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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써서 부럽다는 말에 대하여

by 끼라

본론에 앞서 먼저 힘주어 말하자면, 이건 절대로 자기 자랑이 아니다.


나는 내가 남들에 비해 뛰어나게 글을 잘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9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문예창작과에 합격한 게 나의 글쓰기 실력보다는 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실기 시험을 치르고 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건 학부생 시절의 생각이 1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묵은지처럼 내 안에서 꾸준히 숙성되고 있는 생각이라는 뜻.) 워낙 주변에 글 쓰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나라에 글 잘쓰는 작가들도 넘쳐나다 보니 나는 스스로 아직 한~~~참 멀었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에세이 출간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과 출판 편집자라는 직업 때문에 종종 주변에서 '글 잘쓰는 거 부럽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소서든 뭐든 글 관련 일을 도와주고 감사의 말이나 칭찬을 들을 때도 있다. 좋은 말이니까 당연히 기분은 좋다. 그런데 그게 겉치레로 하는 인사였든 진심이었든 간에, 부끄럽고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잘 와닿지가 않는다. 다른 칭찬들에 비해 유독 '글 잘쓴다'는 말만 흡수되지 않고 사방팔방으로 튕겨져 나간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내가 타인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다른 하나는, 글은 노력하면 누구나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앞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내가 잘나서 남들의 재능을 부러워하지 않는 게 아니다. 오히려 결핍이 많은 인간임을 안다. 남들을 아예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SNS 중독자인 만큼 당연히 다른 사람들을 자주 시기 질투한다. 그럼에도 나는 재능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존재하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글, 그림, 음악과 같은 창작예술 관련 분야뿐만 아니라 운동, 요리, 청소, 하다못해 연필 깎기나 길 찾기, 눈대중처럼 사소한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단지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 발견하고도 그냥(혹은 어떠한 상황 때문에) 지나치는 사람과 발전시키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특기는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다. 나 또한 여러 가지 특기 중에서 가장 쓸모 있고 흥미로운 것을 공부하고 업으로 삼았을 뿐이다. 내게 글 잘쓴다는 이야기를 해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마찬가지로 나는 잘 못하지만 그들은 잘하는 것들, 내겐 모자라지만 그들에겐 충분한 부분들이 있다. 재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존재하기에 타인의 재능이 부럽지 않은 것 같다.




글은 노력하면 누구나 잘쓸 수 있다. 물론 소설이나 시 같은 순수문학 장르에서는 상상력이나 감수성 같은 선천적인 부분도 크게 작용하겠지만, 이 외에는 노력만 한다면 분명 실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 뻔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방법은 어렵지 않다. 첫 번째는 좋은 글과 책을 최대한 많이, 그러나 급하지 않게 집중해서 읽는 것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 덧붙일 말이 없다. 무책임한 마무리인가... 아무튼 다독(多讀)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일기를 쓰는 것이다. 핸드폰 메모나 노트북 말고, 실물 다이어리에 손으로. 오늘의 (혹은 최근) 인상 깊었던 일과 그에 대한 나의 생각, 감정, 계획 등 무엇이든 정리하면 된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 그 시간들이 나의 삶을 '글'로 이끌었다고 믿는다. 일기는 내 삶의 뿌리와도 같다.


셋째로 강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 있다. 바로 '필사'다. 필사란 글을 직접 따라 쓰는 것이다. 필사는 단기간에 문장력을 키우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사실 나는 진로를 고3 여름방학 때 정했다. 예술 관련 학과를 지망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빠르면 초등학생 때부터, 늦어도 고1 때부터는 준비를 하는 반면, 나는 늦어도 너무 늦은 시기에 진로를 정하고 실기 준비를 시작했다. 교습소 선생님이 내준 주제로 소설을 쓰는 것 말고 실기 시험을 위해 내가 한 것은 필사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교습소 선생님의 조언대로 오정희 작가의 <새>라는 장편소설을 필사했다. 분량이 16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는데 무려 세 번이나 따라 썼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다른 친구들이 문제집을 풀 때, 나는 소설책을 펼쳐놓고 두꺼운 스프링 노트에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을 베껴 썼다. 태어나서 소설이라고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던 내가 당당하게 실기 시험에서 합격할 수 있었던 건 전부 필사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글 잘써서 부럽다고, 글 쓰는 건 너무 어렵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했던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이 또한 뻔한 말이지만, 쓰면 쓸수록 실력이 는다. SNS나 블로그에 쓰듯 가벼운 마음으로 써보는 것도 좋지만 주제를 확실히 잡고 정돈된 글을 많이 쓸수록 도움이 된다. 고백하자면 내가 지금 이 글을 굳이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글을 많이 써봐야 한다. 정말로 쓰고 싶은 글이 있어서다. 이 글은 그 글을 위한 준비 운동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당분간은 이런 식으로 무엇이든 쓰러 올 것 같다.




글쓰기가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두고 일단 그냥 써보라고. 왜냐하면 그 글이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글일지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글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반드시 필요한 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글이란 작가의 손이 아닌 독자의 마음에서 완성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싶어서 계속해서 글을 써볼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어쩌면 지금의 나를 위해 쓰인 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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