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손수건의 그녀를 찾습니다
롤러스케이트(Roller Skate)란 바퀴가 달린 스케이트를 뜻하는 단어로 바퀴 네 개가 자동차처럼 배열된 쿼드 롤러스케이트와 직렬로 배열되 있는 인라인 스케이트가 있다. 8090 시대 때 즐겨 탔던 롤러스케이트는 1990년대 후반 바퀴 4개가 한 줄, 직렬로 배열되어 있는 인라인 스케이트로 발전해 19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2000년대 초 인라인 스케이트는 국내에서 쿼드 롤러스케이트가 아닌 인라인 방식으로 바뀌었고 바퀴 달린 신발 등도 크게 열풍이던 때가 있었다. 인라인 스케이트는 지름이 클수록 균형과 안정성은 낮아지는 반면 스피드는 인라인 스케이트가 안정성을 띄고 있는 쿼드 보단 기능적으로 훨씬 월등했다. 즉 쿼드는 바퀴가 2*2 형태로 총 4개 자동차 바퀴 형태로 배열이 되어 있고, 인라인 스케이트는 직렬로 4개가 배열되어 있다. 마치 아이스 링크를 타는 스케이트 신발의 느낌처럼 말이다.
#1
어렸을 적 롤러스케이트의 인기는 상당했다. 아파트 내 단지에 살고 있던 어린 친구들은 하교가 이뤄지면 모두가 늘 그렇듯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나와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를 누비며 씽씽 달려 나갔다. 실내 라이딩이 이 때는 흔치 않았던 터라 아파트 외부에 계단 반대쪽에 있는 내리막과 자동차가 오가는 곳의 경사진 면에서 아이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놀았다. 모두가 삼삼오오 스피드를 내며 경주하듯 길을 미끄러지며 나아가면 롤러스케이트가 없던 친구들이 뒤를 이었다. 다들 한 번만 타보자고 아우성이거나, 빠르게 앞질러 가는 롤러스케이트를 이기고 싶은 마음에 뜀박질을 하며 롤러스케이트를 추격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시멘트, 아스팔트 길, 흙길 어디던 상관없이 쭉쭉 앞을 뻗어 나가듯 달려 나가던 롤러스케이트는 그때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엄청 재밌겠다…' 부러운 마음에 항상 또래 친구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우리 집에도 롤러스케이트가 생겼다. 무려 사이즈가 L사이즈가 말이다.
#2
"한 번만 신어보면 안 돼?", "응. 안돼.", "한 번만 신어보고 싶은데…", "넌 커서 어차피 못 신어."
단박에 거절을 하는 두어 살 많은 언니에게 원망 반 아쉬움 반 눈을 흘겨보지만 이내 싫다고 딱 잘라 말하는 모습에 더는 롤러스케이트를 타보자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수학 경시대회에 입상한 대가로 탄 무려 십여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금액이었던 롤러스케이트였다. 롤러스케이트는 발목까지 바짝 올라오는 장화와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L 사이즈는 무려 240부터 270도 수용 가능한 큰 사이즈였다. 230이 체 안 되는 내 발의 크기에는 발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사이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대하게 크기만 했었는데 그래도 꼭 '그것'을 한 번은 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회가 왔다.
#3
연일 이어지는 학원의 일과에 언니는 좀처럼 오후 시간대에 빨리 귀가를 하지 못했다. 방 한편에 놓여 있는 롤러스케이트 신발 상자를 만져보다 용기를 내 방 안 한 구석에서 L 사이즈의 거대한 롤러스케이트를 신어보았다. '제법 그럴싸한데? 멋지다!' 롤러스케이트 앞에 발목 끈을 네 번 이상 휘휘 돌려 매듭을 지은 후 방 안에서 바퀴를 굴려가며 타보니 발에 사로잡힌 것 마냥 거대한 롤러스케이트는 앞으로 주욱 주욱 미끄러져 갔다. 친구들처럼 전력질주를 할 수도 없거니와 작은 방 한 칸에서 롤러스케이트를 바깥에서처럼 타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름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요령을 터득하고 나니 이내 재미를 느꼈다. 언니가 학원을 끝마칠 무렵 다시 끈을 풀어놓고 상자 안에 넣어 두면 아무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며 매일 그렇게 커다란 롤러스케이트를 방 안에서 탔다. 또래 친구들이 없던 나로서는 롤러스케이트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재미이자 행복이었다. '조금만 더 작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괜찮아. 재밌으니까! 이걸 밖에서 타면 얼마나 재밌을까?' 라지 사이즈의 롤러스케이트를 집에서 시 운전을 해보듯 매일 같이 타던 나는 이걸 가지고 나와 바깥에서도 탈 수 있는 날을 꿈꿨다. 아마도 이걸 타고 바깥에서 스피드를 내면 발목이 삐거나 꺾여서 접질릴 수밖에 없을 텐데, 그런 걱정도 잠시, 바깥에서 언제 타볼 수 있을지 하루하루 기대를 하던 나였다.
#4
자전거를 타고 밖을 나가려던 언니에게 어느 날 물었다. "언니, 나 롤러스케이트 한 번만 타봐도 돼? 나 커도 탈 수 있어. 언니 몰래 사실은… 집에서 타 봤어." 의아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던 언니는 왜 허락도 없이 자신의 롤러스케이트를 탔느냐며 묻다가 이내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타보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나이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언니의 커다란 롤러스케이트를 발에 넣으며 평소처럼 신발 끈을 휘휘 감아 바짝 당겨 맨 뒤 밖을 나섰다. 방 안에서 타던 롤러스케이트와 바깥 지면에 닿아 바퀴가 매끄럽게 굴러가며 앞을 나아가는 롤러스케이트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지면을 쭉쭉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내 모습을 보더니 언니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크지 않아? 괜찮아? 왜 이렇게 잘 타? 진짜 연습 많이 했나 보네." 씩 웃어 보이며 커다란 롤러스케이트를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동그랗게도 돌아보며 개인기를 보여준 뒤 언니의 자전거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방 안에서 철퍼덕 넘어지던 때가 제법 많았던 터라 바깥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다 넘어지는 일이 오히려 없었다. 그만큼 열심히 연습했고 롤러스케이트를 어떻게 타야 하는지를 익혔기 때문이었으리라…
#5
한참을 달려가다 다리가 아파 언니의 자전거 뒷 안장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언니가 타는 자전거에 살짝 몸을 싣었다. 체중이 실린지도 모른 체 성인이 탈법한 큰 자전거를 타고 나아가던 언니는 평소처럼 속도를 높여 자전거를 탔는데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언니의 자전거 안장에 손을 떼지 못한 채 몇 미터를 그렇게 끌려갔다. 당황한 나머지 울지도 못하고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어버버 거리다 언니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뒤를 보았고 엎어져서 자전거에 끌려가는 내 모습을 보고 바로 자전거가 멈춰 섰다. "괜찮아?!! 자전거를 왜 잡고 있었어?!!" 놀란 나머지 자전거 안장에서 손을 체 못 떼었고 옷은 반쯤 올라가 가슴 부분부터 배까지 자전거 바퀴 자국 그대로 생채기가 나서 피가 나왔다. 무릎은 넘어지면서 계속 길바닥에 끌려간 통에 피가 울컥울컥 흘러내렸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언니의 얼굴이 새하애 졌다. "아빠가 일하는 곳에 가자. 가야겠다. 어떡해…" 그제야 놀란 마음에 엉엉 소리 내 울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무릎을 보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6
우리가 살던 곳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마을로 더 들어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그때까지도 놀란 마음에 눈물이 얼굴에서 뚝뚝 흘렀다. 무릎은 지혈을 하지 못해 피가 주르륵 흘렀는데 제법 상처가 깊었는지 투명한 진물과 노란 진물, 빨간 피와 어우러져 발목까지 흘렀고 한데 어우러진 빨간 물든 양말을 적시고 있었다. 이 와중에 버스에는 앉을자리가 없어 의자를 붙잡고 서 있어야 했는데 그때 한 아가씨가 내 무릎과 얼굴을 보더니 자리를 양보해 주며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따뜻한 배려에 서러운 마음이 왈칵 터져 나오듯 창피함도 모른 체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고 아가씨는 목에 두르고 있던 손수건을 풀러 내 무릎에 바짝 묶고 매듭을 지어 주었다. "괜찮니? 많이 아프지? 피가 나서 놀랐구나… 괜찮아 이제 괜찮아질 거야. 손수건을 해서 이제 피가 곧 멈출 거야. 많이 아팠겠다…" 따뜻한 그녀의 손길과 음성에 북받치듯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무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서 느껴보는 친절이 이렇게도 따뜻할 줄이야…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목이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즐겨보던 동화책, 인어공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누가 내 목소리를 앗아갔나. 고맙다고 이야길 해야 하는데… 손수건을 다시 돌려드려야 하는데…
#7
우리가 가야 하는 목적지 보다 먼저 내리게 된 아가씨를 뒤로 한 채 버스는 계속해서 앞을 나아갔다. 하얀색 바탕에 예쁜 꽃들이 자수가 놓여 있던 손수건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녀의 온정과 마음이 담긴 예쁜 손수건. 집에 돌아온 후에는 그 예쁜 손수건을 빨래 비누로 박박 문질러 주름을 탁탁 털어 널어놓고 한참을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다시 볼 수 있을까? 언제 돌려줄 수 있을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은데…'
그날 이후로 책가방에는 그녀의 손수건을 고이 접어 넣고 다녔고, 우연히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감사 인사를 하고 손수건을 돌려드려야겠다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날 이후로 그녀를 다시 볼 수가 없었다. 감사하다는 말도 손수건도 결국 돌려주지 못했지만 또 한편으론 내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받았던 친절과 선행을 나도 아무 대가 없이 베풀어야겠단 생각을 하며 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롤러스케이트 열풍이 불었을 때,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이 아련하지만 또렷이 떠오르는 건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깨때기 아주머니처럼 그녀의 고마웠던 선행이 떠오를 때면 '그래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마냥 나쁜 유년시절은 또 아니었네.' 하며 추억에 잠길 수 있는 행복한 기억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길을 지나다 보면 어린 친구들이 뛰어놀다 다치기도 하고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어른의 도움이 필요로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꽃무늬 손수건을 제 무릎에 꼭 싸매주었던 그녀가 떠오릅니다. 그때 그분도 지나치지 않고 도와주었지 하고요. 그래서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동을 먼저 나서서 하는 편이 되기도 했는데요. 제게는 그때의 그 기억이 무척이나 따뜻한 사랑으로 느껴져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남에게 아무 대가 없이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으신가요?
타인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고 도움을 주고 스스로 행복했던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