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솔직 리뷰
13년 전 신종플루에 걸렸을 때도, 1년 전 코로나 확진을 받았을 때도, 1달 전 또다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린 시간은 길고, 만남은 짧은 병원 진료.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 넘게 대기해도 의사와 만나는 시간은 고작 3분조차 되지 않는다.
병원에 들어가는 즉시, 마치 공장의 부품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몸이 8자로 꼬일 정도로 지겨운 순간을 참고 참아 드디어 이름이 호명되면 터벅터벅 들어가는 진료실. 잔뜩 부은 목을 부여잡고 의사 선생님께 꾸벅 인사를 한다.
“왜 오셨어요?”, “코 좀 볼게요”, “목 좀 볼게요”, “약 드릴게요. 3일간 드시고 오세요”. 이윽고 이어지는 총 네 마디의 언어. 단 60초도 지나지 않아 진료실을 나온다.
이 에피소드는 무려 18년간 다닌 단골 병원에서 매번 일어나는 일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만난 익숙하고도 정겨운 병원이지만, 열여덟 번의 해가 지나고도 긴장되는 병원 분위기와 경직된 대기실의 공기는 여전히 어색하다. ‘선생님, 매번 제 코감기와 목감기의 원인을 적중해서 쾌유하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잘 지내시고 계시죠?’와 같은 안부 인사조차 건넬 여유는 없다. 그저 내 앞뒤로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적당히 빠른 시간 내에 귀가해야 할 뿐.
최근 읽기 시작한 <3분 진료 공장의 세계>를 읽고 그간 병원에서 경험했던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대학병원 종양내과 의사가 들려주는 ‘3분 진료’ 시스템 속 의사들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사를 포함한 모든 의료진에게도 상당한 고충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대학을 다니며 지인 중에 의과대학, 간호대학을 졸업한 경우가 종종 있다. 대학교 내 러닝크루에서 42.195km를 3시간 이내 완주한 전직 회장 선배는 현재 모 대학병원에서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2020년 1년간, 내가 회장으로 있을 때 든든한 크루원으로 활약했던 선배는 현재 대학병원 의사로 고군분투 중이다.
그들의 일상을 가만히 듣다보면, 때로 환자보다 의료진의 고통과 고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걸 알게 된다.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단 한 명의 환자한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어쩌면 정해져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3분 진료 공장의 세계>는 제10회 브런치북 특별상 수상작으로, 의료인이 아니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형 병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 페이지씩 넘기다보면, 저자 김선영은 환자이자 독자를 겸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학 병원의 A부터 Z까지를 다정하게 이해시키고 있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부교수로 활약하는 저자 김선영은 의사와 환자 모두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임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현재 운영되고 있는 병원 시스템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탄탄한 근거와 논리로 보충한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 ‘3분 진료를 위한 변명’에서는 대학 병원이 어쩌다 불평불만의 공간이 되었는지 다양한 이유를 나눈다. 예컨대 의사들은 왜 눈을 마주치지 않는지, 과잉 진료는 왜 일어나는지, 의사 1인당 환자 수는 몇 명이 적절할지에 대해 생각의 뿌리를 키우는 장이다. 특히 1장 마지막 부제에서는 ‘3분 진료 공장에서의 셀프 인터뷰’가 있는데, 저자 김선영이 자문자답한 파트로 그녀의 허심탄회한 의견과 환자의 입장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다.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환자 수의 세 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했다는 것. OECD 평균은 2019년 기준 2,122명인데 우리나라는 6,989명이다. 저자는 말한다. 어쩌면 적절한 학급당 학생 수처럼, 의사 수가 아니라 환자의 수부터 출발하는 것이 진료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닐까. 이 대목에서 나는 ‘3분 진료 공장’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1초 만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의사 한 명이 감당하기 벅찬 환자가 물밀듯 들어오는데, 그 속에서 한 명 한 명의 사람이 온전히 대우받고 최상의 의료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건 어려울 뿐이다.
2장 ‘3분을 위한 팁’에서는 대학 병원에서 똑똑하게 진료받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양다리를 걸치는 방법부터 치료받던 병원을 옮길 때의 노하우, 항암 치료 전에 준비할 10가지를 빼곡히 알아간다. 마지막 부제에는 일분일초를 앞다투는 진료 현장에서 매일 땀을 흘리는 백영애 간호사 인터뷰가 준비되어 있다.
특히 치료받던 병원을 옮길 때 노하우를 기록한 부분은 독자들에게도 가장 유용한 파트다. 소견서를 꼭 받을 것, 차트와 영상은 최근 것 위주로 조금만 가져갈 것, 조직검사 결과지는 꼭 챙길 것, 마지막으로 이전 병원이나 의사를 흉보지 않는 것. 병원을 옮기는 복잡한 과정에서, 보다 효율적인 절차를 숙지하고 있다면 누군가는 삶의 무게가 훨씬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3장 ‘3분 동안 오가는 마음’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이번 장에서는 대학 병원에서 마주하는 환자들의 드라마를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다.
응급실 5퍼센트 법칙에 내몰린 환자들의 가슴 아픈 일화는 특히 마음이 먹먹했다. 24시간 이상 응급실에 체류하지 못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24시간 이상 응급실에 체류하는 환자 비율이 5퍼센트가 넘으면 보건복지부가 병원에게 상당한 금전적 불이익을 준다는 사실. 이번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응급실을 벗어나면 생의 위기를 맞닥뜨리는 환자들에게 “반드시 나가야만 한다”라고 말하는 의료진 입장도, 그 청천벽력의 말을 듣는 환자도 답답할 뿐이다. 법률에 따라,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전체 구조가 운영되어야 함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목숨이 오가는 순간에서는 이성의 끈을 마지막까지 붙잡기는 어렵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3분 진료 공장의 세계>를 통해 이 법률을 알게 된 독자라면 언젠가 마주할 한 페이지에서 보다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책장을 덮으며 저자 김선영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시대에야 ‘낭만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큰 병원 현장에서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는 많지만, 책은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 생로병사,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이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직시하는 저자 김선영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마주 봄’이라 생각한다.
그녀를 거쳐 간 환자들의 이름, 그들의 뚜렷한 얼굴, 주고 받은 대화. 절대 정량적인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삶의 이야기들을 저자 김선영은 빼곡히 이 책에 담았다. 훗날 또다시 대학 병원에 가는 일이 있다면 저자와 같은 따뜻한 마음의 구성원들을 만나기를.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다정함을 건네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넓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