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모리 Apr 23. 2023

우리가 이토록 불완전함에도

매일 싸우는 주제로 또 싸운 밤. 카페에서 겨우 화해 아닌 화해를 하고, 말없이 밤거리를 걸어 들어온 밤.

그는 묵묵히 잘 준비를 하는 나의 곁에 서서, 나를 조용히 안았다.


그와 나는, 지금 우리가 그리하였듯, 

너와 나의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기꺼이 그리하겠다고 서로가 서로를 선택했고, 끌어안는 삶을 선택했다.


냉전 후 무거운 공기를 먼저 깨 준 그가 고마웠다. 

그를 두 팔로 감싼 채 내 입에선 의식하지 않은 말이 흘러나갔다.


“모든 걸 다 이해하지 못해 미안해.”


나는 내가 너무 옳아서, 내가 너무 타당해서, 이 당연한 이치를 이해 못하는 그 앞에서 미칠 노릇이었다. 

그를 이해시키려고 바락바락 악도 써 보고, 침묵도 해 보고. 지난한 투쟁 속에서 나는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갈등이 반복되며 이제는 화를 넘어 무력하고 슬펐다.


내게 내가 너무 옳듯 그에게는 그가 너무 옳을 것이다. 

그에게 그의 것은 차마 나에게 양보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무언가일 것이다.

내가 나의 것을 놓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꼭 쥐고 있듯이.


그의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과, 나의 것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나는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도 당당하다기 보단 오히려 울적했다. 

평생 우리는 평행선을 달려야 할까. 

결국 나는 우리 남편이 글쎄, 하고 결국 배우자 흉을 보는 아내가 될까.


너를 이해한다 말하면서도 ‘네가 바라는 그것’은 결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부부 대화에 관한 책을 아무리 읽어본들, 배려하겠노라 겉도는 다짐만 커질 뿐이었다.

그의 실재를 끌어안을 마음은 별달리 커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 불완전함을 어떻게든 마주해야 한다. 

평생 무력감을 안고 살고 싶지는 않다. 

그를 위해서만 노력하리라 다짐하면 억울함이 들지만

결국 나를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기꺼이 또 해볼 의지가 생긴다.


평행선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좁혀 보자. 

두 선의 앞머리를 조금씩만 기울여, 언젠가는 서로 만나기를 기대해 보자.


무조건 내 편인 친구들에게 하소연할 시간에, 차라리 책을 읽자. 

또렷한 답 하나가 책에서 튀어 오르지 않아도, 

책을 덮고 그에게 “배려하겠노라” 말이라도 한 번 더 하고, 마음으로 다짐이라도 한 번 더 하자.


분노에 얼굴이 굳고 무력감이 들어도, 그래도 바깥에 나가 바람 한 번 쐬고 하늘 보고 한 번 웃으며, 

화가 더 큰 화를 부르지 않도록 내 안에 불을 내가 직접 꺼 보자.


그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대신, 나와의 대화부터 시도해 보자. 

빈 창을 열어 글을 쓰며 분노를 안전하게 나에게서 빼내자. 그리고 나를 위한 기준을 찾자.


나의 바람을 전달하되, 그의 바람을 함께 헤아리자. 

그의 바람을 수용하되, 내게 부담 없는 규모로 한계를 정하자.

나의 한계를 존중하되, 가능한 선에서는 노력을 보이자. 

그의 한계를 인정하되, 그가 보인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하자.


생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면, 

함께 살아가는 일은 ‘우리’라는 관계 속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나에겐 나의 답이, 너에겐 너의 답이 있겠고, 두 답이 상충한들 어쩌랴. 

너를 끌어안기로 결심한 건 나인 것을. 

내 눈에 불완전한 너일지라도, 

힘이 닿는 한 끌어안아보겠다고 모두 앞에서 엄숙히 선서까지 해버린 것을.


나조차도 밀어내던 나의 불완전함을 먼저 끌어안아준 네가 있어서

그 힘으로 지금 내가 이렇게 단단히 존재하고 있는 것을.

작가의 이전글 의사소통 성공 전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