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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여행가 May 07. 2020

'배달의 민족'은 어쩌다 '배 다른 민족'이 되었을까?

팬덤 마케팅으로 흥한 배달의 민족, 팬덤 마케팅으로 망하나?

나 역시 배달의 민족의 팬이었다. 요기요가 '치킨 게임*'을 시작하며 막강한 현금력을 동원해 프로모션을 진행할 때에도 배민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가치에 공감하여 배달의 민족으로 치킨을 시켰다.


마케터로서 B급 마케팅으로 시작해 '배민 문방구'까지 만든 기획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광고 하나하나 마다 빛이 나는 카피라이터를 볼 때마다 놀라웠고,

매거진F를 발간하며 단순히 배달이 아닌 음식 문화를 이끌어간다고 보았으며,

'배짱이'라는 브랜드 팬클럽을 창단하며 팬덤 마케팅의 시대를 열었으며,

토종 한국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ZERO 수수료 정책을 펼치며 착한 마케팅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배달의 민족 충성 고객들은 이런 점에 공감하지 않았을까? 요기요가 항상 더 많은 금액의 쿠폰을 제공했지만, 치킨 게임이 한창인 시절에도 배달의 민족은 여전히 압도적인 1등이었다.


* 치킨게임 : 두 명의 경쟁자 중 어느 한쪽이 포기하면 다른 쪽이 이득을 보게 되며, 지는 사람이 chicken(겁쟁이)가 되는 것. 삼성이 주도한 반도체 치킨게임은 다른 업체들이 반도체 개발 및 생산을 포기하게 만듦으로써 승자가 되었다. 현재는 사우디-이란 발 원유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1. 배달의 민족의 성공시대


혁신적인 플랫폼의 선두두자

배달의 민족은 배달 음식 주문이라는 간단한 어플 같아 보여도, 배달 문화를 바꾼 혁신적인 신(新) 플랫폼이다. 배달의 민족은 그냥 '단순히 배달 업체를 모은 어플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1)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하고 -> (2) 전화번호를 찾아 -> (3) 전화해서 주문하고 -> (4) 배달원에게 결제하고 -> (5) 음식을 받는 프로세스로 주문을 했다.

하지만, 배민에서는 (1) 어플을 켜서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 주문 및 결제하고 -> (2) 배달이 오면 받는 프로세스로 간결해졌다. 주문과 결제 프로세스를 합쳤을 뿐만 아니라, 전화번호를 찾는 번거로움도 없앴다.



특히나 과거에는 어떤 음식점이 주변에 있는지 명료하게 알 방법이 없으니 전단지에 의존하거나, 내가 알던 브랜드만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배민에서는 쉽고 간편하게 배달 가능 지역에 어떤 음식점들이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으며, 기존 고객의 리뷰까지 볼 수 있으니 소비자가 갖는 정보력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배달의 민족 비즈니스 모델을 따라 하여 시장에 진출한 업체들도 있고 다른 산업에 접목한 케이스도 있다. (굿닥, 직방 등)


혁신적인 마케팅의 선두두자

배달의 민족은 플랫폼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발한 마케팅 전략과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 압도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매거진F'는 브랜드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전문 잡지인 '매거진B'와 협업하여 낸 푸드-다큐멘터리-잡지이다. 김치, 콩, 소금, 꿀 등 매 화마다 한 재료/음식 테마를 선정하여 이에 대해 전문적이고 두툼한 잡지책을 내놓고 있다. 배달의 민족은 단순히 음식 배달 플랫폼에 멈추지 않고 음식 문화를 선두 한다는 이미지까지 가져갈 수 있는 좋은 마케팅이다.

배민 하면 B급 마케팅도 빼놓을 수 없다.  배민 신춘문예/치믈리에 자격시험 등을 운영하며 고객과 꾸준히 커뮤니케이션하고,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와 같은 다소 엉뚱하면서 기발하고, 뭔가 허접해 보이는데 웃기고 친근한 광고들을 꾸준히 내보내면서 고객들을 매료시켰다.

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B급 마케팅.
일반 책 보다도 두꺼운, 푸드 전문 다큐멘터리 잡지 F.  진지한 것도 잘하는 배달의 민족.


결국 브랜드 팬클럽까지 탄생시킨 '팬덤 마케팅'의 시초, 배달의 민족.

'배짱이', 배달의 민족 팬클럽 이름이다. 방탄소년단의 아미, 트와이스의 원스처럼 배달의 민족에게는 배짱이라는 팬클럽이 있는 것이다. 연예인도, 아니 사람도 아닌 브랜드에게 팬클럽이 있다니.

배짱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배달의 민족과 관련된 문제를 풀거나, 내가 얼마나 배달의 민족을 좋아하는지 인증해서 소위 말하는 덕력(덕후력)을 인정받아야 된다. 이후 배달의 민족 회사인 '우아한형제들' 본사에 방문해 배달의 민족과 관련된 이벤트들을 진행하고, 굿즈를 선물 받는 등의 마치 아이돌 팬미팅 같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배달의 민족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직접 체험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행사를 진행한다.

수백 명의 팬덤을 이끄는, 팬덤 브랜드 배달의 민족

요즘 브랜드는 이렇게 배달의 민족처럼 팬클럽, 팬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일명 팬슈머/팬덤 마케팅으로 자리 잡았다.

블록 완구 업체인 LEGO의 경우 '레고 아이디어스'라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고객이 직접 레고를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다른 레고 팬들과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반응이 좋은 제품은 실제 제품으로 탄생하는데, 인기 시트콤 '빅뱅이론'과 '프렌즈' 레고 시리즈가 이 플랫폼을 통해 출시되었고, 병 안에 해적선이 들어 있는 아래 사진과 같은 제품의 경우 품절 대란이 일어나 프리미엄(웃돈)을 얹어야 구입할 수 있었다. 레고 팬들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상품 개발에 고객을 참여시키는 팬슈머(Fan+Customer)를 양성함으로써 브랜드력을 강화하였다.

팬슈머를 적극 활용한 레고아이디어스는 수많은 카피캣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레고만이 할 수 있는 역량에 집중하여 돌파함은 물론 팬들과의 결속을 더욱 공고히 했다.


또 다른 예는 최근 가장 큰 팬덤을 보유한 브랜드, 테슬라이다. 테슬라는 미디어 광고를 하지 않는다. 이에 답답했던(?) 팬들은 직접 테슬라 광고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10대 소녀이자 테슬라 팬 '브라이어 러브데이'의 아버지는 딸이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에게 쓴 편지를 보고 일론 머스크에게 그 내용을 멘션 했다. '테슬라 고객들이 좋은 홍보 영상을 직접 만들고 있으니, 경연을 개최해 우승작을 수상하고 그것을 광고하면 좋을 것'이라는 내용이고, 이에 일론 머스크는 '프로젝트 러브데이'를 진행하며 답했다. 테슬라의 팬덤이 어마어마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최근 10대의 드림카는 람보르기니, 페라리가 아닌 테슬라가 되어가고 있다.

Project Loveday의 시작.

마치 아미가 방탄소년단 교차편집 영상을 제작해 올리고, 대포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뷔, 지민의 최고의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등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객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넘어 직접 소통하고 고객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팬덤을 만들며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것이 최근 마케팅 트렌드 중 하나이다. 배달의 민족은 4년 전부터 배짱이를 운영하며 팬덤을 키워왔다.

그런데 배달의 민족은 어쩌다 팬덤을 잃게 되었을까?



2. 배달의 민족의 수난시대


팬은 돌아서면 적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남 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다고 한다. 특히 상대의 명백한 실수에 의해 헤어지게 된다면 그 감정은 증오, 적대감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요즘은 아이돌 멤버가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하면 탈퇴 요구를 하는 성명서까지 내며 집단행동을 한다. 엑소 첸이 결혼 및 혼전임신 소식을 발표하게 되었을 때, 첸의 행동에 실망한 일부 팬들은 탈퇴 요구를 진행했다. 슈퍼주니어의 경우 강인의 폭행, 음주운전 등의 실수가 누적되자 팬들이 먼저 탈퇴 요구에 나섰다. 팬덤이 강한 프로야구 역시 선수의 음주운전 등이 발각되면 팬들이 먼저 탈퇴 요구를 한다.

팬이 아닌 사람들은 사실 엑소 첸이 결혼을 하는지에 크게 관심이 없고, 강인이 음주운전을 하면 처벌만 받으면 그만이지 '슈퍼주니어를 탈퇴하세요!' 요구를 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잘 아는 팬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특히나, 사랑으로 인해 모른 척 해왔지만 팬들만 알고 있던 숨겨진 문제들을 폭로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팬클럽/디씨인사이드 갤러리를 통해 성명서를 내기도 한다.


수많은 팬덤을 이끌던 배달의 민족도 역시 앞으로 사업이 막막해졌다. 무엇 하나 발표를 할 때마다 악플 천지이다. 이미 '배신의 민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린 것이다. 수수료 방식을 변경한다는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역시 시장을 독점하자마자 돈 벌려고 한다', '착한 ZERO 수수료 어디 갔냐' 등의 부정적 바이럴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배달의 민족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내던 자영업자는 배달의 민족 탈퇴 선언을 하고, 그동안 쌓여왔던 다른 불만들도 인터넷에 제보하고 있다.

사실 수수료 변경 방식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일반 소비자는 완벽히 모를 수 있는데, 배달의 민족 안티가 된 사람들은 기존 방식과 비교하며 주문 수 시나리오 별로 수익이 어떻게 바뀌는지, 얼마나 배달의 민족이 더 가져가게 될 것인지 낱낱이 분석하여 올렸다. 그리고 이는 결국 음식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그 피해의 몫은 소비자라는 글들을 만들었고, 이는 국내 주요 커뮤니티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논란이 확산되었다.


배짱이 페이지는 활동을 잠시 멈춘 것 같다.


자나 깨나 고객과의 신뢰는 잃지 말아야 한다

배달의 민족은 고객과의 신의를 져버렸고, 이는 고객과의 공고했던 관계를 깨뜨렸다. 팬클럽까지 창단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유쾌한 광고에는 좋아요와 댓글이 쏟아졌던 배달의 민족 페이스북/인스타그램 페이지는 어느새 배달의 민족이 일방적으로 글을 올리는 창구가 되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채널에서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된 것이다. 10개 남짓의 댓글 중 악플이 대부분이다.


배민 팬들은 요기요의 막강한 할인 쿠폰을 뒤로한 채 의리로 쓰고 있었는데 일부 인플루언서들에게 막강한 할인 쿠폰을 뿌리고 있는 게 밝혀졌다. (VIP 쿠폰은 한 달에 달랑 천 원짜리 한 장이다.)

논란이 되기 시작한 ㅇㅇㅇ가 쏜다. 나에게만 안 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요기요는 독일 회사입니다 라고 애국 마케팅을 하던 회사가 독일 회사와 합병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이었습니까'로 광고계를 휩쓸고 애국심을 이용해 많은 고객들을 포섭했다.


ZERO 수수료라고, 착한 마케팅을 하던 회사가 돌연 수수료 정책을 바꾸겠다고 한다.

배달의 민족은 새로운 도전을 해 폭풍 성장을 했었지만, 과거 이야기가 되었다.


결국 팬과 소비자들은 등을 돌렸다. 여전히 배달의 민족을 쓰긴 하겠지만, (다시 식당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하고 배달 오면 결제하는 과거의 프로세스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배달의 민족을 확실히 능가할 수 이는 배달 앱이 등장하면 소비자 들은 바로 갈아탈 것이다. (배달의 명수 말고) 이 기회를 포착한 쿠팡이츠/위메프오 등은 대대적인 프로모션과 함께 시장 진입을 하였다. 적극적인 투자로 유명한 쿠팡과, 소셜커머스에서 처음으로 흑자를 낸 경험이 있는 위메프는 확실히 쉬운 상대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배달의 민족이 뚝심 있게 이어가던 'B급 마케팅' 포스터/영상에는 지루하다, 노잼이다 라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배민이 가장 잘하고, 소비자도 열렬히 반응했던 마케팅마저도 부정적인 프레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과연 배민 다움은 어디 갔을까?

배민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배민의 강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배민의 '핵심가치'는 1) 혁신적인 배달 플랫폼의 시장 개척자 2) 후발주자가 단기간에 따라오기 어려운 폭넓은 커버리지 3) 착하고 유쾌한 친근한 형 같은 (마치 광고모델이었던 류승룡 같은) 이미지의 브랜드 퍼스널리티라고 생각한다.

배달 플랫폼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배달의 민족 역시 과거에는 배달 전문점 음식만 배달했지만, 레스토랑 음식을 배달하기 시작했고(배민라이던스), 커피/빙수 등의 카페 음식을 배달하기 시작했고, 1인분 배달을 도입하고, 반찬을 배달하고, 이제는 간편 장보기인 B마트도 런칭했다. 현재는 음식 관련 카테고리에 집중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라이프스타일 딜리버리 플랫폼으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다행인 것은, 배민은 배민 다움을 안다. '배민다움'을 배민 직원들이 다시 읽어보는 건 어떨까?


배달의 민족이 '배민다움'에 집중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잘하는 것, 즉, 기업의 펀더멘탈에 집중하여 과거의 명성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고객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이 방법 밖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B급 마케팅과 팬덤 마케팅의 시발점이었던 배달의 민족이 새로운 마케팅으로 고객들을 매료시켰으면 좋겠다.

다양한 역경을 극복하고 장수하는 아이돌 신화, god처럼 배달의 민족이 딜리버리 플랫폼을 계속 이끌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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