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금 Feb 13. 2022

일은 일답게, 삶은 삶답게.

삶과 일의 균형이란

"일이 바쁘니까, 인간관계가 좁아졌죠."


옅은 한숨으로 내뱉은 한 과장님의 한 마디. 회사에서 매일 새벽 밤을 밝히던 그녀에겐, 어쩌면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만드는 게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는 밀린 잠을 처리하느라 꼼짝없이 방콕. 연휴에는 밀릴 일들 처리하느라 어김없이 방콕. 한 과장님이 일주일 간 소통하는 사람은 회사 사람들과 가족들 뿐. 그녀의 인간관계가 다 끊어진 거미줄처럼 돼 버리는 건 당연했다.


과장님은 일이 좋다고 하셨다. 자신의 젊음을 전부 갖다 바칠 정도로 좋다고. 매일 위장약과 핫식스, 피로회복제를 달고 살면서. 생기가 빠져나가 파리하게 말라가면서. 시시각각 철면피 광고주들한테 치여 살면서.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전혀.


한 과장님 뿐만 아니다. 회사 내부에는 업무 때문에 인간관계를 좁혀 사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박 대리님도 그렇다. 그에겐 저녁 6시만 되면 사모님한테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도, 야근?" 그 한 마디를 묻기 위해, 오후 6시까지 전전긍긍 기다렸다가 전화를 건다. 대리님은 잔뜩 움츠러든 어깨로 "응" 하고 답한다. 지난해에 결혼했다면서. 개미만큼 기어든 목소리에 미안함이 가득하다. "다른 사원들에게 일 좀 맡겨요. 혼자 다 떠안지 않아도 돼요." 내가 툭 건넨 한 마디에 그는 말한다. "이 일은 나 아니면 안 돼."


김 과장님도, 백 주임님도. 다들 일이라는 파도 속에 잠겨 산다. 담배를 공기호흡기 삼아, 업무 중간중간 거친 날숨을 내뱉으며. 다들 광고가 좋아서 시작한 일. 무언가를 세상에 알리고, 홍보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게 좋아서. 행복해서. 그래서 다들 유리조각 같은 리스크들을 전부 끌어안고 광고업에 뛰어들었다. 사무실 안에서 매일 풍겨오는 커피 향과 야식 냄새가, 가끔 지릿한 피 내음 같다고 느끼는 이유다. 그러나 다들 이 정도로 일이 삶이 돼버릴 줄은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다. 그러니 '일상과 업무의 균형'이란 말도 있는 것 아닌가.


내 일이 내 삶이 될 수 있을까?


유독 호기심 많은 내 삶 안에는 많은 것들이 굴러 다닌다. 깊은 물속에 온 몸을 담그는 프리다이빙, 항상 나를 성장시키는 중국어 공부, 엄마를 닮은 그림 그리기, 봉사활동으로 시작한 오디오북 녹음. 모두 내 삶을 물들이는 예쁜 색깔들이다. 물감 하나라도 빠지면 그림 전체가 밋밋해지듯이, 내 삶도 그렇다. 모든 색깔들이 서로를 물들여 가며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지금의 내게 광고는 푸른색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색깔이다. 하지만 그 푸른색이 하늘을 넓게 칠하다 못해 알록달록한 육지마저 덮어 버렸다. 삶 속엔, 그렇게 공허한 하늘만 남았다.


일은 일답게. 삶은 삶답게. 우리 그렇게 살아가요.

우린 결국 회사 밖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우리의 삶은 이 좁은 곳에 갇혀 있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우리가 만드는 광고 속 이야기처럼, 즐겁게 다채롭게 행복하게 살아가요.

부디 삶을 더, 아끼고 사랑해주세요.


"한 과장님, 그래도 좀 쉬시면서 하세요. 이 세상엔 즐길 게 광고 말고도 너무 많잖아요."

"박 대리님. 오늘은 야근 금지! 사모님 마음 그만 애태우고, 금요일만큼은 단란한 시간 보내세요."

"김 과장님, 백 주임님! 핫식스 좀 그만 마셔요. 몸 버리시면 그리 좋아하시는 광고일도 오래 못 하십니다?"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신입 내기가 뽈뽈대며 잔소리해댄다. 상사들은 못내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만다.

사무실에서 풍기는 피 냄새가 내일은 좀 더 옅어지길, 그리 희미한 바람을 안고 일을 했던 늦은 오후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번 신입 공채에 지원한 25살 꼬깔콘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