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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Nov 10. 2024

1월 1일에 헤어졌다

3-3 당신에게 가장 최악의 이별을 묻는다.

석준을 처음 만났던 날은 2021년 4월 초여름이었다. 나는 나름 용기 낸 행운의 빨간색 니트를 입고 강남역 스타벅스에 앉아 있었다. 대학생 시절 이후 가히 몇 년 만의 소개팅이었다.  

    

[잘해봐! 꽤 좋은 사람이라고 보증하니까.]     


직장 동료의 메시지가 경쾌히 울림과 동시에 누군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아메리카’가 크게 적힌 회색 티셔츠에 7부 카고 바지, 살짝 덥수룩하게 머리를 기른 남자. 은근한 촌티가 퍽 잘 어울렸던 그가 바로 석준이었다.      


“안녕하세요.”     


석준이 인사했고 나도 엉거주춤 일어나 고개를 살짝 숙였다. 석준은 첫 만남부터 편한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차분하고 잔잔했지만, 말투나 태도가 사람을 여럿 만난 듯한 예의가 묻어났다. 

     

“정환이한테 소개받았을 때 처음엔 조금 놀랐어요. 직업이 기자라길래요. 제 주변에 기자는 처음이거든요.”     

“별 거 없어요. 밤새 기삿거리 찾고 종일 기사 쓰고. 사람들이랑 밥 먹듯이 통화하고. 박봉에 다크서클은 보너스인 직업이랄까.”  

   

“그래도요. 대단해요. 부담도 많으실 것 같고. 그래서 좀 더 알고 싶었어요, 어떤 분이신 지. 사실 실례인 건 알지만 네이버에서 조금 찾아봤거든요. 블로그도 하시더라고요.”     


석준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내 사적인 이야기가 가득한 블로그까지 탐색했다니.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누군가 내게 이런 호감을 내비친 게. 화끈. 귓가가 막 꺼낸 고구마처럼 달아올랐다.   

  

어쩌면 나는 첫 만남부터 석준을 마음에 들어 했는 지도 모르겠다. 뭐 하나 세련되거나 화려한 구석은 없었지만 그런 투박한 면이 나를 퍽 설레게 했다. 치아가 다 드러나게 웃는 입가. 감정 따라 티 없이 물결치는 순박한 눈썹. 시종일관 번듯이 곧추세운 허리와 여린 듯하면서도 단단한 어깨.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꽤 좋은 사람이란 예감.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눈이 선했다.  

      

대화는 두 시간 남짓 이어졌다. 시침은 어느덧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창밖에 보이는 빌딩들의 불빛은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고 취객들의 노랫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음 약속을 잡았다. 날 좋은 날 만나 웃으며 대화했고, 다시 날 맑은 날 다음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또 만났고, 또다시 만났다.    


그렇게 연인이 됐다. 스며들 듯 손을 맞잡았다. 우린 전생에서 알았던 사이처럼 서로에게 편안함을 느꼈다. 이 우주에서, 이 삶을 살면서 언젠가 반드시 만났어야만 하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사랑했다.     




대학원 4학년인 그는 2년 차 직장인인 나와 달라도 많이 달랐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 7시에 기상하는 나와 달리 그는 해가 중천에 뜬 11시가 돼서야 [잘 잤어?]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곤 자정에 잘 자란 인사를 하면 새벽 5시쯤에 베개를 든 곰돌이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러니 서로의 하루를 챙겨주는 건 늘 이룰 수 없는 소원에 그쳤다.    

 

석준은 대학원 졸업반답게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았다. 그는 동기들보다 더 오래 연구실에 엉덩이를 붙여가며 완성도 있는 논문 작성에 애썼다. 요즘엔 챗 지피티(Chat GPT) 같은 인공지능도 잘 돼 있다던데. 안쓰러운 마음에 한 마디 했을 때 석준은 고개를 내저었다. “한 번 습관들이면 다음 논문 작성할 때도 써먹게 될 거야. 그러면 교수님께도 죄송하고 나한테도 부끄러울 것 같아.” 

   

석준은 그런 사람이었다. 다른 동기들이 아무리 ‘호구’라고 불러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걸어갔다. 그 때문인 지 그의 졸업 연도도 예정 연도보다 한참 밀렸다. 남들 하는 만큼만 해도 일찍이 졸업해 어지간한 회사에서 괜찮은 직함을 달고 있었을 테다. 그래도 그는 ‘호구같이’ 연구실에서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인공지능이 10초면 정리할 논문들을 깨알같이 옮겨 적었다.     


나는 그의 ‘호구 같음’이 좋았다. 뭐 하나라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그의 고루한 성격을, 누군가는 재미없다고 여길 그의 한결같은 삶의 가치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상대가 내가 닮고 싶은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난 그 문장의 존재 이유를 석준에게서 찾았다.  

  

석준은 나의 관계에서도 한결같았다. 그는 데이트 장소나 식당, 야식 메뉴 따위를 결정하기 전에 항상 내 눈부터 마주 보았다. 손을 잡거나 가벼운 입맞춤을 할 때도 그랬다.   

  

나는 거짓말을 잘해도 눈은 좀체 못 속이는 편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꺼리는 기색을 눈가에서 내비치면 석준은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멈추거나 다른 선택지를 제안했다.    

   

우리는 특별히 어딘가 놀러 가기로 약속하지 않았다면 대게는 카페에 갔다. 카페에서 함께 공부하는 날은 형광펜 자국이 빽빽이 채워진 서류철과 두꺼운 회색 삼성 노트북을 챙겨 왔다. 그리곤 이젠 눈썹을 다 가릴 정도로 길어진 앞머리를 쥐어뜯으며 타자를 두들겼다. 내가 걱정스럽게 팔을 쓰다듬으면 석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어 보였다.     


석준은 주말엔 데이트를 위해 꼭 시간을 빼놓았다. 그 시간 짬이 금요일 밤을 지새움으로써 나온 보너스라는 걸 알기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나는 틈틈이 인스타그램에서 ‘데이트 장소’란 키워드와 함께 반짝이는 사진으로 가득 찬 피드를 석준에게 공유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추억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여기 가고 싶어?”     


석준은 단 한 번도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못한 건 지, 안 한 건지 알 길은 없지만 그저 ‘좋다’ 고만했다. 그게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좋다는 건 자신도 좋다고 말해주고 또 스스로 좋아하기 위해 노력하는.    




언제는 그랬다. 나와 달리 석준은 중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피자나 파스타, 햄버거와 같은 인스턴트 음식을 사랑하다 못해 주식으로 삼았던 그였다. 그래서 데이트 식당 장소를 고를 때마다 자잘한 갈등이 생기곤 했다. 더운 여름철 한국 외식가를 뜨겁게 달궜던 허궈를 먹자고 했던 8월도 그랬다.    


“네가 추천하는 모든 음식 다 좋아. 근데 허궈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허궈 한 번도 안 먹어봤다며? 이번 기회에 한 번 먹어보는 거지. 장담할 게. 오늘 나랑 한 번 먹고, 너무 맵거나 혀가 쓰리면 담 번엔 같이 먹자고 안 할게. 어때?”     


석준은 역시 불만인 듯 ‘끄응’하며 몸을 비틀다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철근을 발에 매단 듯 미적대는 석준의 손을 끌고 바로 역 근처의 허궈 가게로 향했다. 작은 붉은 풍등들이 자잘하게 <진가원>이라고 적힌 한자 간판을 비추고 있던 곳이었다. 오후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식당 곳곳 사람들로 차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중국어로 인사하는 직원을 본 석준의 표정에 시시각각 긴장이 스치는 걸보며 난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곧이어 지옥탕처럼 새빨간 국물이 담긴 허궈가 나왔다. 눈썹을 잔뜩 찡그리던 그는 못 이겨 한 국자 떠 마시더니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젓가락으로 청경채와 소고기를 깨작깨작 먹기 시작하더니만, 곧 국자에 가득 재료들을 올려 볼이 미어지도록 먹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꼭 일주일에 한 번은 허궈 가게를 갔다. 허궈 가게마다 맛은 큰 차이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석준은 꼭 처음 갔던 가게만을 고수했다.   

 

“여긴 꿔바로우도 안 팔잖아. 허궈랑 꿔바로우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데.”  

   

“그래도 너랑 갔던 첫 허궈 가게잖아. 그만큼 의미 있는 장소니까 단골 되려고 그러지.”  

   

그 허궈 가게는 벽 한 면에 방문자들이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석준이 먼저 노란색 포스트잇을 집어 들었다. 문구점마다 수십 개씩 쟁여놓았을 만한 평범한 포스트잇이었다. 나는 진분홍색 포스트잇을 한 장 떼어 냈다. 석준은 내가 안 보이도록 등을 돌려 한참을 끄적이곤 벽에 붙였다.    


‘환희야, 허궈를 알게 해 줘서 고마워’     


나는 킥킥 웃다가 내 포스트잇을 그 옆에 붙였다.   

   

‘석준, 너라는 사람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  



   

그다음 해 1월 1일은 유독 추웠다. 이상하리만치 새해 분위기가 잠잠하던 2023년이었다. 허궈 가게는 따뜻한 국물을 찾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석준은 제 할 말은 다 끝났는지 짧은 숨을 내뱉었다. 

    

불 끄는 걸 깜빡했나. 야채 쪼가리만 둥둥 떠다니는 허궈가 보글보글 잔내를 풍겼다. 나는 묵묵히 손을 뻗어 밸브를 돌렸다. 

      

오랜만에 찾아온 식사자리의 정적이었다. 오후 9시를 넘기자 주위에 앉은 손님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뉴스에선 세계 곳곳에서 새해를 축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송출하고 있었다. 밝은 미소가 가득한 그들을 차마 마주 볼 수가 없어 눈길을 바닥으로 떨궜다.    


“홍콩이라니.” 한 해의 첫 시작은 좋은 말만 들어야 하는데 전부 내 욕심이었나 보다.      


“4월 첫 주부터야. 홍콩행 비행기 표는 다 끊어놓았고. 인턴은 6개월인데, 정규직 전환되면 더 있을 수도 있어.”     


석준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아니면 나와 정을 떼려고 이러나. 그의 무표정이 처음으로 서늘하게 느껴졌다. 석준이 붙었다는 회사는 그가 원래도 가고 싶어 하던 곳이었다. 그러니 붙잡을 수도 없었다. 인생은 원래 자신이 우선이어야 하니까. 차순위로 밀려난 애인은 어떤 말도 얹을 수도 없다.

     

난 장거리 연애는 자신 없다. 연애에 유통기한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냥 이럴 거면 일찍이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쓴 말이 입 안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왜 그 말을 못 했냐면, 그날 먹었던 허궈가 맛있었고. 흰 눈이 소복이 내렸고. 오늘 새 원피스를 입었으니까. 그런 좋은 날이었으니까. 변명이었다. 난 헤어지기 싫었다.  

   

다시 테이블 위에 정적이 찾아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너에게도 미리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내가 어떤 말을 해주길 바라?”     


“나중은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나를 기다려줄 수 있나 해서. 국제 연애하는 커플이랑 똑같아. 장거리 연애지만 다들 그런대로 잘 만나잖아.”     


“...”     


“아직 나는 너를 좋아하고 너도 나를 좋아하니까. 감정이 끝나는 날까진 연애를 계속했으면 좋겠어.” 

    

석준아, 나한테 어떻게 그런 이기적인 말을 할 수가 있어. 연인 사이에 감정이 끝나는 날이 어디 있는데. 헤어져도 세상 끝까지 남는 그 잔인하고 질긴 게 감정인데.

     

석준은 분명 정규직 전환이 될 것이다. 그곳에서 1년이고 3년이고 머무를 것이다. 애초에 인턴은 향후 취업 조건이었다. 그는 예전에 내게 취업 공고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줬다는 걸 잊고 있었나 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하지 않나. 어른들 말은 틀리지 않다. 석준은 점차 날 잊을 것이고, 나도 석준을 잊게 될 것이다. 원래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 것처럼. 잠깐 내렸다 그치는 여우비처럼.

     

나는 석준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 놓인 그릇 안에 남아 있는 채소 조각들을 말없이  휘저었다. 그날의 우린 서로가 아닌 이별을 마주 보고 있었다.    

 

정말 사랑하면 남북 끝단의 장거리 연애도 버틸 수 있다는데. 그 사랑의 깊이가 우리 사이엔 없었나 보다.     


우린 왜 쓸데없이 결혼 얘길 했을까. 왜 우린 어디 동네 전세 값이 싼 지 얘기하고, 아이는 몇 명이 좋은 지 토론하고, 신혼여행은 어디가 좋은 지 새벽 밤새우며 대화했을까. 왜 오지도 못할 미래를 함부로 꿈꾸고 기대했을까. 왜 어째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공유해서.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 걸.

    

그냥 적당히 만나고 적당히 사랑하면 그 끝도 아프지 않을 텐데. 일도 취미도 적당히 잘만 하는 내가 왜 연애 앞에선 한 없이 마음의 선을 넘는지. 만남의 끝은 결혼 아니면 이별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우린 끊임없이 사랑하고 이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사랑이란 이유 하나 만으로 서로에게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 수많은 약속들이 추억이란 족쇄가 되어 평생의 기억으로 따라다닐 것을.     


주방에서 점원들의 직원들의 말소리가 잦아들었다. 주인아저씨는 문 앞에 세워 놓은 메뉴판을 접어 안으로 들였다. 창가 밖으론 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소리 내어 울었고, 석준은 그런 나를 말없이 다독여주었다. 지독한 새해였다.   




우린 조금 더 만나다가 3월에 헤어졌다. 2주년을 14일 정도 남겼을 때였다.

     

절대 안 울려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독기 품은 여자처럼 눈물을 참아내려 했다. 그러나 맘만큼 쉽진 않았다. 이별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베개가 축축했다. 꿈에서 석준을 만났다. 만나서 화를 냈어야 하는데 또 바보처럼 울고만 있었나 보다.    


석준은 말했다. 언젠가 홍콩에 오게 되면 다시 웃으면서 인사하자고. 난 말했다. 앞으로 홍콩에 갈 일도, 널 보며 미소 지을 일도 없을 거라고.  

  

석준을 처음 만났던 4월의 여름. 그리고 손을 놓던 3월의 봄. 지금껏 한 번도 경험 못한 감정들을 선물했던 석준. 나의 하루와 나의 삶과 나라는 사람을 매일 생각하고 챙겨줬던 유일한 존재, 석준.   

  

그는 내가 모든 연인들 중 유일하게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가장 크고 깊은 기억이었다.     

서로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다거나, 서로의 끝 바닥을 보고 헤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내 감정 속에 살아 있다.      


석준을 여전히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애석하게도 ‘그렇다’. 다만 지금 석준에게 향한 감정은 그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젠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다. 그 사실이 이따금씩 나를 아프게 하고, 또 미소 짓게 한다.   


800여 일간의 푸르런 여름 같던 시간이 끝났다. 아마, 그 시간의 궤도로 다시 돌아오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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