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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Feb 05. 2022

새벽을 열던 터미널지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사람이 있던 자리에 기계가 있다

“뭐야, 어디로 가셨지?”


오랜만에 들린 대전 도룡 터미널. 기존 터미널 전경과 다른 생경한 모습에, 나는 캐리어를 내리다 말고 엉거주춤 멈춰 섰다.


기존의 도룡 터미널은 표를 판매하는 아저씨와 3단 간식 판매대, 그리고 한두 좌석이 놓인 몇 평 안 되는 쪼그만 곳이었다.

출장이 잦은 아버지와도 안면이 있던 그 아저씨는 매일같이 작은 터미널의 새벽을 여셨다. 그리고 한 칸 채 안 되는 좁은 곳에서 국내 지역 수십 곳의 표를 출력해내셨다.

그는 밤늦게 까지 터미널을 지키면서도, 늘 친절함은 잃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가 나고 자랐던 때부터 수 십 년 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셨다. 그래서 난 도룡 터미널이 좋았다. 그 옛 것이 좋았고, 그 온기가 좋았다.


그런데 아저씨는 어디 가고, 그 자리에 웬 큼지막한 기계 두 대가 떡하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엔 어디로 가세요?” 난로처럼 따뜻했던 그분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목적지를 선택해주세요” 얼음보다 딱딱한 기계음만 흘러나왔다. 나는 잠시 멍하게 기계 앞에 멈춰 섰다. 바삐 표가 오가던 창구는 막혀있었다. 사람은 사라졌고, 소통은 끊겼다. 우리가 원했던 21세기가 이런 거였나. 누군가의 존재를 온데간데없이 지워버리는 것?  온기 없는 삭막감을 쫓아가는 것? 편리함 속 까맣게 잊힌 희생을 눈 감고 외면하는 것? 그렇게 좋아했던 터미널이 순간, 너무나 싫어졌다. 새벽을 열던 터미널지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를 데리러 온 아빠도 이내 아쉬움을 내비쳤다. “기계가 있으면 편리하긴 하겠지만, 그분이 있을 때도 딱히 불편한 건 없었는데 말이지. 매번 공항 갈 때마다 이번엔 어디 나라가냐고 물어보셨거든. 좋아했던 익숙함을 잃어버린 느낌이네.” 버스 안내양도, 마트 캐셔도, 식당 서버도. 조금 더 편리해지기 위해, 돈을 아끼기 위해, 빠르고 간편한 노동을 위해. 사람의 존재를 하나 둘 없애간다. 목소리의 크기를 점차 줄여간다. 따스한 미소를 하루 이틀 잊어간다.


기계가 들어 찬 세상이, 난 싫다. 내 주문을 잘못 들어 엉뚱한 음료를 제조해도 괜찮다. 서빙 중 접시를 깨서 다시 기다려야 해도 괜찮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있다면 괜찮다. 그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이, 마음을 담은 목소리가, 매 순간 바삐 움직이는 손들이 사회의 모든 순간을 만들고 함께했다. 그들과의 작은 소통이, 하루를 만들고, 추억의 필름을 채운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필요하다. 기계 말고, 제발 기계 말고 사람이.


서울로 돌아가는 길, 도룡 터미널에 다시 들렸다.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기계의 스크린이 차가웠다. 드륵드륵 기계음과 함께 표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내 작은 목소리를 기계가 들어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인사했다. 괜스레,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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