의 삶의 기술이란 책을 써서 대대손손 물려줄 테다. 혹은 전파할 테다. 나처럼 느지막이 까지 삶의 스킬을 터득하지 못해 좌충우돌하는 사람들을 위해. 부추 보관법에서부터... 회사를 만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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