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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정치기본권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

침묵의 교실을 다시 ‘민주주의의 첫 공간’으로

학생의 삶과 교육의 괴리: 왜 지금 교사의 정치기본권인가

2022 개정교육과정은 ‘삶의 맥락과 연결된 학습’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들은 단순한 지식 암기를 넘어서, 실제 사회에서 부딪히게 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타인과 협력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역량을 기르도록 요구받는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의 삶에서 가장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정치·사회·갈등·공동체 문제는 교실 안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세계 곳곳의 정치적 사건과 혐오 발언, 음모론, 조롱 문화, 그리고 각종 정치 콘텐츠에 실시간으로 노출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미 정치적 언어와 태도가 일상화되었고, 학생들은 이 세계 안에서 사회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를 비판적으로 안내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야 할 교사는 침묵을 강요받는다. 학생이 정치 이야기를 하면 교사는 대답을 피하고, 논쟁을 피해 수업을 종료한다. 교육이 삶의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정치기본권’을 말해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학생들은 정치적 판단력을 배워야 할 존재이며, 그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정치편향 우려의 과장과 교사의 전문성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면 ‘편향 교육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주장이다. 교사에게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특정 종교를 학생에게 강요하지 않듯, 정치기본권이 있다고 해서 특정 정당을 주입하는 것은 애초에 허용되지 않는다. 이미 교육기본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 윤리강령, 교원 행동강령 등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편향 교육 금지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징계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권리 보장’과 ‘권한 남용’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편향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사의 공적 책임성과 전문성을 불신하고, 정당한 교육 활동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독일, 핀란드, 캐나다 등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교사의 시민권을 제약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쟁적 주제를 공론장에서 교육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주입 금지, 논쟁적 접근, 판단 능력 강화”라는 원칙 아래, 교사가 공정하고 균형 있게 정치적 사안을 다룰 수 있도록 규정한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사익이 아니라, 교육의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토대를 지키기 위한 공적 권리다.


정치교육 부재가 만든 ‘정치 콘텐츠의 바다’

우리는 정치교육을 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교실이 정치에 대해 침묵하는 사이, 학생들은 이미 온라인에서 자극적이고 단정적인 정치 콘텐츠에 휩쓸리고 있다. 짧고 강한 메시지,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 음모론적 해석, 혐오와 냉소의 화법이 정치적 태도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을 안내할 교육이 없다는 것이다. 교사는 이 세계에 개입할 권한도, 자율성도, 안전망도 없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극단적 주장에 쉽게 흔들리고, 사실과 의견의 경계를 혼동하며, 정치 혐오와 냉소에 무감각해진다. 정작 필요한 ‘비판적 사고’와 ‘정보 판별 능력’, ‘다른 의견과의 토론 경험’은 제대로 길러지지 못한다. 정치적 중립을 빌미로 정치적 현실을 외면하면, 학생은 사회를 해석할 언어 없이 자극적 콘텐츠에만 노출된다. 정치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방임이다. 교사가 침묵하는 그 자리를 누군가의 영상과 알고리즘이 대신 채우고 있다.


침묵을 강요받는 교실과 민주주의의 위축

최근 여러 시·도교육청과 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도, 교사들은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부재한 교육”으로 민주시민교육을 꼽는다. 교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정치적 발언을 하면 민원이 걱정된다”, “토론 수업을 시도하고 싶지만 보호 장치가 없다”, “학생이 먼저 정치 이야기를 꺼내도 반응하기 어렵다.” 교사가 사회를 말할 수 없는 교실, 학생이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할 수 없는 수업. 이 어색하고 위험한 풍경 속에서 민주주의는 조용히 떠나간다.

정치기본권이 없는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정치기본권 보장은 교사가 자기 신념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교육적으로 다루기 위한 최소한의 권한이다. 지금 교사는 말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러나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누구보다도 깊이 고민하는 이들이 바로 교사다. 그들이 말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정치다.


정치기본권 보장이 열어주는 ‘논쟁하는 교실’

논쟁을 금기시하는 교실은 결국 질문하지 않는 학생을 길러낸다. 민주주의는 논쟁을 통해 자란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세계관이 부딪치고, 그 안에서 타협과 공존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보이텔스바흐 조약은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사회에서 논쟁이 되는 사안은 교실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야 하며, 특정 입장 주입은 금지되며, 학생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원칙을 실천할 수 있는 교사는 시민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가진 이들이다.

정치기본권이 보장되면 교사는 단지 정치 이야기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고, 학생의 생각을 정교화하며, 사회적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석하고, 혐오와 편향을 교정하고, 공공성과 공동체의 가치를 토론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민주시민교육, 노동인권교육, 학생자치는 정치성을 제거한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논쟁하지 않는 교실’은 결국 아무도 성장하지 않는 교실이다.


교사의 시민권 회복은 학생의 미래권 회복이다

정치기본권이 보장된 교사는 편향된 교사가 아니다. 오히려 침묵하지 않는 교사, 현실을 교육적으로 해석하는 교사, 학생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교사다. 교사가 시민으로서 말할 수 있어야, 학생도 시민으로 자랄 수 있다. 교사의 시민권이 사라지면, 교육의 공공성도 함께 약화된다. 교육정책이 교사와 학생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교사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다면, 이는 이미 민주주의의 위기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학생들이 살아갈 사회를 교사가 말할 수 없다면, 교육은 과연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가? 교사의 정치기본권은 특권이 아니라, 교육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민주주의는 투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자라난다. 그리고 그 교실은 교사가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의 첫 공간이 된다.


2025. 11. 18.(화)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유튜브) 별의별 교육연구소

https://www.youtube.com/@star-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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