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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가는 길 Dec 15. 2022

왜 말을 못 해! 그 자식이 그러고 있는데 왜 말을못해

이안에 너 있다.

 넌 알고 있니.. 난 말이야.. 너의 하얀 웃음이~ 자꾸만 생각나 바보처럼 웃게 돼~♪

 요즘 어린 친구들은 생소할지도 모르는 그 시절 어마어마했던 화제의 드라마 파리의 연인~

아직도 가끔씩 저 명대사가 생각날 때가 있다. 오죽 답답하면 내가 박신양 흉내까지 내야겠냐고...



 띵동~! 환자 왔습니다.

 진료실에 앉아있으면 접수대에서 보호자분이 아웃사이더 랩처럼 속사포로 쏟아내는 말들이 어렴풋이 들린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하기에 귀를 기울여서 보호자분이 하시는 말을 들어본다.


"우리 애가 주말에 다리를 심하게 절어서 24시 하는 큰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찍었는데, 원인은 못 찾고 약을 지어먹였는데 효과도 하나도 없고. 증상은 점점 심해지네요.. 다시 전화해보니 mri까지 마취해서 찍어보자는 말만 하길래 다니던 병원으로 와봤어요.. 지금은 아예 다리를 못쓰고 들고 다니는데, 어떻게 하죠..."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그냥 다리 절어서 오신 분이라면 가볍게 진료 봐드리고 원인을 찾아봐드리면 되지만, 이미 대형병원에서 할만한 검사는 다했는데 못 찾은 병명. 심지어 증상도 심해지고 있다. 쉬운 병은 아니겠구나.... 걱정 어린 표정 들어오시는 보호자분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반겼다.


 슬개골 탈구도 아니고, 고관절도 괜찮고, 그런데도 애는 저렇게 다리를 아예 못쓰고 있어요.

 아닌 게 아니라 증상은 심각했다. 증상부터가 그런 흔하디 흔한 질환과는 연관성이 멀어 보였다. 골절 정도는 돼야 생길만한 증상인데 어머님이 들고 오신 방사선 사진을 보니 골절도 아니었다. 그러면 진통제에 반응이 있었을 텐데 약을 먹여도 증상은 점점 나빠질 뿐이다. 하필이면 거기다가 겁이 많은 애기라 통증에 대한 표현도 별로 없다.

 뭐라고 할까? 생각나는 병이 없다. 일단 다른 진통제를 지어드릴까? 2차 병원 보낼까? 아참 2차 병원에서도 못 찾았지. mri 찍어보시라고 할까?? 별의별 생각이 다드는 가운데 억겁 같은 몇 초가 조용히 지나갔다.


 어?? 이거 뭐지??

  눈썰미만큼은 웬만한 수의사 뺨 때릴 만큼 좋은 우리 테크니션 박 선생님. 애기의 몸을 여기저기 만지면서 안고 있던 박쌤이 외쳤다. 애기 발바닥에 박혀있는 쌀알보다 작은 돌멩이 한 개. 돌멩이라 하기에는 너무 작고, 가루라고 하기에는 살짝 큰 무언가가 패드에 깊게 박혀 숨겨져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박쌤이 돌을 쏙 빼주고 애기를 내려놨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잘 걷는다. 하....

 이작은 쌀알만 한 돌이 뭐라고... 며칠을 아파하고, 2차 병원 가고, 약 먹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전긍긍했는지....

이러니 약을 먹어도 심해질 수밖에 없지....

 mri 찍는 비용을 한참 계산하고 계시던 어머님은 입이 귀에 걸리신 채로 초진비만 계산하고 병원을 떠나가셨다. 졸지에 명의는 되었지만, 새삼 동물을 치료하는 건 어렵다는 걸 느꼈다. 만약 가시가 목에 걸린 사람이 말도 못 하고, 표현도 못한다면 가시가 목에 걸린 걸 찾는데 며칠이 걸릴까? 표현을 못하는 생명을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우리 애가 배가 터질 것 같이 부풀었어요. 배안에 뭐가 만져져요. 암인 거 같아요.."

  훌쩍이며 들어오는 보호자분. 누가 봐도 상태가 안 좋았다. 평소 2킬로 남짓 하던 요크셔테리어가 자기 몸보다 두배는 커져버린 배를 가지고 내원했다. 호흡도 안 좋고 며칠 전부터 밥도 안 먹는단다.

"하.. 정말 심하네요. 별일은 없었고요???"

"네 아무 일도 없었어요. 갑자기 왜 이러지...ㅠㅠ"

 서둘러 혈액을 뽑아서 검사를 하고, 방사선을 찍었다.

종양? 복수?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앗. 이게 뭐야"

 방사선에는 요키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뼈가 가득했다. 출산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이쁜 2세들이 배안에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아니. 임신했는데 이걸 아직도 모르면 어떻게 해요... 출산 직전인데..."

순간 멍~~ 해진 보호자.

"그럴 리가 없는데... 발정 났을 때 정말 조심했는데.. 도대체 언제...!!!"

 계획된 임신은 아니지만, 큰 병이 아니라는 말에, 그리고 어쨌든 이쁜 꼬물이들을 곧 볼 거라는 생각에 보호자분은 한결 더 좋은 표정으로 돌아가셨다.

 수의학은 인의학처럼 발전하기는 힘들다. 장비도 아직 부족하고, 보험도 안되고, 아직은 역사도 많이 짧다. 하지만 수의학의 발전이 더딘 가장 큰 이유는, 환축이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본인이 하나만 설명해주면 해결될 문제를.... '나는 여기가 아프다. 여기가 땡긴다. 여기가 불편하다' 한마디면 쉽게 접근할 문제를 돌고 돌아서 접근할 수밖에 없고 그사이에 치료의 적기를 놓치기 일쑤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또 재미있기도 하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처럼 따분한 것이 또 있겠는가.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으로 버라이어티한 동물병원의 일상. 나는 또 눈을 부라려야 한다.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매의 눈으로..


 


 진료 왔습니다. 원장님 초진이고요, 나이 많고요. 키우는 사람이 안 와서 정보는 아무것도 모른답니다. 어딘지 모르겠는데 아프답니다. 밥은 먹는답니다. 어딘지는 전혀 모르겠답니다.


'하... 의대 갈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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