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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Mar 13. 2020

피플 테리어

그 녀석의 해피엔딩 

아이고~~ 김원장, 이거 정말 반갑구먼 반가워요.     


 어쩌면 이렇게도 저 인간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옷에, 똑같은 말투에, 똑같이 생겼는지....

 진료실에서 컴퓨터를 보던 원장님도, 데스크에서 하품을 하던 테크니션도, 멍 때리면서 책이나 뒤적거리던 나도, 일순간 짠 듯이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이 동물 병원에 인턴으로 들어온 지 한 달.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뭐 하는 사람인지는 척 보면 알 수 있었다.  흙이 묻은 점퍼에, 군복 바지, 전투화. 그리고 그 뒤에 피를 흘리며 헥헥거리고 있는 크고 무섭게 생긴 개 한 마리.  아.. 투견꾼이구나...

 한 달 사이에 벌써 다친 투견, 다친 사냥개가 5마리. 시골병원이라 별의별 일이 다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병원은 생각보다 더 버라이어티 하고,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다. 

 투견꾼들, 그리고 (보신탕용) 개 농장 주인들은 절대 접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과 동종업계 사장이니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눈빛을 강하게 쏴대며, 데스크는 가볍게 지나 바로 원장실로 돌진한다. 원장님은 뒤돌아 선채로 허공에다 대고 욕을 한 사발 하신 후, 다시 사람 좋은 미소를 날리며 친근하게 악수를 한다. 

“오. 최실장. 오랜만이에요. 웬일이에요??”

 내가 너무 싫어하는 부류들.. 나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측은지심이라는 게 눈곱만큼이라도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종도 하기 싫을 사람들. 바로 개를 싸움 도구로 만들어 돈을 벌거나, 개를 먹거리로 판매하기 위해 엉망으로 키우는 바로 그들이다. 투견꾼들이나 개농장 주인들은 항상 무례하게 하다. 또 자기는 개 전문가라는 얄팍한 자존심이 있어서 진료에 사사건건 참견을 하고, 계산을 할 때는 우리 사이에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다른 손님의 절반도 내지 않으려고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줘도 고마워하지 않고 뒤에서 욕을 하곤 한다.  한 번은 원장님께 물어봤다. 

“저런 사람들한테 왜 잘해줘요?” 

 나는 원장님의 입에서 슈바이처의 숭고한 생명존중이나, 조건 없는 사랑 같은 멋진 말이 나올 줄 알았으나 의외로 너무나 심플한 대답이었다.  

 “몰라. 자꾸 우리 병원 오네.. 아씨 귀찮아” 

 


 원장님도 자꾸 찾아오는 저 인간들이 싫었는지, 일단 선빵을 날렸다. “일단 접수하고 들어오세요”.

 무턱대고 진료실 문을 열던 투견꾼은 머쓱하게 다시 문을 닫고 나가서 데스크로 왔다. 마침 테크니션이 화장실을 갔고, 내가 접수를 받았다.  보호자분 성함이요? 강아지 이름은요? 나이는? 성별은? 품종은?? 건성건성 대답하던 투견꾼의 대답을 차트에 받아 적던 나의 손이 여기서 멈췄다. 

“네?? 뭐라고요??”

“아 왜 이래 못 알아들어.  바빠 죽겠는데..”

 수의사가 된 지 겨우 한 달.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한번 더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맘을 접고 들은 대로 일단 차트에 기록했다. 피플 테리어..... 좀 이상했지만 재차 물어보기에는 그 사람이 너무 무서웠다. 피플 테리어? 웬 피플? 사람이란 뜻인가. 듣고 보니 개 얼굴이 좀 못생긴 사람의 얼굴이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서둘러 차트를 마무리하고, 투견꾼을 원장님께 인계했다. 

 “김원장, 우리 복실이 좀 봐주이소. 어제 한바탕 했는데, 다리가 붓드만 영 걷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네. 내가 어제 항생제 하고 소염제 주사 놔줬는데도 영 컨디션이 안좋네이...좋은거 섞어가 링거나 한 대 놔주고, 다리 상처나 좀 꿰매주이소”

 어쩌면 저렇게 다들 똑같이 이야기할까. 저 사람들에게는 ‘동물병원에 가면 해야 할 말’이라는 프로토콜이라도 있는 걸까? 

a. 죽어가는 동물을 데리고 간다. 

b. 어제 내가 항생제, 소염제 주사는 맞혔다고 일단 자랑한다. 

c. 절대 심각한 건 아니니 가볍게 치료해달라고 한다. 

d. 수의사가 심각하다고 말하면, 내가 개를 30년 봐왔는데, 이 정도면 링거만 맞아도 나을 수 있다고 우긴다. 

 

 하지만 복실이 상태는 한 달 차 수의사로 투견꾼보다도 아는 게 없던 내가 봐도 심각해 보였다. 그냥 근육과 피부가 찢어져서 부은 것이 아니라, 아예 발목이 돌아가 있었다.   그냥 링거나 맞춰주고, 검사는 필요도 없다는 아저씨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 20년 짬밥의 시골 원장님은 일단 엑스레이를 찍었다. 발목뼈는 부러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 조각조각 나있는 상태였고, 피부와 근육조직들도 괴사가 되어 엉망인 상황이었다. 

 “하. 이거 어렵겠는데요. 수술을 해봐야 알겠지만, 수술이 성공해서 뼈가 잘 붙더라도 피부가 모자라서 회복이 되는데 한참 걸릴 것 같고, 피부가 다 붙더라도 신경 손상이 있어서 잘 걷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에 뼈가 안 붙거나 조직이 회복이 안 되면 다리를 절단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비용도...”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혹은 들으면 안 될 말이라도 들었다는 듯이, 투견꾼은 면상을 찡그리면서 서둘러 말을 끊었다. 

 “아니 아니, 원장님. 됐습니더. 내 마, 수술시킬 돈도 없고, 더군다나 인마 이거 싸움시킬라고 키우는 건데, 수술 성공해도 투견은 못할 거 아닌교? 그러면 난 필요 없소.”

 당연히 투견꾼이 이렇게 대답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원장님은 그래도 일단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니, 그래도 수술만 잘되면 걷는 건 가능하고, 살아가는 데는 아무 문제없을 수도 있는데, 수술이라도 해야 안 되겠습니까?? 복실이가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도 아니고, 불쌍하잖아요. 이렇게 데리고 가면 다리 괴사 돼서 결국엔 죽을 텐데....”

 “마, 나는 모르겠습니더. 뭐 수술하고 싶으면 수술하고, 안락사 할라면 안락사하고, 맘대로 하이소.  이 복실이 원래 천만 원도 넘게 하는 갠데, 내가 무료로 드릴 테니, 알아서 하이 소마.”

 여기까지도 모든 투견꾼들의 레퍼토리는 똑같다. 치료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한 개들도 수술 후 조금이라도 투견이 힘들어질 것 같으면 바로 버린다. 우리 개가 원래 천만 원도 넘는데 공짜로 준다는 말과 함께... 

 선심 쓰듯 내뱉은 말과는 반대로, 붙잡고 돈이라도 더 달라고 할까 봐 그는 몹시 부산스럽게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갔다.  쓰러져서 헥헥거리고 있던 복실이는, 저런 인간도 주인이라고 일어서서 따라 가려 낑낑거리다가 그만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투견꾼이 한바탕 뒤집어 놓고 사라진 병원에서는, 고통에 신음하는 복실이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이.... 미친놈.....

 


 10분도 넘게 속사포처럼 욕을 내뱉은 후, 원장님은 일단 마취와 혈액검사를 했다. 살아나더라도 이 큰 개를 병원에 어디 놔둘 곳도 없거니와, 투견의 특성상 다른 동물과 마주치는 순간 즉사시킬 수 있는 상황이라, 그 후의 문제가 더 심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다리뼈가 부러졌다고, 또 주인이 버리고 갔다고, 안락사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다. 

 평소 다른 때 보다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된 원장님은 수술 내내 유난히 욕이 많으셨고, 덕분인지 더 빠른 손놀림으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두 달이란 시간 동안 복실이는 좁을 창살 속에서 잘 버텨주었고, 평소 생닭에 소뼈만 먹던 애인 지라 사료 안 먹겠다고 고집부린 것 말고는 착실하게 잘 지냈다. 그 사이에 나는 모든 병원 식구들의 비웃음 속에서 피플 테리어가 아니라 핏불테리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모든 핏불이 그런 건 아니지만 투견으로 키워진 핏불은 사람에 대한 절대복종이 있어 절대 사람은 공격하지 않는 착하고 순한 개라는 것을 배웠다. 대신 동물에 대한 공격성은 정말 대단해서, 잠시라도 눈을 떼면 대형 사고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 직원들이 번갈아가면서 하루 한 번씩 산책을 데리고 나가면서 기분전환만 해주었다.  다행히 신경손상이 크진 않았는지 이제는 걷고 뛰는 것도 가능해졌고, 거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는 복실이의 새로운 집이 필요한 순간이 왔고, 그 역시 마실 나왔던 동네 지역 유지 어르신의 마음에 쏙 들어,  큰 마당 딸린 집에 집 지키는 개로 가게 되면서 해결이 됐다.  우리가 사람 똥보다 더 큰 똥을 싸 대는 복실이 수발에 지쳐 갈 때쯤,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그것은 복실이가 새로운 집으로 가기 바로 일주일 전이였다. 


  아이고~~ 김원장, 이거 정말 반갑구먼 반가워요.


 막 마치려고 준비하고 있는 병원에, 또 그 재수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순간 다시 한번 모든 직원들의 표정이 짠 듯이 찌푸려졌고, 아는지 모르는지 그 투견꾼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또 원장실로 바로 들어왔다. 그 뒤를 피범벅이 된 또 다른 핏불 테리어가 따라 들어왔다. 다행히 이번 핏불은 심각한 상태는 아니어서, 피부 봉합만 하고 치료는 쉽게 끝이 났다. 봉합을 하는 20분 동안 투견꾼은 복실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그런 개가,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 못 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오늘 치료비를 적게 내는 것 말고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안에서 청소하던 테크니션 박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손쌤, 손쌤, 빨리 좀 와보세요. ”

 서둘러 뛰어간 입원장 앞에서 나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주인 목소리를 듣고 흥분한 복실이가, 쇠로 된 철창살의 문을 미친 듯이 물어뜯어 입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얘 왜 이래~!! 어떡하죠...” 

 우리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결국 헐거워진 철장 문을 온몸으로 박살을 낸 복실이는, 길을 막는 우리를 헤딩으로 밀어버리고는 쏜살같이 대기실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돈 만원이라도 더 깎아보려고 애걸복걸하고 있는 투견꾼의 발밑에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두 달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복실이의 행복한 표정이었다. 

 “어, 복실~!! 멀쩡하네?? 원장님 복실이 살아있었네요? 와 잘 뛰네, 다시 싸울 수 있겠네. 고맙심다이. 가자. 복실아”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데리고 가서, 말릴 수조차 없었다. 공짜로 치료받은 데다가 다시 싸움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난 주인과, 그런 주인을 보고 더 신이 난 복실이. 그렇게 그들은 사라져 버렸다. 너무 화가 나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부서진 철장만 덩그러니 바닥을 뒹굴었다. 

 왜?? 도대체 왜?? 매일 몽둥이로 때려가면서 훈련시킨 주인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자기 말대로 열심히 다른 개랑 싸우다가 다쳤는데 치료는커녕 그냥 버리고 간 주인이 뭐가 그렇게 이쁘다고.. 지금 가면 다 낫기도 전에 다시 투견장으로 끌려가게 될 텐데. 거기서 또 다치고, 이번에도 다치면 그냥 죽게 놔둘 텐데. 일주일만 기다리면 부잣집 마당에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넌 왜 그렇게 행복한 웃음을 보이며 그를 따라간 거니??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맞다. 개는 그런 거다. 우리는 너의 행복의 기준이 안락한 방석, 맛있는 음식, 즐거운 산책, 편안하고 따뜻한 집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너의 행복의 기준은 단 하나. 바로 주인이었던 것이다. 자기를 때리고, 사지로 내몰고, 자기를 버리더라도, 그 주인이라는 존재가 복실이의 삶에 목적이었고, 주인이 찾아오리라는 그 희망이 2달간 힘들었던 투병을 이겨내는 힘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한 번도 복실이를 본 적은 없었다. 내가 근무했던 2년간 그 투견꾼은 몇 번 병원에 왔었지만, 복실이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무서웠다.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내가 기대하는 해피엔딩은 아닐 것 같아서. 하지만 누굴 탓할 수 있을까? 그게 복실이의 선택이었고, 그게 복실이에게는 진정한 해피엔딩일지도.... 한낱 미물에 불과한 인간이 어찌 개의 그 숭고하고도 맹목적인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 본 에피소드는 10여 년 전 동물병원에서 있었던 일로서, 요즈음의 동물병원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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