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45
멀리 보이는 산 군데군데 하얀 눈이 녹지 않아 희끗희끗 보이는 걸 보니 아직 겨울이 떠나지 않고 있나 봅니다.
떠나려는 겨울 끝자락 아직 추위가 머문 날씨에도 우리 요양원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자분들이 찾아아 주셨습니다.
오늘 오신 봉사자분들은 장구와 타악기등을 이용하여 민요 부르기를 공연하신다고 합니다.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서 여러 종류의 악기들과 소품들을 옮기느라 봉사자들 모두 분주히 움직이십니다.
참 고맙고 대단한 분들이십니다.
우리 3층 요양보호사들도 2층에 있는 프로그램실로 어르신들 이동지원해 드리기 위해 바삐 움직입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수국님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거실에 나와 계십니다.
오전 내내 싸두신 보따리 때문입니다.
수국님은 당신 물품을 매일매일 보자기에 쌌다가 풀어놓기를 반복하십니다.
누가 가져갈까 봐 싸두시고 또 싸두었어도 없어진 물건이 있을까 풀어서 확인하시고 또다시 싸서 꽁꽁 묶어 두십니다.
2층 프로그램실에 가서 민요 공연 보는 사이 그렇게 정성 들여 싸둔 물건이 없어질까 봐 걱정돼서 거실을 서성이고 계십니다.
"나 안 갈래요"
"저 보따리 누가 가져가면 어떡해요?" 하시며 보따리를 들고 나오시려 하십니다.
하지만 워커에 의존해 걸어가셔야 하는 수국님은 보따리를 들고 가실 수가 없습니다.
보따리가 제법 크기도 하고 무겁기도 합니다.
"어르신 제가 들어다 드릴게요"
"안 돼요 내가 들고 갈 거예요"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수국님을 휠체어로 이동시켜 드리기로 했습니다.
휠체어를 가져와서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하니 그제야 수국님 얼굴엔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민요 공연 내내 다른 어르신들은 모두 흥에 겨워 박수도 치시고 춤도 덩실덩실 추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봉사자분들도 어르신들의 호응에 힘입어 신명 나는 공연을 펼치셨습니다.
그렇지만 수국님은 수국님 물품을 싼 보따리를 수국님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앉아 민요 공연을 구경하셨습니다.
프로그램 시간 마칠 때까지 박수 한번 못 쳐드리고 흥겨운 몸짓 한번 못하신 채로 보따리만 부여잡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