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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Nov 03. 2024

우린 잘 안 맞는 것 같아

3-2 이별 후에도 연애 때 느꼈던 감정을 기억해야 한다

  

“우린 잘 안 맞는 것 같아.”  

  

수많은 사람들의 말소리 중 너의 말만 또렷하게 들렸다. 카페 안의 공기가 순간 서늘해졌다가 제 온도를 찾았다. 2024년 5월 초여름이었다.      


바로 앞에 앉은 커플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책을 보고 있다. 어제의 우리도 그랬다. 손을 잡고 홍대 거리를 걸었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단 한 마디로 끝나버릴 추억이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끝까지 바보 같은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맞는 선택이겠지.” 오히려 담담히 말했다.

 

이대로 끝내긴 싫다고. 노력이라도 해보자고. 마음속의 내가 바락바락 악을 썼지만, 입 밖에 내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너를 붙잡아선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관계의 결말은 분명 누구에게도 행복하지 않으리란 것도.

    

내 대답을 끝으로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비참한 마음에 핸드백부터 챙겼고, 너는 더 할 말이 있는 듯 주춤거리다 이내 일어섰다. 우린 아무런 말  없이 신도림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었고 1번 출구 앞에서 헤어졌다.

      

“잘 지내.” 네가 말했다.


그 말을 그리도 쉽게 할 수 있구나. 나와 만나면서 속으로 몇 번이나 그 말을 읊조렸을까. 나는 어떠한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우리 관계에 기어코 마침표를 찍기 싫었다.     


두 달여 전 봄이었다. 애인과 벚꽃 데이트를 해본 적 없다던 내 말에 너는 먼 길을 달려 이곳에 왔다. 신도림 1번 출구는 연분홍 벚꽃이 켜켜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난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하얀 티셔츠를 입은 너를 원 없이 앵글에 담았다. 너와 다음 봄도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우린 그렇게 끝이 났다. 연애는 한 명이 아니라 둘이 하는 거라서 마침표는 누가 찍든 상관없었다. 한없이 기다린들 너에게 연락은 없었다. 내가 너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는지, 쌓아 온 추억들이 언젠가 무너질 모래성처럼 의미가 없었는지. 끊임없이 되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참고 참다 보니 그렇게 여름이 지났다. 내 생애 가장 춥고 쓰라린 계절이었다.     


이번 이별은 생각보다 많이 울었고 오래 아팠다. 이별을 했던 다음 날은 여전히 생생하다. 눈을 뜨자마자 밀물처럼 밀려오던 쓴 감정들이란. 굉장히 사나운 꿈을 꾼 듯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이별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걸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다.『 잘 잤어? 』매일 아침 9시, 네가 일어나던 시간에 맞춰 날라 오던 메시지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일을 하다가, 음식을 만들다가, 운동을 하다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은 내 모든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어떤 짓을 해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무한 재생되는 로맨스 영화를 꼼짝없이 갇혀 보는 것 같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 같아. 몸은 멀쩡한데 정신은 만신창이가 돼 버렸어.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어.”     


가장 오랜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기어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별과 교통사고는 닮은 점이 많다. 고통을 남과 분담할 수 없다는 것. 아픔이 낫는 그 긴 시간을 오로지 홀로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도. 물론, 시간이 흐르면 분명 어떤 형태로든 낫는다는 점도.     


타지에 거주하는 친구는 나의 청승맞은 하소연을 아주 오래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리곤 눈물 먹은 목소리가 어느 정도 차분해졌을 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이별 후엔 좋아했던 만큼 아프고, 그 아픈 만큼의 마음을 덜어내야 해.”      


내 이별은 그랬다. 어떤 이별은 불에 마음을 덴만큼 아팠고, 또 다른 이별은 세수 한 번 하고 나면 잊힐 정도로 가벼웠다. 


나는 이 만남이 더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느껴질 때까지 끝끝내 참다가 이별을 말한다. 마음이 완전히 곯아버려고 감정이 다치다 못해 무감각해질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졌을 때까지 버티고 또 버틴다.


되려 헤어지잔 말을 듣는다면. 나는 붕괴된다. 마음이 온전히 타 버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간 마음에 보물처럼 모아놓은 추억들은 자잘한 유리 조각처럼 깨져 수많은 상처들을 남긴다. 그 상처는 아무는데도 오랜 시간이 흘러 아주 질리도록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내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헌신형 그리고 불안 애착형의 연애가 아픈 이유는 단순히 헤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봐. 너 그 사람하고 연애할 때 충분히 행복했어? 내가 기억하는 넌 뭔가 늘 불안해 보였어. 그 사람이 연애하는 동안 네게 안정을 주는 사람이었냐고 묻는 거야.”  

   

친구가 물었다. 옅은 한숨을 삼켰다. 왜냐면 틀린 말이 없었으니까.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를 사랑했지만 헤어져야만 했다는 것도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별이란 단어는 그가 먼저 입 밖에 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렸을 진 내 알바 아니다. 난 원래의 단어의 형태가 짓눌리고 바스러질 때까지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새겼다. 이 인연을 더 이어가게 되면 결국 혼자 남게 되리란 걸 느끼고 있었다.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는 찻잔에 손을 데면 뜨겁다는 걸 알고 있듯이. 그 사실은 너무나 뻔한 것이었다.


우린 같이 있어도 함께였던 적이 없었다. 밥상에 마주 앉아도 유튜브 앞에서 대화를 잃었고, 카페나 식당에 가서도 시시콜콜한 몇 마디로 안부 인사를 끝냈다. 평소에도 칼 같은 성격의 그는 비교적 서투르고 무딘 나를 아주 자주 무시했다. 눈빛과 작은 말 몇 마디에서 그 날카로운 조각을 만졌다. 난 그 무시들을 참고 견디며 그에게 헌신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기어코 마음에 들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소진해 갔다.


우리가 헤어지던 날도 그랬다.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이었는데. 나에게 조금의 애정도 주길 아까워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남보다 못한 사람이었는데. 끝끝내 이별을 하지 못했다. 상대가 내 손을 놨어도 옷깃을 잡고 놓질 못했다. 온전했던 일상의 붕괴. 미결된 연애에 대한 아쉬움. 헌신의 의미 상실. 한 때 다정했던 눈빛과 손길의 잔상들.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 사람이 내게 어땠는지는 이별 후 깜깜히 잊어버리고 그 아픈 감정에 몰두되어 과거의 연애를 돌이켜보지 못하는 것. 미련하고 바보 같던 사춘기 시절의 연애를 27살이 된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차지했던 마음의 자리는 금세 불안이 채웠다. 내 삶은 원래도 그의 존재 없이 시작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스스로 잘 살아왔다. 그가 내 곁에 없어진다고 해도 내 삶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 삶이 온통 무너져 내린 것 같다는 불안은 오랜시간 나를 압도했다. 연애하는 기간 동안 내 존재를 끊임없이 그에게 투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나의 의미를 찾았고, 그의 애정만을 좇았고, 그의 모든 행동과 말이 나의 하루를 좌지우지하도록 놔두었다. 애초에 우리 연애 속엔 내가 없었다. 이미 잔향을 잃은 추억들이 찻잎처럼 기억 위에 의미없이 떠다녔을 뿐. 불안 애착은 연애 중에도 나를 더없이 초라하게 만들더니 이별 후엔 자존감을 밑바닥까지 추락시켰다.


친구는 "잊어. 이상의 아픔은 부질없어."란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끊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핸드폰을 한참을 귀에 대고 울었다. 나도 알아, 나도 안단 말이야. 어스름이 달 떠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창가로 새벽의 그늘이 졌다. 아무리 울어도 시간은 흘렀다. 달라진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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