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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Oct 02. 2021

늦은 밤, 그녀는 차 안에서 울고 있었다

눈물 뚝, 서러워하지 말아요

"이제 운동갈 시간인가." 


기지개 한 번 쫙 펴고 주섬주섬 츄리닝을 주워 입었다. 저녁 9시, 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딱 좋은 시간이다. 하늘은 이미 칠흑같이 깜깜해져서 더욱 맘에 들었다. 부드러운 가을 바람이 볼을 스치자 기분이 좋아졌다. '매일 매일이 이랬으면 좋겠다-' 최근에는 고심해오던 공모전 하나를 끝낸 뒤라 머리 속은 여느 때보다 산뜻했다. 나는 흐응흥 허밍을 하며 아파트 야외주차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긴 때라 주차장은 만석이었다. 가로등이 따로 없는 주차장은 모든 차들의 색깔이 어둠 속 모두 검정색으로 보였다. 


그런데 저 멀리 주차된 한 차량이 내부등을 반짝이고 있었다. 깜빡 잊고 내부등을 안 끄고 갔나?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차량을 주시한 채 천천히 걸어갔다. 그 빨간 마티즈 차량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그제야 노란 내부등 아래로 사람이 보였다. 아직 차 안에서 할 일이 남은 모양이었다. '아직 집에 들어가기 싫으신가 보네'라고 생각하며 그 사람을 흘낏 쳐다보니


아, 울고 있었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검은 정장과 한껏 올려 묶은 머리 망이 입사 한 지 얼마 안 된 티가 났다. 그녀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울음소리가 차 밖으로 들릴 정도로 엉엉 울고 있었다. '부장님이.. 어떻게 나한테...' '너무하잖아...' 울음에 잠긴 목소리가 너무나 서럽게 들렸다. 나는 그 사람이 민망해 할까봐 곧장 시선을 돌려 앞으로 성큼 성큼 걸어갔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등 뒤로 차차 멀어지며, 문득 나의 몇 달여전 모습이 떠올랐다. 그 날은 목요일 저녁, 회사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상사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더니 얼굴이 빨개지도록 화를 냈다. 내 입 밖으로 간신히 나온 해명들은 그의 분노에 부딪혀 산산조각났다. 내 안의 작은 내가 억울해, 억울해, 하며 바락바락 울음소리를 냈다. 푹 숙인 고개는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고함을 칠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 숨이 찼다. 마스크를 써서 내 일그러진 표정이 드러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마침내 그의 분노가 멈췄을 때, 나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곤 칸 하나에 들어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살면서 누군가가 이렇게 나에게 화를 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더욱 서러웠다.  


'오늘 날씨 좋은데, 이런 날 우는 건 너무 아쉬운걸.'


초가을 바람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그 때도 이런 바람이 화장실의 작은 창문 새로 솔솔 들어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나는 이 밤의 바람결이 차 안에서 울고 있던 그녀와 어딘가에서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 모든 사회 초년생들의 볼에 스쳐가길 바랬다. 토닥토닥, 우리는 내일도 힘내서 살아가야 하니까. 오늘 흘린 서러움이 모두 바람결에 훨훨 날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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