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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rrr Sep 09. 2020

24시간 후면 사라질 관계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짱구 같은 내 인생

최근 일을 하면서 밀레니얼 세대, MZ세대에 대해 공부할 일이 많아졌다. 더불어 인스타그램을 좀 더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내 계정이야 예전부터 있었고 가끔가다 어디 여행 다녀오면 사진을 올리기도 하고 친구들의 게시물을 보고 좋아요를 누를 줄은 알았지만 딱히 남의 프로필 사진 주변에 무지개색으로 돌아가는 스토리나 라이브 방송을 눌러보는 편은 아니었다. 그걸 봐야 할 이유나 니즈가 내겐 없었다. 

하지만 요즘 20대 친구들이 주요 소비층이므로 그들의 생태계(?) 속에 싫든 좋든 며칠 있다 보니, 일반 피드보다 스토리를 더 많이 올리는 이유를 이제야 좀 어렴풋이 알 것 같더라. 거기다 요즘엔 사진을 올려도 댓글 허용도 잘 안 해놓을뿐더러, 사진은 갬성 그 이상의 뭔지 모를 모서리만 올려놓는 둥 갬성 of 갬성사진들로 가득하더만. 친구 태그를 해도 뭐 이상한 구석쟁이에 껴넣질 않나... 거기까진 진짜 이제는 더 이상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이해가 잘 안 되더라.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도 안 들고 그냥 "요즘 애들은 왜 저래?"란 말 한마디로 넘겨버리게 된다. 이렇게 꼰대가 되어간드ㅇ ㅏ,,,


오랫동안 (내가 삭제하지 않는 한) 흔적이 남는 일반 피드와 달리 스토리는 업로드 24시간 후 사라져 버리는 데다 누가 관음 했는지도 알 수 있어 요즘 세대에겐, 아니 적어도 인스타그램 유저들에게 더 매력적인 표현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가볍게, 부담 없이, YOLO스러우니까! 

이번에 처음 스토리 기능을 써본 나도 요 며칠 그 매력에 빠져 몇 번 스토리를 올려댔었다. 평소 절대 내 피드에 좋아요는 누르지 않지만 굳이 클릭해야만 볼 수 있는 스토리를 보는 사람들의 목록을 체크하는 재미란. 나랑 평소 개인적인 연락도, 소통도 않던 사람들이 내 스토리는 꼭 본다는 사실이... 관음 욕구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기본 욕구인가? 싶기도 하고. 뭐 사실 스토리는 옆으로 넘기다 보면 랜덤하게 보게 되니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이런 재밌는 현상(?)을 확인하고 나니 또 금세 인스타그램에 흥미가 떨어졌다. 특히나 내 친구들은 다 내 세대라서 요즘 젊은 친구들처럼 이해 불가한(?) 피드나 스토리는 올리지 않아 더 별 재미가 없었달까.


반면 MZ세대의 피드와 스토리는 확실히 마치 길티 플레져처럼 계속 보게 되는 재미가 있었다. 진짜 별별 사진과 일상을 다 공유하더라. 패스트푸드보다도 더 빠르게 일상을 소비하는 요즘 세대들과 진득한 관계 유지와 사유를 기대하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관계의 시작도, 끝도 더 큰 노력을 들이기보다는 조금이라도 귀찮아지거나 질리면 바로 swipe해버리고 잘못을 죽을 때까지 물어뜯거나 하루 아침에 잊어버릴 수도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심지어는 본인이 잘못해놓고 수습은 커녕 그냥 죽겠다고 공개 유서에 계좌번호를 써놓질 않나, 성실하게 욜로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 코로나19와 태풍도 아랑곳 않고 바다에 놀러갔다오질 않나. 이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멍청함에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짧고 빠르게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면서도, 그만큼이나 크게 다가오는 공허함을 메꾸려는 그들의 힙hip함이 슬프다. 많은 팔로워와 좋아요 숫자로 내 삶의 가치가 매겨진다니. 분명 라떼의 싸이월드, 버디버디와 비슷하면서도 인스타그램 등 요즘 SNS는 훨씬 화려해진 만큼 차가워진 느낌이랄까.


시대가 바뀔 때마다 신세대들의 사고방식을 이해 못하는 구세대들의 신세타령은 그침이 없었지만, 이젠 나도 완연한 구세대 사람이 되었나 보다. 그들과의 교류가 벅차다. 내 감정은 아직 30일 정도는 지나야 온전히 타오르든 타버리든 할 것 같은데, 너는 30초면 끝나버릴 감정이었구나. 그 간극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고 그 속에 합류하고 싶지도 않더라. 난 조용히 과거를 추억하며 시대의 뒷길을 갈 테니, 신세대는 또 새로운 문화를  '이렇게 하면 기분이 조크든요'하며 계속 만들어 주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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