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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C Apr 12. 2016

작업치료사의 어느 하루

손과 무표정과 소리 없는 눈물.

뉴욕에 있는 크지 않은 종합병원. 원래는 5 년만 다니려고 맘을 잡았건만 벌써 10 년이 넘게 있을 줄이야.

지난 10+ 년동안 이일을 하면서 맨해튼을 비롯해서 다른 지역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루 30 분 안팎을 본 환자들, 매주 두세 번 30 분씩 만난 환자들, 약 2 주 동안을 거의 매일 한 시간 반씩 본 환자들까지.. 하루에 보통 10-15 명.. 정말 많다. 하지만 이 작은 도시에서 그 사람들을 다시 마주친 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 10 년 전 나에게 치료받고 고맙다고 2 년 전까지만 해도 나를 찾아와 인사하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끔 지나가다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예전 환자들이 지나가면 정말 반갑다. 전에는 한 명의 homeless를 지나가다 봤는데 낯이 익은 거 같아 다시 보니 전에 내가 치료했던 사람이다. 가서 인사는 못했다. 그 사람도 나를 못 봤다. 때가 묻은 진한 색의 옷을 입고 길에서 돈을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 모습에 별로 맘은 안 아팠다. 적어도 지금은 환자복을 입고 있지 않았고 휠체어에 있지도 않고 두 발로 걷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다시 보면 기억도 다시 떠오르고 반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환자들과 많이 친해지지 않으려고 한다. 같이 일하는 어느 치료사들은 치료하던 환자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만나서 밥도 먹고 하는데 난 그렇지 않다. 그것은 친해지면 치료사의 냉정한 마음이 줄어들고 오히려 그 사람을 친구나 가족같이 케어해주는 맘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정이 들면 마냥 얘기만 나누고 소소한 일을 도와주고 그 사람이 마음 아픈 일에 같이 마음이 아파진다. 그러면 정말 냉정한 맘이 없어지고 '치료'라는 중요한 것에 무게를 두지 않게 될 것 같다. 하지만.... 10년 넘게 지켜온 나의 소신이 이번 주에 많이 무너졌다.


아주 심한 gout으로 고생을 하던 80 세 할아버지가 있었다. 필리핀계 사람인데 눈매가 꼭 우리 아빠와 비슷했다. 크게 웃지 않고 말도 없고 무뚝뚝한 것,  밥은 잘 안 먹어도 달달한 것을 항상 찾는 입맛도 닮았다. 매일 아침 9 시면 그분을 데리고 치료를 해드렸다. 정말 크게 한 것은 없다. 손가락과 손목이 굽혀지지 못할 정도로 퉁퉁 붓고 아파서 내가 급하게 할 일은 그분이 아픔을 조금이나마 tolerate better 하게 도와주는 것, 그래서 덜 아픈 손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숟가락, 펜, 컵 등등 손으로 잡아야 하는 것들을 두껍게 만들어서 잡기 쉽게 한다거나 혼자서 서서 무엇을 할 때 제일 쉽게 편하게 할 수 있는 자세를 가르쳐 준다거나하는 것이었다.  내가 하자고 하는 운동을 아파도 다 했다. 2 주가 조금 넘게 매일 한 시간 반씩 그분과 나의 하루를 시작했다. 치료시간은 아주 조용했다.  그 환자가 무엇보다 원하는 건 어서 빨리 혼자 사는 집에 가는 것이었다. 뭐니 해도 집만 한 곳이 있으랴. 처음엔 무표정으로 묵묵히 치료를 받다가 치료시간이 마칠 때 즈음엔 그제야 끝났다는 것을 알고 아주 작은 웃음을 보이고 애들처럼 눈이 초롱초롱 해졌다. 하지만 치료 중에 너무 표정도 없이 슬퍼 보이는 그분을 웃게 하려고 말도 안 되게 말장난도 치고 그분이 듣고 싶어 할 요즘 세상 얘기와 질문도 하길 시작했다.. (젊었을 때 외교관으로 일했단다). 내가 별로 관심 없는 세계 뉴스도 얘기하고,  내가 그나마 알고 있는 얇고 얇은 외교 지식도 얘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엔 조용하고 말도 없던 그가 1주가 좀 넘으니 조금씩 나를 보면 웃고 가끔 농담을 던지기 시작했다. 가족에 대해 말도 하고 나에게 질문을 묻기도 했다. 그분의 기분은 집에 갈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업돼는 듯했다. 에너지도 많아지는 거 같아 치료하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 날, 그 환자는 나더러 꼭 인사를 하라고 했다. 다른 환자들을 보고 기다리다가 잠시 방에 들렸다. 반가워해 줬다. 나는 잘 가라고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다신 병원에 오지 말라고 인사를 하는데 그분은 말이 없었다. 입을 꾹 닫은 체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얼굴이 붉어지는 걸 봤다. gentlemen's cry라고 하고 싶은데, 말없이 눈물을 삼킨다고 해야 하나. 딱 그거였다. 정말이지 그 사람이 꾹꾹 삼키는 눈물과 표정은 정말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고마움, 기쁨, 슬픔 그리고 헤어지는 아쉬움 까지... 그 눈물은 어떤 눈물이었을까. 단지 헤어짐의 아쉬움?  나의 눈물은 아마도 앞으로 이동도 힘든 저분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내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을까, 혼자 사는데 또 아프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가족은 집에 가려고 휠체어에 앉은 그분의 눈물을 참는 모습에 같이 소리 없이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분의 딸이 하는 말, '한 번도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이 없는데 치료사님을 보면서 우네요'...

다시 안아주면서 난 그랬다. 더 아프지 말고 몸 잘 챙기고 다시는 병원에서 밤을 보내지 말라고!  그분은 그냥 끄덕거릴 뿐 입은 꽉 닫고 내 눈도 안 봤다.


그분... 아마 가끔 생각이 날 거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울퉁불퉁 nodule 투성이던 손가락과 무표정, 툭툭 던지던 조크들... 그리고 눈물을 꾹 참던 그분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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