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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May 23. 2020

"오늘은요, 메이크업을 안 한 날이라서요."

코로나로 인해 친해진 나의 '맨 얼굴'      


"웬 마스크야? 너 오늘 어디 아파?" 


아뇨, 아뇨. 오늘 메이크업을 못했거든요. 늦잠 자서요. 답답하니까 마스크 벗으라고요? 아이 참, 민낯에 여드름 자국 드글드글한데 어떻게 벗어요. 그래도 예의상 눈썹이랑 틴트는 했어요. 엥, 오늘 완전 거지 꼴인데 남자 친구를 어떻게 만나요? 오빠한테는 아침부터 열나고 아파서 못 만난다고 둘러댔어요. 사귄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남자 친구한텐 아직 쌩얼 못 보여주죠. 얼굴 보고 저 만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 떨어지면 어떡해요?


"너 오늘 토론할 때 왜 그렇게 기죽어 있어? 평소랑 딴판이던데." 


아 그게요, 오늘 메이크업을 못했거든요. 굳이 시선끌 필요 없잖아요. 나 쌩얼이다 ~ 동네방네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요. 심지어 오늘 후줄근한 후드티 입었는데 괜히 발표했다가 무시받으면 어떡해요. 저는 꾸며야만 당당해지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오늘 토론 수업에서 저는 없었던 걸로 치세요. 그래서 오늘 저 일부러 애들 눈에 안 띌라고 맨 뒷자리 앉았잖아요.


"오늘은 왜 결석한 거야? 한 번도 수업에 늦은 적 없잖아." 


그게요, 오늘 메이크업을 못했거든요. 늦잠은 무슨, 메이크업하려고 두 시간이나 일찍 일어났거든요. 근데 어제 과제하느라 늦게 자서 피부가 꺼칠꺼칠하니 엉망진창인 거예요. 비비크림을 아무리 덧발라도 볼썽사납게 계속 뜨는 거 있죠. 지우고 바르고, 또 덧바르다가 너무 두꺼워져서 다시 지우고. 눈도 퉁퉁 부어서 아이라인도 제대로 못 그렸어요. 거울을 쳐다보는데 얼마나 우울하던지 신경질까지 나더라니까요. 도저히 이런 얼굴로는 못 나가겠다 싶어서 그냥 하루 결석했어요. 누가 절 보냐고요? 보면 어떡해요.


"그래도 그렇게 기대하던 여행 첫날이잖아. 왜 그렇게 다운되어 있어?" 


완전 짜증 나, 오늘 메이크업을 못했거든요. 침대 위에 올려놓은 화장품 가방을 완전 깜빡한 거 있죠? 여기저기 배경 좋은 데서 인생 샷 건져야 한단 말이에요. 가다가 화장품 가게 있으면 값싼 틴트나 비비크림 정돈 사게 꼭 들려요. 아이 참, 옷만 이쁘게 입고 다니면 뭐해요? 메이크업까지 완벽해야죠. 안 꾸미면 은근히 무시하고 깔보고... 어떤 대우받을지는 뻔히 알면서 그래요.


"오늘 시내에서 밥 먹기로 했잖아. 왜 취소한 거야?"


정말 죄송해요, 오늘 메이크업을 못했거든요. 쌩얼로는 집 앞 슈퍼도 못 가는데, 도저히 시내까지 갈 엄두가 안 나요. 화장 안 하고 옷만 예쁘게 차려입기도 정말 어색하고요. 오늘은 그냥 분식집 같은 데, 그러니까 사람 많이 없는 데로 가면 안 될까요? 거기까진 마스크 쓰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용기 많이 낸 거예요, 저.



"오늘 화장도 예쁘게 했네. 그런데 왜 그렇게 불안해해?"


아 그게요, 오늘 메이크업이 잘 됐거든요.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안 되니까 계속 확인하는 거예요. 바짝 올린 마스카라가 내려가진 않았나, 틴트가 지워지진 않았나, 비비가 뜨진 않았나, 셰도우가 번지진 않았나, 렌즈가 돌아가진 않았나, 아이라인이 흐트러지진 않았나. 오늘은 발끝부터 머리털까지 완벽하게 꾸민 날이거든요. 뭐든 망치면 안 돼요. 어머, 잠깐만요. 아까 밥 먹다가 틴트 지워진 거 같아요.. 이제 됐어요. 아, 잠깐 만요. 진짜 죄송해요. 눈 밑에 번진 마스카라 좀 닦고요. 어휴 참, 잠깐 또 실례할게요, 여드름을 컨실러로 잘 가려놨는데 손 한번 스쳤다고 또 지워졌네요. 자... 근데 우리 무슨 얘기 중이었죠?






내 이야기들이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당신이 조금이라도 나의 이야기에 공감했다면, 잠깐만이라도 고민해보자.

우리 삶의 일과가 되버린 '메이크업'에 대해.


요새 나는 아르바이트 중에도 마스크를 쓰다 보니 자연스레 파운데이션과 작별하게 되었다. 아마 내 피부는 처음 느껴보는 시원한 바람결에 '해방이다!'를 외쳤을 테다. 눈만 아이라인 살짝 그릴까, 잠깐 망설이다가도 요즘엔 그냥 눈썹만 쓱쓱 그리고 나간다.


처음에는 (심지어 마스크를 꼈는데도) 손님과 눈을 마주치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불현듯 머릿속에 '아참, 나 오늘 화장 못했지.'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두 주 정도 지나자 내가 언제 메이크업 같은 걸 했었더라 -? 하며 뻔뻔하게 말할 정도로 맨 얼굴로 일하는 게 익숙해졌다. 땀이 나도 화장 번질 걱정 없이 쓰윽 닦으면 그만이었고, 입술색 없어졌나 수시로 거울을 체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렇게 편하게 아르바이트해도 되었구나, 라는 회한과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편하게 살아도 되었구나'를 불현듯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위에서 말했듯이, 나는 화장을 하지 않은 나를 혐오했다. 화장을 못하면 수업도, 시내도, 식당도 마스크 없인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안 꾸민 나를 볼품없는 존재라 비하하며 깎아내렸다. 꾸민 나는 '송여울' 이 맞는데, 안 꾸민 나는 되려 나 조차도 무시해버리는 '타인'이 되었다. 적어도 립스틱 정도는 발라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정도의 내가 되었다. 이른바 '자기 객관화'를 실패한 나였다. 타인의 시선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셈이다.


근데 웃기게도 화장을 한 나 역시 혐오의 대상이었다. 메이크업이란 사실상 끝없는 '자기 결점 찾기'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완벽한 화장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시로 거울을 체크하는 것을 넘어, 요샌 픽서라는 (이를테면 헤어 고정 스프레이 같은) 화장품도 새로 나왔다고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흐트러짐 없는 나의 얼굴, 하얗고 붉은 나의 가면. 어쩌면 나는 매일같이 완벽한 나, 예뻐진 나를 선망하고 고집하느라 내 진짜 모습은 어땠는지 점차 잊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로 인해 나는 나의 맨 얼굴과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어쩌면 남들보다 주위 시선을 더 의식하고 살아온 내 탓이었겠지만, 뒤늦게라도 친해져 다행이라고 여기는 중이다. 안 꾸며도 당당할 수 있다는 걸 , 왜 바보같이 이제야 안 걸까. 지금은 늙어가는 나를, 화장 안 한 나를, 엉망이어도 괜찮은 나를 더욱 긍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코로나로 예기치 않게 나의 맨얼굴과 오랫동안 마주하며 배운 일련의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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