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43
하얗게 눈 쌓인 밭둑길을 걸어갑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입니다.
어젯밤 빚은 만두를 밭둑길 끝에 살고 있는 이웃 지인에게 나눠드리러 갑니다.
걸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하고 소리가 납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입니다.
예전엔 겨울이면 자주 듣던 소리가 이젠 어쩌다 듣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눈 오는 날이면 엄마는 김장독에서 꺼낸 김치를 송송 썰고 그 김치 국물에 국수를 말아 주셨습니다.
그 국수를 먹고 나면 몸이 덜덜 떨려 우리 가족들은 자동적으로 화롯가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렇게 먹는 국수가 그 시절엔 별식이라 엄마는 넉넉히 해서 울타리 너머 옆집에도 나눠 드리러 가십니다.
며칠 전 들장미님 보호자분이 면회 오시면서 귤 한 상자를 사 오셨습니다.
들장미님은 당신 침상옆 상두대에 놓아 달라고 하셔서 그곳에 놓아 드렸더니 수시로 맛있게 드십니다.
귤을 참 좋아하시나 봅니다.
오늘도 들장미님 방에 가보니 손끝이 노랗게 되도록 귤을 까서 드시고 계십니다.
옆 침상에 들국화님이 저를 손짓으로 부르십니다.
"왜 그러세요?"
"나도 귤 좀 주세요"
"귤이 드시고 싶으세요?" 하고는 얼마나 드시고 싶으셨으면 그러실까 해서 요양보호사 휴게실에 있던 귤 세 개를 가져다 드렸더니 게눈 감추듯 금세 다 드셨습니다.
옆에서 드시는 모습을 보니 많이 드시고 싶으셨나 봅니다.
들장미님은 그 어느 것도 다른 어르신들과 나눠 드시지 않습니다.
그 세대 어르신들은 작은 것 하나도 이웃과 나누고 소통하며 사셨을 텐데 들장미님은 당신 것을 누구에게도 나눠 주시지 않습니다.
귤 상자도 방에 놓아달라는 이유도 밖에 두면 우리들이나 다른 어르신들이 가져가서 먹을 까봐 의심을 하셔서 당신 눈앞에 두고 드시는 겁니다.
귤 상자를 보니 1/3이 벌써 물러지고 있습니다.
귤이 물러진 물이 상자에 배어 나와도 귤상자를 못 건드리게 하십니다.
보호자분 말에 의하면 젊어서 들장미님은 집 앞에 지나가시는 이웃분들을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물 한 사발이라도 대접해 드리시는 인정 많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분이셨다고 합니다.
치매가 발병하시면서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변하셨다고 합니다.
치매는 좋은 분이 가지고 계셨던 인정마저 데리고 가는 아주 나쁜 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