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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Apr 21. 2020

종이신문, 이제 정말 끝인 건가요

대한민국 대표 ㅇㅇㅇ신문사, 구독 요청 전화를 해오다

"안녕하세요. 저기.. 그.. 송여울 님 되시죠?"


중저음의 느릿느릿 중년 목소리. 분명 대출 전화 거나 금융상품 소개 전화겠지,라고 넘기기엔 이상하게 개인번호로 걸려온 전화. 내가 맞다고 하자, 그는 지나치리만큼 너무나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다음 운을 띄웠다.


"저희는.. ㅇㅇㅇ 신문사입니다."


ㅇㅇㅇ, 내가 유일하게 1년간 종이신문 구독을 해왔던 유일한 신문사.

진보진영에서는 여전히 대표신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지지율도 흔들림 없이 탄탄한 신문사다.


구독을 끊은 지도 어연 1년이 넘어가는데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당황한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자신을 ㅇㅇㅇ신문사 홍보팀이라 소개한 그는 차분히 신문사 사정을 설명했다. 설명, 이라기 보단 호소에 가까웠다.


"저희가 종이신문 구독률이 정말 저조해요. 온라인 신문으론 구독자가 많지만, 사실상 신문 사란 게 종이신문에 들어가는 광고수입으로 버티는 거거든요. 저희가 매년 신문사 평가가 있는데, 사실 많이 힘든 상황입니다. 이번 한 번만 다시 구독 부탁드려도 될까요...?"


정보매체의 발달은 일찍이 사람들 손에 들린 종이신문을 스마트폰으로 뒤바꾸었다. 언제 어디서든 핸드폰만 열면 실시간 기사가 쏟아져 나오니, 커다란 종이신문을 불편하게 챙겨 다닐 필요가 없었다. 레거시 미디어들이 점차 무너지고 있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신문사를 이끌어갔던 ㅇㅇㅇ 신문사조차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눈 앞이 아찔했다.


 너무나 절실하게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렸으나, 나는 단호하게 말해야 했다.


"정말 죄송해요. 종이신문은 이제 정말 안 읽어요."

"혹시 나중에라도 구독하시면 연락 남겨주세요. 언제까지나 진실을 추구하는 저희 신문사, 꼭 좀 지켜주세요."


전화는 끊었으나 입 안에 텁텁함이 맴돌았다. 눈 딱 감고 후원하는 셈 치고 구독한다고 할 걸.  '진실을 추구하는 신문사' ㅇㅇㅇ 신문사를 구독하고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 다른 언론이 묵인했던 이면 밑의 소외된 목소리를 담아냈고, 크래킷같은 기사가 아닌 깊은 탐사보도를 이어갔고, 여론과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늘 말하려는 소재를 당당하고 강렬하게 활자로 풀어갔던 유일무이한 저널리즘. 그런 굳건한 신문사가 시대의 변화 앞엔 한없이 연약해지는 것이 너무나 씁쓸했던 것이다.







  

어릴 적에 부모님은 우리 남매에게 하루 한 기사씩 신문 스크랩을 시켰다. 당시에는 신문업계 (지금도 맞찮가지지만) 최고 자리를 지키던 ㅇㅇ일보를 구독했었다. (현재 부모님은 입 아프도록 해당 신문을 욕하고 계시지마는) 아침에 우리 남매 중 먼저 일어난 이가 졸린 눈 비비며 현관문을 열고 새벽녘에 도착한 신문을 집어 아버지 머리맡에 두는 역할을 담당했다. 아버지가 신문을 다 보시면은 우리 남매의 치열한 신문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왜냐면 먼저 채간 이가 쉬운 내용의 기사를 스크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린 우리는 어려운 정치 경제 기사들은 넘기고 스포츠 연예 기사만 주야장천 읽었더랬다. 해당 기사를 잘라 붙이고 최소 3줄 이상의 감상평을 남겼다. (그 날의 스크랩 노트를 다시 펴보니 '경기가 안 좋다. 마음이 아프다.' '홈런을 날렸다. 기분이 좋다.' '한나라당이 당선되었다. 좋은 당인가 보다.' 이같이 썼더랬다.) 안타깝게도 좀 더 커서 정치 경제 분야를 조금씩 이해할 때쯤엔 중학교에 입학하며 자연스레 스크랩 숙제도 끝이 났다. 종이 신문을 다시 펴 들었던 건 대학생 2학년이 되던 봄이었다. 한창 신문기자에 대한 꿈을 키워가며 어린 날의 신문스크랩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려 맘먹었기 때문이다.


어떤 신문을 선택할까,  도서관 신문 비치칸 앞에서 한창을 서성이다 눈에 들어온 'ㅇㅇㅇ신문'. 처음엔 큰 이유는 없었다. 그냥 내 성향이 이 쪽과 가까우니 걸맞은 대표신문을 선택한 것이다. 구독신청을 하고 난 다음 날, 거즘 9년 만에 우리 집은 다시금 새벽녘의 종이신문을 받아 들게 되었다. 팔랑일 때마다 풍겨오는 오래된 종이 내음,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마치 벽돌 쌓기 하듯이 차곡차곡 한 면을 가득 채운 블록 기사들. 진하게 끓인 커피와 종이 신문 한 부면 아침은 훌쩍 지나갔다. 특히나 ㅇㅇㅇ신문사의 기사 내용은 늘 꼼꼼하고 치열했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신문을 팔락였다.


종이신문은 온라인 신문과 확연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발로 뛰는 기자들의 진정성, 그 뜨거운 열정들이 활자 하나하나에 깊고 진하게 담겨 있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온라인 기사와는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개개의 기사를 대하는 나 역시 핸드폰 쓱쓱 넘기는 것보다 진지하더랬다. 그 옛날에 이 커다란 종이 한 면에 몇 글자 남기려 목숨까지 걸었던 수많은 기자들.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서던 그 역사의 주인공들. 종이신문을 보다 보면 그들이 불현듯 떠올라 이따금 나를 가슴 뛰게 만들기도 했다.


이십 대의 신문스크랩, 이를 소재로 '오마이뉴스' 채널에 글을 썼는데 곧바로 사이트 메인에 올랐다. 댓글란에는 '맞아, 내 하루 시작은 종이신문이었지.' '우리 딸도 참 신문 읽기 싫어했는데 말이죠.' '새벽녘에 신문 돌리는 알바를 했었죠. 참 힘들었지만 보람찼어요.' 같이, 옛 추억을 솔솔 불러일으켰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러나 애석히 도 나는 캡처 기능과 펜이 내재된 태블릿 PC를 구입했고 1년간 이어온 신문스크랩도 덩달아 끝이 났다.  보다 깔끔하게 스크랩된 내용을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진창 걸려온 구독 요청 전화도 잦아들며 그간 종이신문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 걸려온 ㅇㅇㅇ신문사의 구독 요청 전화.


너무나 복잡한 심정이 들었으나, 나는 결국 ㅇㅇㅇ신문사를 다시금 구독 요청하지 못했다.그러나 한 편으론 ㅇㅇㅇ신문사 기자들이 추구하는 진실성만큼은 지켜내고 싶었다. 아, 어찌해야 하나. 변해가는 세월에 사라지는 레거시 미디어들을 마냥 두고만 봐야 하는 걸까. 정말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언제까지나 진실을 추구하는 신문사, 꼭 좀 지켜주세요." 그의 마지막 말만이 머릿속에 씁쓸히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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