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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시대, 헌법을 다시 교실에 부르자

일회성 행사가 아닌 ‘살아있는 헌법교육’이 필요

위기는 지나갔지만, 민주주의는 여전히 아프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지나갔다. 국회와 시민의 저항으로 헌정 질서는 형식적으로 회복되었고, 이제 정국은 “일상”을 되찾은 듯 보인다. 그러나 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분열과 혐오, 불신과 냉소가 일상 언어처럼 떠다닌다. 위기는 끝났지만, 민주주의의 몸과 마음은 아직 회복되지 못한 셈이다.

바로 이 시점에 교육부 장관이 일선 학교를 찾아 헌법과 기본권 수업을 참관하고, 민주시민교육을 전담할 조직을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힌 것은 상징적이다. 최교진 장관은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헌법과 기본권을 주제로 한 사회 수업을 지켜본 뒤,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현장 의견을 청취했고, 교육부 내 민주시민교육팀을 전담 부서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굳이 ‘헌법’과 ‘민주시민’을 다시 호명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헌법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실제 삶의 영역에서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계엄 사태 같은 극단적 위기 상황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혐오 발언, 왜곡된 정보의 유통, 정치적 양극화가 이미 민주주의의 신뢰 기반을 갉아먹고 있다. 이 틈을 메우는 일, 그 첫걸음은 교실에서 시작되는 헌법교육이어야 한다.


헌법교육, ‘계기 행사’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뼈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 교육법과 헌법은 오래 전부터 “민주시민의 육성”을 교육의 핵심 목표로 규정해왔다. 그러나 현실의 교실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입시와 성적 경쟁의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여러 연구는 민주시민교육이 여전히 단발성 캠페인, ‘계기교육’ 위주의 행사로 소비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최근 헌법학계에서는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며, 헌법을 단순한 법 조문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간의 ‘약속’이자 ‘공동의 계약’으로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헌법적 시민성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뿐 아니라, 공공복리와 공동체 책임, 타인의 권리를 함께 고려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헌법교육은 더 이상 특별한 날에만 등장하는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도덕·인성·자치·민주시민교육을 관통하는 “뼈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 사회 교과의 일부 단원에 제한된 지식 교육을 넘어, 국어 시간의 토론 주제, 과학·기술 시간의 윤리적 쟁점, 학교 자치회의 의사결정 구조까지, 학교 생활 전반 속에서 헌법적 가치와 절차를 녹여내는 재구성이 필요하다.


‘법 조문 외우기’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연습하는 교실로

지금까지의 헌법교육은 종종 “조문 암기”와 “시험용 지식”으로 축소돼 왔다. 어떤 조항이 몇 조 몇 호인지 맞히는 능력만으로는 갈등과 혐오가 넘치는 현실을 버텨낼 시민을 길러낼 수 없다.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시민교육을 단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 회복과 포용적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경로로 규정하며, 민주적 참여 경험과 토론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의 헌법교육도 이제 방향을 바꿔야 한다. 법과 제도에 대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 사회 현안에 대한 사실 조사,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 갈등 분석, 쟁점 토론, 모의국회·모의선거, 지역사회 참여 프로젝트 등 “민주주의를 연습하는 수업”이 필요하다. 단순히 “기본권의 종류”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폭력·디지털 성범죄·환경 문제처럼 학생들이 실제로 부딪히는 문제를 헌법의 언어로 해석하고, 각자의 입장을 세우고, 대안을 제안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

이런 수업이 가능하려면, 외부 강사 초청 프로그램만으로는 부족하다. 일회성 특강은 전환점을 제공할 수 있지만, 학생의 일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교실에서 매일 꾸준히 만나는 사람은 결국 담임교사와 교과교사다. 헌법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의 중심에 현직 교사가 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사에게 헌법교육을 맡기려면, 교사도 ‘헌법적 시민’으로 세워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을 이야기할 때마다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따라붙는다. 학교가 특정 정당이나 이념의 선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정치적 중립성이 “침묵의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은 모든 시민에게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교사와 학생 역시 그 권리의 주체다.

최근 연구들은 헌법에 기초한 민주시민교육이 오히려 사회적 합의의 최소 기준을 분명히 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의견과 가치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고 분석한다. 헌법은 ‘다름’을 지우는 도구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되 폭력과 혐오, 반헌법적 행위를 견제하는 최소한의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가 헌법적 시민으로 설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도, 학생과 함께 사회 현안을 토론하고, 헌법의 잣대로 비판하고,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동시에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 문제도 “민주시민교육의 연장선”에서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주체로서 교사의 지위와 역할을 인정하지 않은 채, 교실에서 헌법의 소중함만 가르치라는 요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책·자료·학교 실천이 함께 가는 ‘삼각 편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 학교 현장의 헌법교육은 여러 모로 부실했다. 교육과정 속 헌법 관련 내용은 파편적이고, 학생 눈높이에 맞는 교재와 활동 자료도 충분하지 않다. 법무부,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 여러 기관이 교육자료를 제작하고 있지만, 학교 수업에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된 자료는 많지 않다. 현장 교사들이 “자료를 찾는 데만 한참 걸린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이번에 교육부가 민주시민교육 전담 부서 확대를 예고한 만큼, 최소한 세 가지 방향은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 초·중·고 교육과정 속 헌법교육 내용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단원 한 귀퉁이에 ‘헌법 조항 정리’로 들어가는 수준을 넘어, 도덕·사회·역사·통합사회·통합과학, 진로·자치활동 전반에 헌법 가치를 통합 설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현직 교사 중심의 교수·학습 자료를 대대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외부 기관이 만든 홍보용 콘텐츠가 아니라, 교사가 직접 설계하고 검증한 수업안, 활동지, 프로젝트 사례, 모의 선거·모의 재판·시민참여 수업 모델이 전국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 ‘자료 보급’이 아니라, 교사 연수와 전문적 학습공동체, 연구학교 운영과 연동된 종합 정책이어야 한다.

셋째, 학교 자치·학생 동아리·지역사회 참여와 결합한 체험 중심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학생회 예산 편성, 학급 규칙 제·개정, 학생 참여 예산제, 지역 의회 방문, 시민단체와의 협업 프로젝트 등은 모두 헌법적 가치를 몸으로 익히는 민주주의 연습장이 될 수 있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헌법은 교과서 속 단어가 아닌 “나의 언어”가 된다.


헌법을 지키는 일, 결국 사람을 기르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혼란과 분열은 제도만 손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국회의 법 개정, 행정부의 조직 개편도 필요하지만, 결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것은 헌법을 자기 언어로 말할 줄 아는 시민들이다. OECD는 미래 교육의 핵심으로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태도와 가치, 시민성을 제시하고, 신뢰 회복과 포용 사회를 위해 학교에서의 시민교육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학생·교사·학부모 모두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의 주체이자, 동시에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책임 있는 시민이다. 학교 운영에 참여하고, 학교 규칙을 함께 만들고, 사회 현안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면서도 “선 넘지 않는” 토론 문화를 익히는 과정 자체가 헌법교육이다. 그런 점에서, 헌법교육은 어느 한 교과목의 일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 전체의 과제다.

우리는 이미 한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다시 같은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학교를 “논쟁을 피하는 공간”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가지고 현실을 치열하게 토론하는 공간으로 바꾸는 일이다. 헌법교육은 그 시작점이다. 헌법을 다시 교실로 불러들이는 일, 그것이야말로 12·3 이후 우리가 민주주의에 보내야 할 가장 진지한 대답이다.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유튜브) 별의별 교육연구소

https://www.youtube.com/@star-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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