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에 대한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나지만 달달한 향은 아주 질색이었다. 불량식품 사탕 냄새 같다 해야 되나, 개미 꼬일 것 같다 해야 되나. 아무튼 그런 면에서 우드윅의 블랙체리는 단연코 불호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달달한 것들을 과하게 때려 넣은 듯 투머치한 단내였다. 시향 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구매했기 때문에 처음 향을 맡았을 때 나는 ‘완전 망한 소비’라 생각했다. 시향 해보지도 않고 구매한 이유는 하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 초를 좋아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초를 끄고 보니 어느새 절반이나 사라져 있었다. 갖고 있는 캔들이 이것뿐이어서가 아니다. 내 취향인 또 다른 캔들이 있는데도 나는 줄곧 그 사람을 생각하며 이것만을 피웠다. 자주 같은 향을 맡다 보니 익숙해졌고, 익숙해지다 보니 좋아지게 된 것이다.
줄어든 초를 보면서 취향을 공유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몇 년 전에 나는 좋아하는 누군가의 취향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이 자신의 취향을 소멸시키는 일이며 그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오히려 누군가의 취향을 따라 하다 보면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세계를 접해볼 수도 있고, 자신의 취향을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취향을 공유하는 것은 이 시대에 몇 없는 낭만이라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단 한 번이라도 더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브런치에 ‘사랑은 자해다’라는 글도 썼지만서도…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건 정말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멋진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