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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리 Jul 12. 2020

반응적 인간으로서 이십 대 소감문.

경쟁사회 속에서 반응적 인간으로 커가며 고통을 스스로 자처했습니다.


무용수 생활을 청산한 지 반년이 넘어간다.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카페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며 틈나는 대로 그림을 그리기도,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이제는 제법 웃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마음에서 행복이라는 게 묻어 나온다.

우울의 바다 위에서 불안을 연주하는 파도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나는 이전보다 한결 나아졌다. 그저 이 사실만으로도 지금은 감사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로 처신하는 것은 행복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다.


지난 시절 나는 국립극단 무대에서 길거리 공연까지 크고 작은 공연들에 출연하며 10여 년간 춤을 지속했다.

무대 위에서 사람들의 뜨거운 박수갈채와 응원 메시지가 내 안에 거대한 울림으로 들려왔다.

심장이 뛰고 있는 게 느껴졌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박수를 받고 있으니 뭐라도 된 것 같았다.

무대는 1년에 횟수로만 20회 넘게 올라갔었는데 매번 올라가는 무대지만 늘 긴장되고 처음인 것 같이 떨렸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했고, 이게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죽어라 했다. 나의 열정을 모두가 알아줄 것 같았지만

세상살이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나에 대한 와전된 소문들로 의지 할 곳 없는 신세로 전락하여 그저 작품에 필요한 무용수가 되면 시의 적절하게 나를 부르고 끝나면 공연 페이와 함께 뒤돌아서고 어디에 소속되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의 모습이 꼭 마치 콘크리트 바닥 위에 작게 움츠려 든 작은 콩벌레 한 마리 같아 보였다.

제 딴에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무심코 밟고 지나가면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는 게 콩벌레의 삶이다.


사방에서 울리는 비난의 목소리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어서 철판은 더욱더 두꺼워지고 내가 잘못 지내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 억지로 웃어보기도 했고 장난을 빙자한 나를 향한 사람들의 비난을 장난으로 받아들여보기도 했다. 애써 웃어보고 애써 태연해봤다. 어떻게든 지난 시간 나의 아픔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 같다. 그렇게 나를 감추려고 애쓴 탓에 아무것도 할 여력이 없었다. 나를 돌보지 못했다


불안증과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

나는 연남동에 거주하고 있다. 연남동은 내 고향이다.

예전에 철길이었던 곳은 공원으로 잘 가꿔져 지금의 연트럴 파크가 됐다.

나는 이곳에 살며 연트럴 파크에서 한 번도 앉아서 휴식을 취해본 적이 없다.

2019년 마지막 공연을 올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였는데 날도 시원해서 잠시 쉬었다 가고 싶어서 벤치에 앉았는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인파 속에서 덩그러니 있는 내가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잘못 끼워 맞춰진 퍼즐 조각 같았다. 나의 존재가 이 사람들의 행복을 망칠까 봐 빨리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는 나는 급하게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집으로 달렸다.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가방도 두고 달렸다.

달리던 길에 빵가게 창문에 반사된 나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왜 내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나를 부정할 수 있다면 백번 천 번이고 부정하고 싶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 크고 동그란 구멍이 나있는 기분이었다.


열심히 했다.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아서 더 열심히 했다.

악착같이 살았다. 허리디스크가 터져도 좌절하지 않고 몇 년 동안 재활 치료하며 쉼 없이 달리며  어떻게든 인정을 받으려고 정말 많이 애썼다. 남들 놀고 있을 시간에 부모님에게 레슨비 손 벌리기 싫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고, 남들 자는 시간에  뒤쳐질까 봐 불안해서 나 홀로 연습실에 남아서 연습했다. 그렇게 매일 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그 시간 쪼개가며 쪽잠을 자서라도 일해서 돈 벌고 학교 다니고 공연하고 재활하고 악착같이 했다. 잘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잘 지내보고 싶어서 그게 내가 10년을 무용 생활에 목숨 건 이유다.

나는 단지 잘 지내보고 싶었다.

증기를 뿜어내는 기관차 같은 지금 나의 심리상태와는 달리 너무나도 평온한 세상 속에서 나는 괴리감을 느꼈다.

후드 끈을 질끈 조여매고 집으로 들어갔다.

한동안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약 처방을 받고 아무 생각도 없이

심해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한몇 주간은 그렇게 시체처럼 산 것 같다. 약을 먹으니 약물작용 때문인지 아무런 생각도 안 나고 지나온 아픔도 조각조각 흩어져간다. 당장 30초 전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저 배고픔과 졸음이 전부였다. 새벽 늦은 시간이면 나도 모르게 한두 번씩 깨어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눈물을 쏟곤 했다.

내가 혼자 힘겨워할 때 방문을 조심스럽게 연 사람이 있었으니 엄마였다.

엄마에게 비밀로 하고 싶었으나 이내 들켜버렸다. 어머니는 울음을 터트리시며

"아이고.. 우리 아들 많이 아팠구나, 엄마가 몰라줘서 미안해.."

그 말을 내뱉으며 눈물을 보이시는 엄마를 보고 엄마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어머니로서의 무게가 보였다.

내가 잘못될 것 같은 직감을 받아서인지,

안 그래도 무거웠던 삶의 무게가 나의 잘못으로 더욱 짓눌르는 것은 아닌지

안 그래도 축 쳐져있었는데 그날은 유난히 더욱 축 쳐지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이제 무용 그만할래, 나 다른 일이 생각날 때까지 그냥 엄마 아들로 살아가도 괜찮을까?"

"아무렴 어때, 바빠서 우리 잘생긴 아들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었는데 잘됐다! 엄마 집에 들어와서 엄마랑 살자"


그날 밤 나는 엄마품에서 편안하게 잠들었고 조금 일찍 일어났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제는 조금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공원길을 걸었다. 평일 한가로운 오후 1시 이른 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얼마 만에 외출인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 평화로운 기분으로 책도 사서 읽어보고 그림도 그려봤다. 나는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럴싸하게 그릴 줄은 안다. 적어도 그림 같아 보이기만 해도 나는 만족하니까,

그리고 블로그에 용기 내어 글을 써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약간 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다. 근데 그것도 한두 번, 몇 번 올리다 보니까 이제 좀 익숙해졌다. 무용을 그만둔 내가 지금 가진 거라곤 솔직함과 정직함밖에 없다. 그래서 이것 두 가지만 잃지 말자는 생각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내가 쓴 글을 보며 내 마음에 강한 울림이 있었다.

웃긴 일이다. 무용수로 살아갔을 때는 그렇게 애써도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저 솔직한 표현만 했을 뿐인데 만족스럽고 마음이 부웅 뜬 느낌이다. 깊게 내쉬는 나의 호흡이 이전과 달리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을 받는다. 그 무엇에도 얽매여 있지 않고 있는 지금 나는 해방감을 크게 받았다.

그리고 해방의 느낌을 생각으로 떠올리고 깨달은 한 가지, 나를 속박시키는 것도 나를 해방시키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것.


충분히 애써봤다.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는 할 수 없어 그 어떤 식으로든 노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해"

그 말은 지당하게 맞다. 근데 나는 여태 너무 그렇게만 살았다.

너무 숨 막히게만 앞만 보고 달려왔던 탓일까,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줬다. 노력의 방법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다. 남들보다 정진하는 것 남들이 깨어있을 때 더 열심히 하고 남들이 잠드는 시간에도 멈추지 않는 것 남들이 술 마시고 놀러 가면 그 사실에 안도하며 시간을 벌어들였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 동안 남들보다 더 연습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했던 노력이고 나를 배반했던 방법이다.

노력의 본성은 경쟁심을 부 축이는 것이고, 경쟁심은 결국 나를 타인과 비교하게 만든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과 비교를 했다.

여태 이렇게 살아보니 이 길의 끝을 알 것도 같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안 가본 길로 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나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개척하면 된다.


모험은 내 안에서 시작돼서 세상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 있다.

바로 여행이다. 남들에게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나 나에게만큼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나려 한다. 아무 의미 없이 정말 힘든 여정을 하고 싶다. 그 속에서 우연히 삶의 지혜를 얻으면 너무 감사하지만 그게 아니어도 좋다. 내가 도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설레고 설레는 이 마음이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너 그렇게 허송세월 보내다 나이 먹고 아무것도 안되면 어쩌려고 그래"

요즘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염려하 이런 조언들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생긴다.

모두 사랑으로 비롯된 고마운 말이지만, 나는 더 이상 반응적인 삶을 살기 싫다. 나에게 아낌없는 사랑의 조언을 해준 이들과, 나를 지켜보고 응원해주는 모두에게 위대한 탐험가 콜럼버스가 남긴 명언 한마디를 남기고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할 때만큼 멀리 갈 때는 없다."

  


글: 백야

사진: al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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