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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Dec 12. 2021

이번 신입 공채에 지원한 25살 꼬깔콘입니다.

공채 탈락 기념 과자 면접 후기


면접은 슈퍼마켓 같다.

면접은 슈퍼마켓같다.

그래서 회사 면접장을 갈 때마다 우스운 상상을 한다.

나는 꼬깔콘이다. 아주아주 고소한 꼬깔콘이다,라고.

오늘도 난 한 봉지의 꼬깔콘으로 변신해 바스락 대며 대기실에 들어선다.


진열대에는 오징어집, 나쵸, 초코송이가 나란히 앉아 있다. 우린 서로를 곁눈질로 탐구 전을 벌인다. 포장지가 올드한 걸 보니 중고 신입이군. 포장 디자인 예쁘네, 샵 다녀왔나? 냄새가 솔솔 나는 걸 보니 향수도 뿌렸네. 나쵸는 포장이 찢겼나 수시로 거울을 쳐다본다. 초코송이는 스프레이 뿌린 단발머리를 매만진다. 오징어집은 동안으로 보이려 포장지를 팽팽히 다리미질하고 왔다.


“자, 여러분! (주)과자나라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들어오세요.”


면접장에는 네 명의 소비자들이 앉아 있다. 그들은 안경을 반짝이며 바삐 펜을 굴린다. “자자, 자기소개들 해 보세요. 오징어집부터.” 오징어집은 큼큼 헛기침을 하고 입을 뗀다. “저는 1992년에 농심대학을 나왔습니다. 해물 과자를 전공했고, 오징어 맛과 허니버터맛을 부전공했습니다. ‘기름 철철’ 자격증을 취득해서 칼로리를 폭발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제 포트폴리오에 넣은 ‘오징어 다리 매콤 구이’는 SNS에서 선풍적 인기를 끄는 중이죠. 저, 오징어집! 과자나라 회사에 이 한 봉지 바쳐 일하겠습니다!”


제법이다. 긴장감에 포장 봉지가 바싹 쪼그라든다. 한 중년 소비자가 심드렁하게 묻는다. “근데 부전공한 과목들 학점이 꽤 낮네요? 오징어와 버터 함유량이 C+를 받았는데요.”  오징어집은 날카로운 질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게… 어, 왜 그러냐면요…” "같은 대학을 나온 새우깡보다 더 뛰어난 역량이 뭐죠?" "저.. 저는..."  “됐습니다. 다음 지원자, 자기 소개하세요.” 소비자가 단호하게 말 끝을 자른다. 됐다, 오징어집은 경쟁 대상에서 아웃이다.


매콤한 향을 풀풀 풍기는 나쵸는 당당히 입을 뗀다. “저는 멕시코에서 오랜 유학 생활했습니다. 치즈, 할라피뇨 부서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죠. 또한 cgv, megabox 등 대형 영화관에서 2년 계약직을 했습니다. MZ세대 트렌드에 따르면 고인물인 팝콘보단 바로 저, 나쵸가 핫하답니다. 저를 뽑아주십시오!"


유학파는 위험하다. <글로벌 스낵학> 강의 내용을 복기하자면, 요새 소비자들은 속이 알 찬 외국과자를 더 선호한다. 역시는 역시다. 스타일리시한 젊은 여성 소비자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원산지도 좋은 데서 나오셨고, 영양소도 여러 가지 취득하셨네요. 제조 과정도 공백기 없이 퍼펙트하고요." 나쵸 지원자가 도도하게 미소를 훗 지어 보인다. 맨 오른쪽에 앉은 외국인 소비자가 질문한다. "Our company also has a Chinese branch. Is there anything you can appeal to?"(저희 회사는 중국지사도 있어요. 어필할 점이 있나요?) 나쵸는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답변한다. "I recently finished the "Mara tatse" internship course, which is the hottest. I also have so many TikTok followers."(저는 최근에 가장 핫하다는 마라 맛 인턴십을 끝냈어요. 제 틱톡 팔로워도 많답니다.)  어린이 소비자가 틱톡이란 단어에 '우오'하며 환호한다. 젠장, 아주 밀려버렸다.


이제 막 졸업한 티가 나는 초코송이는 바로 앞 지원자 나쵸 때문에 기가 질린 듯하다. 그녀는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입문을 연다. "어, 저는 오리온 대학을 나왔어요. 일본 메이지 대학에 한 학기 교환학생도 다녀왔고요. 냉장고 회사 공모전에서 <얼초상>을 받았어요. 음... 또오..."

    

역시 사회 초년생답다. 초코송이의 주눅 든 단발머리가 녹기 시작했다. 중년 소비자가 다독이듯 질문을 던진다. "성장과정을 읽어보니 지원자는 어릴 적 땅에서 자랐다는 놀림을 받았다죠?" 초코송이는 부슬부슬 비스킷 가루를 흘리며 답했다. "네에. 친구들이 저한테 막 독버섯 아니냐고... 저를 많이 먹으면 막 살찌고 이도 썩 구 그래서..." 결국 초코송이는 울음을 빵 터트린다. 어휴, 초짜. 소비자들한테 단점을 어필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어린이 소비자가 초코송이를 면접장 밖으로 내보내며 격려한다. '전 학교 소풍 갈 때 당신 같은 지원자가 꼭 필요했어요'라고.


드디어 내 차례다. 나, 꼬깔콘. 면접장을 뒤집어 놓겠어! "손 손 손 손 뗄 수가 없어~ 꼬깔콘! 멈 멈 멈출 수가 없어~" 일단 기선제압을 위해 과자 가루 날리며 춤부터 췄다. 소비자들이 토끼눈으로 날 쳐다본다. "저 꼬깔콘! 롯데제과 대학에서 3년 연속 스낵 회장으로 뽑혔습니다. 그뿐입니까? 허니버터, 새우 마요, 버펄로 윙 등 수료증만 무려 16개입니다. 옥수수만 먹고 자라서 영양소 만땅! 맥주와 환상 콤보! 저를 뽑아주세요!"


나는 열정적인 소개를 마치고 헉헉대며 자리에 앉는다. 아주 완벽했어! 근데 소비자들의 표정이 어째 뚱하다. 여성 소비자가 묻는다. "꼬깔콘 씨, 왜 손가락들의 우산이 되어 준 일화는 말하지 않죠?" "네? 그거야... 저는 스낵 회장 경력이랑 수료증이 중요하니까..." 내가 뻘뻘 대자 중년 소비자가 아쉬운 듯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곤 내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말했다. "이 안에 있는 과자들, 모두 잘 팔리고 맛있는 인재들이에요. 하지만 소비자들이 찾는 과자는 그중에서도 '우리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과자예요. 아이의 고사리 손. 수험생의 부르튼 손. 부모님의 주름진 손. 꼬깔콘 씨는 그 수많은 손들 위에서 어떤 가치를 갖고 계셨나요?"




나의 가치. 25년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내 가치를 모른다. 스펙만 쌓으면 가치란 것도 쌓이는 줄 알았다. 근데 그건, 진짜 가치가 아녔다. 그날의 면접관도 마지막 질문에서 내 가치를 물었다. 잊고 살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가슴 한편이 아렸다.  제 가치도 모르는 지원자는 매력을 잃는다. [꼬깔콘 씨를 2021년 하반기 신입 공채에 모시지 못하게 되어 죄송스런...] 부스럭 부스럭 포장지를 벗는다. 다시, 취준생이다.


 + 오늘 과자 면접자들의 <이력서>

1. 오징어집 : 1992년 '농심'에서 태어났다. 오징어 맛과 허니버터맛이 있다. 기름기가 많다. 오징어 다리 매콤 구이라는 신메뉴가 있다. 오징어와 버터 실 함유량이 낮아 비판을 받는 편.

2. 나쵸 : 멕시코 과자. 치즈와 할라피뇨랑 잘 어울린다. 영화관에서 환영받는다. 마라 맛 나쵸 신메뉴가 있다.

3. 초코송이 : 오리온 출신. 일본 '메이지' 회사의 초콜릿 과자 표절 의혹이 있다. '얼초(얼린 초코송이)'로 폭풍 인기를 끌었다. <백괴사전>에선 여전히 땅에서 자라는 송이버섯으로 의심받는 편.   

4. 꼬깔콘 : 롯데제과 출신. 꼬깔콘이 면접장에서 부른 노래는 1980년대 CF 후크송. 식품산업통계에 따르면 2017-2019 3년 연속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자로 선정됐다. 정말로 치먹 스파이시, 멘보샤, 피넛버터 등 16가지 신메뉴가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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