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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감축의 시대, ‘교육 예산 감수성’을 다시 세우자

숫자 절약이 아니라 ‘학생에 닿는 우선순위’로

학교는 이미 감축기의 한복판에 있다

지금 학교 현장은 긴장 속에 운영되고 있다. 운영비의 집행은 이전보다 지연되고, 각종 지원 사업은 줄거나 연기되고 있다. 예산 상황의 변화는 공문보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작은 불편과 대응의 어려움으로 먼저 체감된다. 예를 들어 노후화된 시설의 유지보수가 지연되거나, 상담이나 정서 지원이 필요한 학생에게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늘고 있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이미 '예산 감축의 시대'를 체감하고 있다.

물론 교육청이나 교육부 또한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교육정책 설명회, 포럼, 연수 등의 외부 행사가 여전히 규모 있게 진행되는 것을 볼 때, 학교 현장의 입장에서는 때때로 '예산 감축은 학교만 해당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교는 작고 구체적인 문제로부터 예산의 절실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감축보다 중요한 건, 다시 쓰는 기준이다

예산을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 줄이되, 무엇을 줄일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학교는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다. 이 생명체의 온기를 유지하려면 진단, 상담, 학습지원, 정서적 돌봄 등 학생의 삶에 직접 연결되는 예산은 어떤 경우에도 우선순위에서 밀려선 안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각종 목적사업비는 정해진 항목 외에는 사용이 제한되어 있어, 당장 필요한 사업에 바로 투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금 이 순간, 학교에서 가장 절실한 지원이 필요한 곳은 오히려 손을 대지 못하고, 비교적 여유 있는 예산 항목은 그대로 유지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예산 구조와 현장의 실제 필요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더구나 ‘작년 대비 몇 퍼센트 감축’이라는 일괄적 방식은 본질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중요한 사업도 무조건 줄이고, 우선순위가 낮은 사업도 유지되는 형식적 축소는 실질적 효율을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총량 감축이 아니라 방향 재설계다.


예산 감수성: 새로운 시대의 감각이 필요하다

이제는 ‘교육 예산 감수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이 감수성은 단순한 절약 정신이 아니다. 예산을 바라보는 감각을 바꾸자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예산인가? 어디에 먼저 닿아야 하는가? 가장 절박한 곳에 도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교육 예산 감수성은 네 가지 질문을 중심에 둔다. 첫째, 학생에게 직접 닿는가? 둘째, 학습과 성장에 효과가 있는가? 셋째, 취약하고 소외된 학생들에게 형평성 있게 배분되는가? 넷째, 현장에서 유연하게 집행 가능한가? 이 네 가지를 중심으로 예산을 바라본다면, 단지 줄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는’ 예산이 가능해진다.

예산의 크기를 말하기보다, 그 예산이 ‘누구에게 닿는가’라는 관점이 필요한 시대다. 이제는 숫자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예산의 관성, 교육의 본질을 가린다

교육청도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매년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사업의 지속이 ‘관성’에 의해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한 부서에서 수년째 진행해 온 사업은 담당자의 변화나 정책 변화와 무관하게 이어지고, 사업평가 또한 내실보다 형식에 치우친 보고로 갈음되는 경우가 있다.

학교 입장에서는 매년 비슷한 사업이 약간의 이름만 바뀌어 반복되고, 그 사업이 정말 필요한지와는 관계없이 ‘공문에 따라’ 수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소진되고, 예산은 실제 효과를 내지 못한 채 소모된다.

이제는 ‘사업=예산=사람=조직’이라는 고리를 잠시 끊고, 본질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멈춰야 하는지를 자문해야 할 때다. 그 자문은 현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산의 크기를 말하기 전에, 방향부터 점검해야 한다.


교사의 침묵, 예산 구조가 만든다

교사들은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담임은 학부모 상담, 수업 준비, 생활지도, 돌봄, 위기 대응에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렇게 바쁜 교사에게 “이 사업 예산 어떻게 쓰고 계세요?”라고 묻는 건 현실을 모르는 질문이다. 현장의 침묵은 수용이 아니라 피로다.

교사들이 예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실제로 집행 권한이 없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예산에 대한 정보를 공유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사는 예산의 '이용자'가 아니라 단지 '집행자'가 되어 있을 뿐이다. 예산 설계 단계에서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교육청은 현장 교사들과 더욱 밀도 있는 소통을 통해, 예산이 학교에서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를 주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예산의 신뢰도와 수용성 또한 높아질 것이다.


학생에게 먼저 닿는 예산으로 재설계하자

모든 예산이 줄어들 수는 있다. 하지만 줄어들기 전에 우선순위를 새로 정해야 한다. 학생의 건강, 정서, 학습, 진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기준은 단지 내부 논의로 그쳐선 안 된다. 사회와 국민 앞에 설득력 있게 설명되어야 한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지금이야말로 ‘예산 재설계 원칙’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행사성·간접비 사업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학생 지원 중심의 예산은 확대하며, 형평성과 효과성 중심의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현장의 자율성과 탄력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구조 개편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예산이 학생에게 닿는 속도, 교사의 손에서 쓰이는 실효성, 학교 공간에서 체감되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과 설계가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감축의 철학이자, 교육예산 감수성의 실천이 될 것이다.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두자

교육은 결국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쓰느냐’보다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감축의 시대일수록, 철학이 더 분명해야 한다.

학교는 늘 그래왔듯이 감내하고 버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참는 학교’가 아니라, ‘목소리를 내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교육청은 그 목소리에 더 많이, 더 가까이 귀 기울여야 한다. 교육예산 감수성은 바로 그 대화의 출발점이다.

아이들을 위한 예산. 교육의 본질에 집중하는 예산. 지금 우리가 세워야 할 새로운 기준이다. 감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제는 감수성을 가지고, 함께 예산을 다시 그려야 한다.


2025. 10. 30. (목)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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