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킨의 시는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널리 애송될 뿐만 아니라, 학급의 교실 뒷벽을 미화용으로 장식할 만큼 표어로도 많이 쓰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는 첫 구절은 매우 이질적인 느낌이지만, 이 시를 지은 작가 자신도 자신을 기만한 삶에 대해 슬픔과 노여움을 체 견디지 못하고 사생결단, 치정극을 벌인 복수극을 벌였기에 이 시와는 일치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역시 같다.
우리는 과연 삶에서 속았을 때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적 언술과 실제 인생 사이에 위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면 누구든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을 좋아한다. 설령 삶이 날 속일지라도, 내가 살아온 날들에 대해 부정하거나 슬퍼하거나, 화내면서 앞으로의 날들 역시 실패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나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다. 그래서 하루만 잘 버티면 된다, 지나간 이 하루는 또 그리움으로 자리하겠지 하며 합리화하곤 한다.
#2
푸시킨의 시 다음으로 좋아하는 시는 랜터 윌슨 스미스의 'This too shall pass',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구절인데 본래 솔로몬왕이 승리의 때에 교만하지 않고 절망의 때에 용기를 다시 낼 수 있도록 반지에 새겨 넣었던 말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었다. 렌터 윌슨 스미스라는 시인이 이 구절을 가지고 인용해서 쓴 시는 힘들 때 읽다 보면 의외로 작은 위로를 가져다준다. 문장들을 읽다 보면 인생은 기쁨과 슬픔의 연속성, 즉 언젠가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슬픈 일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고, 이런 순간도 역시 결국에는 지나버린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힘들 때 문자가 주는 힘. 이러한 시들과 타인의 글들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울고 싶은 날을 달랠 수 있고,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3
내가 살아온 삶,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 무덤덤해질 때도 되었는데, 올 한 해의 끝자락은 무던히도 많이 아팠고 일을 집중할 수 없을 만큼 몸도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두어 달을 꼬박 아프고 나니 아이들이 이제 시골로 면접교섭을 가야 하는 상황과 맞물려 있고, 덕분에 처리해야 할 일감도 같이 가지고 이동을 하면서 긴 기차여행과 타지에서 맞게 되는 일상에서 나름의 안정감을 다시 되찾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코로나 이 후로 폐렴과 독감에 연이어 기관지염까지 연타로 맞고 나니 몸은 천근만근일지언정 다시 잘 살아봐야겠다 싶은 의지는 백배! 이게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시너지 효과인 것일까. 어차피 아파 죽던, 건강하게 죽던, 인생은 한 번 왔다 짧게 끝나는 인생사인데 나는 해본 것보다 안 해본 것 투성이에 인생의 괴로움을 통해 제법 성장하게 된 싱글맘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또다시 고군분투해 보자 싶은 의지가 활활 타오른다. 결국 인생의 괴로움을 통해 외로워지는 시기는(아플 때 특히) 언젠가 마주하게 되는 때 인데 이 때 남이 주입하는 생각이 아닌 나 자신의 객관화,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 길고 긴 터널에서 머물러 있지만 않고 스스로 한 발짝씩 걸어 나와 결국 그 어두운 굴레 안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4
어차피 인생은 모 아니면 도- 외로움과 괴로움을 지났으니, 이제 새로운 '새해'를 맞이해 '더 잘살아 볼' 의지를 갖고 한 해를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 그리고 혹시라도 나처럼 지금이 긴 어두움의 터널이고 어둠의 구간을 건너고 있는 싱글맘 혹은 싱글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며 내 글을 우연히 보게 된 분들이 계시다면 힘들다고, 괴롭다고, 나 자신을 채근하며 동굴에 들어가서 오랜 시간 괴로워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지금 이 순간은 가장 어두울지언정, 다시 지나가게 되는 과정이라고.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빛도 희망도 없이 칠흙같이 깜깜할 때 이 순간도 해가 떠오르면 서서히 어둠이 걷히듯,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게 되니, 살아온 날들을 슬퍼하고 살아갈 날들에 화내고 괴로워만 하지 말라고, 그저 마음은 늘 다가올 그날, 하루하루를 잘 버텨내면 그 긴 하루가 모여 지난날이 되고, 더욱 성장하는 내가 될 거라고… 그렇게 위로해 드리고 싶다.
안녕하세요. 무무입니다. 10월에 발행하게 된 첫 글 후로 고작 5개의 글 밖에 수록하지 못한 못난 작가입니다. 주에 두 번은 글을 발행하고 싶다는 마음과는 달리,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고 있자면 과거를 회상하다 깊은 수렁에 푹 빠져있던 날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지난날의 에고(ego)와 마주하게 돼서 한 개의 글을 완성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한 자 한 자 적을 때마다 이혼 후에도 흘려보지 못했던 눈물이 자꾸 터져 나와 결국 단 하나의 글도 제 날짜에 발행하지 못하고 저장만 해가며 겨우 글을 발행할 때도 있었는데 아마 제 생각으로는 상처를 많이 치유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아직은 온전히 치유가 되지 않은 미해결 감정들이 더 많았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글을 적을 때면 과거의식에 갇혀있는 저에게 '너는 피해자가 아니야, 이혼으로 인한 인간관계에서 생긴 배신감과 불신, 실망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야' 하며 제 자신에게 리마인드 하곤 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온갖 생각들이 뒤섞여 상당히 불편했고, 매 순간순간이 흔들렸지만, 불안이 밀려오고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크게 올라올 땐 명상과 지난날에 적었던 일기, 메모를 읽어보며 이전의 일은 과거이며 그로 인한 현실에 대한 피해의식, 자격지심, 열등감을 갖는 것은 과거에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멀어지려 노력했습니다. 제게 글짓기란 '내가 살아 본 삶'을 통해 내가 겪었던 일들로 하여금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또는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였지만 결과적으론 나 스스로를 치유하는 글짓기라는 점이었습니다.
나의 감정과 나의 상황에 대한 객관화,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과 미래를 글로 적어보고 싶었고, 또 그 한 편 한 편이 모여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향력을 가져다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이전에 나의 내면과 마주해야 했고, 이 시간이 힘들지만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습니다. 보여주기 식, 나만 만족하는 글이 아닌 누구나가 읽어도 내 글이 어떤 방향으로든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한다는 것. 그게 제가 하고 싶은 '글짓기'입니다.
앞으로도 부족하지만 꾸준히, 제 자신의 에고를 끊어내며 글을 수록하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 감사드리고 새 해에는 더욱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