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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회의원 안민석 Jul 06. 2020

스포츠인권과 그 적들, 그리고 국가아마추어리즘

철인3종 국가대표 최숙현 선수가 야만적 폭력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짧지만 강렬한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항상 그렇듯 사망 보도가 나서야 호들갑을 떨지만 여전히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연초부터 이미 제보와 신고를 접했지만 묵살한 결과 선수는 절망을 안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수두룩한데도 아무도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다.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알려진 스포츠 인권 사건 중 가장 추악하고 특히 지난해 빙상 쇼트트랙 성폭력 사건으로 대통령까지 나서 체육계 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한 터라 더욱 충격적이다.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도 체육계의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체육계 폭력이 반복되는 구조적 진실은 무엇일까? 구조적 진실을 덮어 두고 미봉책으로 마무리한다면 앞으로도 스포츠 폭력은 계속될 것이다. 더 이상 스포츠 폭력의 구조적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2005년 태릉선수촌 쇼트트랙 국가대표 구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국회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하는 동안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인권보다는 메달을 우선한다는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있어 놀랐다. 메달을 위해 폭력이 정당화되고 폭력을 용인하는 승리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한 스포츠 폭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학부모들이 신봉하는 승리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인권대통령 정부조차도 없애지 못한 결과 심석희 선수에 이어 최숙현 선수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였다. 앞으로도 인권보다 메달에 가치에 두는 승리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한 스포츠 폭력은 지속될 것이다.


승리지상주의는 박정희 유신시대의 유산이다. 1972년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정권은 북한과 냉전 대결을 본격화했고 이때 스포츠를 총성 없는 대리전으로 간주했다. 일본에 지더라도 북한만은 이겨야만 했다. 70년대 북한보다 열세인 엘리트 체육을 강화하기 위해 합숙소, 연금, 군면제, 태릉선추촌, 특기생제도, 소년체전 등 사회주의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유신정권의 스포츠는 국위를 선양하고 체제 우월성을 나타내는 도구로 전락되었고 이때 국가아마추어리즘이 정착되었다. 특히 전두환 정권은 스포츠를 사회통합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 서울올림픽 개최, 프로스포츠를 적극 지원하였으니 70, 80년대 스포츠는 국민 건강은 뒷전이고 국가 권력의 필요에 의해 체제 우월과 사회통합의 도구로 엘리트스포츠가 이용되었다.


아마추어 선수를 국가가 육성하고 보상하는 국가아마추어리즘은 북한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운영했던 사회주의 스포츠 정책이다. 국가아마추어리즘은 승리지상주의를 낳았고 승리지상주의는 선수의 인권은 뒷전이고 메달과 우승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다. 문제는 90년대 사회주의 국가 몰락 이후 국가아마추어리즘은 종말을 고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국가아마추어리즘을 국가체육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우리처럼 국가아마추어리즘을 가진 나라가 없었고, 현재에도 북한, 중국을 제외하고는 국가아마추어리즘을 운영하는 나라가 없다. 연중 국가대표 선수촌 운영, 특기생 제도, 연금제도, 군면제 특혜, 연금제도, 합숙소 등이 국가아마추어리즘의 독특한 제도인데 이러한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는 지구상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국가아마추어리즘은 필연적으로 승리지상주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2000년 장희진 수영선수 파동, 2005년 태릉선수촌 쇼트트랙 구타 사건에 이어 지난해 쇼트트랙 사건과 이번에 최숙현 선수 사건의 공통점은 개인의 일탈이나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국가아마추어리즘이 낳은 결과이고 정부가 국가아마추어리즘을 폐기할 의지가 없으니 사건에 대한 책임은 유야무야되고 대책은 미봉책에 그쳤으니 스포츠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스포츠 폭력은 지속되고 있고 언제라도 불행한 일은 발생할 것이다. 즉 국가아마추어리즘을 정부 스스로가 철회하지 않은한 스포츠 폭력은 지속될 것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은 스포츠 인권을 강조하며 스포츠 생태계 변화를 촉구하지만 국가아마추어리즘과 스포츠 인권은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 개념이다. 국가아마추어리즘을 폐기해야 한다.‘더 많은 메달’을 위해 더 많은 ‘사회주의식 보상제도’가 필요했다. 폭력은 이 구조 아래서 무한증식되어 왔다. 더 많은 메달의 강요를 포기하고 사회주의식 보상제도를 개선, 정비해야 한다. 국가와 소속집단을 위한 헌신을 강요하지 말고 보상제도를 선진국 수준의 제도와 시스템으로 정비, 개선한다면 국가아마추어리즘의 문제점은 대체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유신의 잔재이자 사회주의 체제의 유물인 국가아마추어리즘 정책의 폐기 없이 선진국 수준의 스포츠 인권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다름없다. 국가아마추어리즘에 대한 미련과 유혹을 버리지 않으면서 스포츠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하는 것은 구조적 진실을 외면한 처사이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큰 대안의 하나가 바로 스포츠클럽이다. 스포츠 폭력을 근절하는 근본적 대안은 승리지상주의를 잉태한 국가아마추어리즘 대신에 국민복지와 건강을 위한 스포츠클럽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백 년 이상 시행해 오는 스포츠클럽을 도입하면 청소년과 시민들이 행복한 스포츠복지 시대를 열고 스포츠인권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즐거움과 건강을 위한 스포츠클럽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면 스포츠 폭력이 사라지고 선진국처럼 스포츠클럽을 통해 엘리트선수가 육성되는 새로운 체제를 확립될 것이다. 박정희 유신의 잔재인 국가아마추어리즘을 털어 내고 스포츠클럽 시대를 열어 가는 시대적 과제를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실천해야 할 것이다. 메달과 우승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승리지상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누구나 즐겁게 운동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스포츠 클럽으로 가게 되면 폭력 없는 선진국형 스포츠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스포츠인권은 복잡하지 않다. 신체적 언어적 폭력 없이 하고 싶은 운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스포츠생태계 혁신을 지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도적 혁신의 핵심인 스포츠클럽지원법이 지난 20대에 발의되었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된 것은 스포츠 폭력에 국회의 책임 방기도 비난받아 마땅하다. 직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을 하는 동안 스포츠클럽법을 제정하려 했지만 무산된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다행히 지난해 스포츠혁신위원회가 스포츠클럽 도입을 제안했기에 향후 정부의 분명한 의지를 기대한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로 시민건강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 있는 21대 국회에서 스포츠클럽법을 제정하길 바란다. 국민 누구나 클럽에서 운동을 하도록 시설과 지도자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스포츠클럽을 통해 시민들과 청소년들은 건강을 지키고 스포츠클럽을 통해 우수한 선수들이 발굴되고 선수들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도전하는 정상적인 스포츠 가치를 되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구조적 진실을 직시하고 주저 없이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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