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끝까지 친해지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 딸이 이렇게 많이 컸네.."
새벽에 갑작스레 울리는 카카오톡을 열어보니 아버지가 방그레 웃고 있는 나의 어릴 적 사진을 보내셨더랬다. 일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아버지가 보낸 메시지를 쳐다봤다. 꾹꾹 눌러쓴 듯한 새벽녘의 그 카톡 메시지가 괜스레 눈가를 간지럽혔다. 평소 자식들과 아내에게도 애정표현을 잘 안 하시는 무뚝뚝한 나의 아버지. 늘 공포의 대상이자 심리적으로 가장 먼 거리에 있던 나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달라지셨다.
"요즘 너네 아버지 갱년기인가 보더라. 자꾸 미심쩍은 카톡을 보내네."
예전 같았으면 안부를 물을 적 말고는 거의 울리지 않았던 가족 카톡방에 작년부터 지잉- 지잉 - 하루도 빠짐없이 진동벨이 울렸다. 물론 그 진동의 주인공은 '아버지'였다. "우리 가족들, 늘 힘내고." "보고 싶어서 어쩌나. 나는 항상 가족들 생각 중~" "돈 많이 벌어서 너희 맛난 거 먹여야지." 보통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평생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애틋한 메시지에 어색한 티 숨기려 애썼지만, 요새는 오빠나 나나 걸맞은 귀여운 이모티콘을 전송하고 있다. 아버지가 최근 변하신 이유가 갱년기 때문임을 알고 나니, 그의 지긋한 연세가 비로소 실감되었다. 늘 30대에 멈춰있을 것 같던 아버지가 벌써 50대 중반을 느릿히 지나고 있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늘 '애증'의 대상이었다. 명문대에 대기업까지 패스한 엘리트 출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경력만큼이나 자식 교육에도 엄하셨다.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자식들에게 입 떡 벌어지는 장문의 영어문장을 암기하게 하거나, 식사자리에는 딱딱한 분위기 속 성적과 공부 관련 이야기만 오갔다. 숙제를 못하거나 성적이 안 좋으면 호되게 불호령을 내렸고 험한 욕설까지 서슴지 않으셨다. 당시 먼 곳에 직장을 두신 아버지는 주말마다 집에 오셨는데 어린 나는 금요일 밤마다 끅끅 울며 악몽까지 꿀 정도였다.
"나는 아빠가 내일 안 왔으면 좋겠어.."
어머니께 칭얼거리면 늘 '아빠가 표현을 잘 못해서 그래.' 라 위로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주말이 돌아오면 긴장감이 감도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친구들이 학교 안 가는 주말이 돌아온다며 기뻐할 때 나는 홀로 죽상을 지었다. 주말, 끔찍해. 나의 십 대에는 아버지에게 '원망' 이상의 감정이 없었다. 여행을 가도 아버지를 요리저리 피해 어머니 곁에 꼭 붙어 다녔고, 아버지로부터 전화벨이 울리면 일부로 받지 않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아버지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고, 오히려 타지로 대학을 가게 되어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대화 주제도 변함없이 '학점'과 '토익' 뿐이었다. '나에게 살가운 만큼 너네 아빠한테도 그래 봐.' 어머니의 핀잔에 전화를 드리거나 기프티콘을 보내는 등의 소소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버럭 하는 성질의 아버지의 회답은 나를 끝내 지치게 만들었다. 친구들은 아버지랑 투탁 투탁 잘 지내는 것 같던데, 나는 왜 이러나. 우리 아버지는 왜 이러나. 내가 결혼하고 나서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가슴 아픈 원망과 공포. 결코 가까워지지 못할 것만 같았던 아버지와의 관계.
그런데 작년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갱년기가 그 해결의 실마리가 될 줄 누가 알았던가. 통화 중에도 점점 살가워지는 아버지의 말투에 당황하면서도, 나 역시 적절한 농담을 해가며 맞 받아쳤다. 항상 딱딱하게 끝 마무리가 되던 우리의 통화가 이렇게 웃음으로 가득 차기를 지금껏 얼마나 바라왔는지.
더욱 우스웠던 건, 이제야 떠오르기 시작한 나의 십 대 속 아버지의 빛바랜 모습이었다.
나를 괴롭히던 반 남학우를 학교까지 찾아와 혼내주던 나의 아버지, 매질로 퉁퉁 빨갛게 부어오른 나의 발바닥을 자는 사이 따스히 어루만지던 나의 아버지, 기죽지 말라며 나의 가방 속 돌돌 말은 만 원짜리를 끼워주던 나의 아버지, 생일마다 내가 제일 좋아하던 치킨을 손에 꼭 들고 오던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두려워하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던 나를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이라 칭찬하던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달라지셨다. 아니, 아니. 어쩌면 조금도.. 달라지시지 않으셨을 수도.
인터넷을 찾아보니 갱년기에 좋은 건강식품들이 몇 가지 있었다. 한두 가지 체크한 후 결제버튼을 눌렀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이번 주말, 오랜 간만에 따스한 선물을 아버지께 안겨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