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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Oct 14. 2023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의 유년기, 그냥, 그냥…

여러 가지 색깔 중에 네가 가진 색은 꼭 회색 같아.

 #1

어렸을 적 기억에 대해서는 불과 어제 일 같이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는 점이 아이러니였다. 이혼이라는 과정을 겪었던 6살 꼬마는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조건 없는 사랑과 안정감을 오롯이 느낄 수가 없었다. 나의 세계는 반이 되었고 분리가 되었으며 자의에 의한 분리가 아닌 부모의 독단적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아프고 힘든 감정들이 뒤엉켰다.


#2

그때부터였을까, 본래도 잘 툴툴대고 질투가 많았던 나는 다른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안전하지 않아", "나는 사랑받지 못해", "나는 사랑받을 수가 없는 존재야", "사랑받으려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 해", "내 감정들은 숨겨야만 해", "내 의지와 주장은 필요 없어", "나는 올바른 사람이어야만 해"

고작 6살밖에 먹지 않은 나이임에도 이런 제한적인 믿음들이 내 속에서 자라날 때, 나는 지극히 혼자이고 혼자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때로는 이런 상황들이 화가 나고 감정들이 너무 커져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혐오를 느끼고 아픔을 느끼기도 했다.


#3

이 모든 힘든 감정들은 왜 생기는 것이며, 무엇으로부터 흘러 온 것일까를 생각하자면 부모의 이혼과 부재에서 오는 결과기도 했다. 나의 삶에서 두려움과 아픔, 외로움, 화, 불쾌하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계속해서 올라오는 이유는 단지 내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간으로 여겨졌던 까닭이었다.


#4

유년기 시절을 떠올려보면 타인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소심하고 어둡고 침침하고 남루했던 모습에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내가 생각이 난다.

남들에게 거부당하는 일, 판단받는 경험, 고립되는 경험을 유년기에 절절하게 느끼고 난 뒤 내린 결론은 '혼자여도 괜찮아, 편하니까'라는 생각뿐. 타인에게서 벗어나 철저히 스스로를 고립화하고 외로움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타인에게 느끼는 모멸감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소하려고 했다. 소위 말하는 왕따 내지는 주체적인 왕따가 되기를 자처한 것이다.


#5

아무도 진정으로 나를 원하지 않는다 라는 강한 믿음은 중학교 시절,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고, 이맘때 갔던 청소년 수련회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던 한 분이 내게 와서 '너는 꼭 회색 같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그런데 그런 친구들은 밝은 곳에서 볼 때 훨씬 빛이 나니까, 충분히 지금의 너의 모습도 괜찮은 것 같아.'라고 이야기해 줬다.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듣기에는 눈물이 핑 도는 말이었다. 그냥… 하는 말로 듣기에는 내게는 굉장한 타격감을 주었던 말이었다. '단지 색깔에 나를 비교했을 뿐이잖아' 라며 무덤덤해지려고 해 봤지만 나도 모르게 그 이야기를 듣고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던 게 기억난다. 그때 친구들은 내가 그분께 혼났던지, 아니면 불을 지피며 캠프파이어를 하는 과정 중 감동의 눈물, 부모님을 보고 싶은 마음에 흘리는 눈물이라 생각했으리라.  


#6

그맘때 나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나의 감정을 숨기고 그들의 굴레 안에서 특별히 모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분명 잘 해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분명 그분은 나의 상처를 본 것이었다. 내가 또래보단 사실 굉장히 일찍 커버렸단 것을 봐버린 게 분명했다. 당혹스럽고 속을 들킨 것 같고 눈물샘이 터져 주체가 안될 정도로 터져 나와 그날 난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끅끅 대며 자리에서 울기만 했다.


#7

나의 어린 시절은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 원망, 자기 위로가 한데 모여 뒤섞여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로 뒤섞여 있다. 그리고 나는 절대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끊임없이 갖게 했다. 에고에 빠진 사람은 본인을 자기 방어 기제로 보호하려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높게 드높게 쌓아놓은 탑은 이처럼 작은 위로의 한마디에도 와그르르 와장창 무너지곤 만다.

그때의 나는 괜찮은지, 외롭진 않은지 내게 물어봐줄 이가 있었으면 했을지도 모른다.


#8

주 양육자의 부재, 무관심은 겉으로 보기에는 특별히 티가 안 날지언정 사실 우리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상처받은 이들은 안다. 아이가 늙은이 같이 말대답을 하며 애어른 흉내를 낼 때에도 그 아이 자체가 애늙은이가 아니라 어른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야겠다 판단이 들 때  아이가 어른처럼 빨리 성장해서 본인에게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것임을..


#9

인간은 타인의 믿음과 확신의 말들이 필요하다. 나 스스로가 자기 확신을 갖게 되려면 가능한 많은 관심과 신뢰를 받고 자라야 하며, 이러한 것들로 둘러 쌓여 진정 나 자신에 대한 자기애와 확신을 가지며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추후 어른이 되어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으니까, 나의 가치를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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