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사회, 이제 교육의 본질에 다시 집중해야 한다
위기의 상시화, 감각의 마비
한때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은 사회적 경고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경고조차 낯설지 않다. 교권 붕괴, 기초학력 저하, 사교육 의존, 인구 절벽, 지역 격차, 입시 경쟁… 우리는 수년간 교육 위기를 반복해서 말해왔고, 반복해서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문제는 더 이상 위기의 존재가 아니라 그 위기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마치 만성 통증에 익숙해진 사람처럼, 교육이 앓고 있다는 사실에 누구도 놀라지 않는다. 이 무감각이야말로 지금 한국 교육이 처한 가장 근본적인 위기다.
교실 안팎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은 뉴스의 뒷면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교사의 순직, 아이들의 중도 탈락, 학교 내 폭력, 열악한 교육환경, 그리고 자율성 없이 지침에 쫓기는 교육 행정. 이것들이 한두 해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닌, 상시적인 현실이 되었다. 언론은 잠깐 주목하지만 곧 다음 이슈에 묻히고, 교육부나 교육청은 조사와 대책을 발표하지만 학교 현장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반복되는 위기는 어느새 체념을 만들고, 체념은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지금 교육의 위기를 ‘정상 상태’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책과 현장의 단절, 말뿐인 참여
교육정책은 분명 존재한다. 국가도, 교육부도, 수많은 위원회와 연구기관도 ‘혁신’과 ‘미래’를 말한다. 그러나 그 화려한 구호 이면에, 학교는 점점 더 고립되고 있다. 정책은 ‘전달’되지만 ‘소통’되지는 않는다. 참여는 요구되지만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다. 행정 기관은 정책 추진 후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지만, 질문은 형식적이고 응답은 피상적이다. 학교 구성원들의 구체적이고 복잡한 현실은 통계의 숫자 속으로 사라진다.
현장의 교사들은 말한다. “정책은 많지만 들은 적은 없다.” “매번 새로운 계획이지만, 현실과는 다르다.” 역점사업은 화려하게 포장되어 홍보되지만, 정작 학교가 겪는 일상의 문제는 정책의 중심에서 비껴나 있다. 현장의 목소리는 보고서의 각주로 남고, 진짜 요구는 전달 과정에서 필터링된다. 행정의 구조적 문제도 치명적이다. 한 조직 내에서도 부서 간 소통과 협업은 유기적이지 못하고, 학교 현장의 요청은 단일한 책임 체계 없이 여러 부서를 떠돌다 문제 해결의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현장의 위기는 단지 예산이나 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파편화된 행정 구조와 단절된 소통 시스템, 책임의 공백 속에서 비롯된다. 작은 징후가 구조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는 문제로 확산된다.
‘있는 예산’이 ‘없는 예산’이 되는 구조
현장의 위기는 예산 구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학교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은 “예산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의 절대량이 아니라, 그 예산이 어디에, 어떤 원칙으로 쓰이는가에 있다. 기본적인 학교 운영비는 줄어드는 반면, 교부금은 축소되거나 지연되고 있다. 반면 목적사업비는 용도가 한정되어 있고, 집행 기준도 까다롭다. 냉난방비처럼 줄일 수 없는 고정비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실제 수업과 교육활동에 필요한 예산은 보이지 않게 우선 삭감된다. 이는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로막고, 교육 프로그램을 축소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문제는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쓰지 못하는 구조’다. 정책사업은 잘 보이는 성과 위주로 설계되지만, 학생의 삶과 수업의 질은 수치화되지 않는다.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가 현장보다 실적에 맞춰질 때, 교육은 더욱 허약해진다. 재정이 어려울수록 ‘필수’보다 ‘성과 과시용’이 먼저 배분되는 현실은 위기 그 자체다.
교실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
학교의 중심은 교실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교실은 교육의 중심이 아니라, 각종 정책의 말단 실험장이 되고 있다. 교사는 수업보다 행정에 시달리고, 학생은 학습보다 평가에 쫓긴다. ‘학생 중심’이라는 말은 정책 자료집에만 있고, 실제 학교 운영은 교사 배치, 시간표, 공간 부족, 안전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에 막혀 있다. 교사의 자율성은 지침과 공문에 묶이고, 교실의 창의성은 행정의 통제 아래 축소된다.
입시제도는 몇 년마다 뒤바뀌지만, 학생들의 학습 불안은 줄지 않는다. 중도탈락 학생은 증가하고 있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2024년)에 따르면 학교 밖 청소년은 이미 17만 명을 넘어섰다. 한때 교육의 실패로 여겨졌던 중퇴는 이제 일상적인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학생도, 교사도, 학교도 모두 피로하다. 피로는 곧 무기력으로, 무기력은 다시 불감증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무너지고 있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이미 무너졌기 때문이다.
다시,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교육을 왜 하는가?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경쟁력을 위한 수단인가, 아니면 더 나은 시민을 위한 공간인가. 교육이 경제적 도구로만 인식되는 순간, 학생은 점수로, 교사는 성과로, 학교는 효율로 환원된다. 그런 사회에서 교육은 더 이상 ‘성장’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된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다. 사람을 기르고, 사람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수업을 살리는 일, 아이의 삶을 돌보는 일, 교사의 성장을 지원하는 일. 교육의 본질은 바로 그곳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책이나 제도가 아니다. 우리가 외면해온 질문들을 다시 꺼내고, 학교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교육의 중심을 다시 교실로 돌리는 일이다.
교육 위기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러나 그 위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교육의 미래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한다. 위기는 이미 왔고, 우리 앞에 있다. 이제 불감증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진짜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
2025. 11. 17. (월)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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