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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체육시설 개방, 교육과 안전이 먼저다

공공성 확대와 학생 안전 사이,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설계다

개방의 방향은 맞다, 그러나 절차와 안전이 빠져 있다

학교 시설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인구 구조 변화, 생활체육 수요 증가, 지역 공동체 회복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 학교가 체육공간·문화공간·복합커뮤니티 공간으로 확장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영국·독일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도 학교의 체육관과 운동장을 지역 주민에게 단계적으로 개방하며, 학교를 지역의 공공 자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사례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었다. 개방보다 먼저, 촘촘한 안전과 관리 체계가 마련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인천에서 추진되는 학교 체육시설 전면 개방은 방향성은 옳으나, 절차와 안전, 책임 구조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일괄 공지, 즉각 시행’으로 이어지며 현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학교는 단순한 공공시설이 아니라, 아직 교실에 남아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는 공간이며, 그 아이들의 안전과 학습권이 절대적인 1순위다. 교육적 기능을 가진 공간을 외부에 개방하려면, 단순한 의지나 담대한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개방으로 인한 위험과 부담을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부터 설계되어야 한다.


현장의 우려는? 학생 안전, 시설 관리, 분쟁, 법적 책임

교직원과 학교 현장이 반대하는 이유는 단순한 거부감이 아니다.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학생 안전과 학습권 위협이다. 현재 많은 학교는 늘봄학교, 운동부, 방과후학교 등으로 저녁 늦게까지 학생이 남아 있다. 이 시간대에 외부인이 학교 안팎을 드나든다면 학생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출입 통제, 신분 확인, CCTV 운영, 동선 분리 등은 단순히 안내문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둘째, 관리 인력·예산의 부재다. 학교는 이미 부족한 예산 속에서 안전관리 인력조차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체육시설 개방은 청소·시설 점검·출입 관리 등 추가 업무를 발생시키며, 이는 고스란히 학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강당 바닥 파손, 농구대·철봉·축구골대 등의 노후화, 도난·시설 훼손 등도 지속적인 비용을 요구한다.

셋째, 개방 영역이 통제 불가능하게 확대될 가능성이다. 운동장만 쓰겠다는 예약으로 시작되지만, 실제로는 화장실, 복도, 물품 보관공간 등 추가 사용 요구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는 외국 사례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지점이었다.

넷째, 법적 책임 전가 문제다. 현재 체육시설 개방 중 사고가 발생하면 학교장에게 법적 책임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교장에게는 관리·감독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 사례들은 지자체 또는 별도 운영기구가 책임을 분담하고, 학교장은 면책 규정을 통해 보호받는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법적 장치가 부재하다.

다섯째, 체육단체·동호인 단체 간 분쟁 위험이다. 특히 한정된 시설을 놓고 이용 우선순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그 조정 역시 학교가 떠안아야 한다. 예약 시스템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 민원과 분쟁은 학교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여섯째, 과거의 실패 경험이다. 학교 담장 없애기 사업 당시에도 공공 공간으로서 학교를 지역과 공유하자는 취지는 있었다. 그러나 담장이 사라지자 무단 침입, 학생 안전사고, 야간 취약 시간대의 비행청소년 문제, 학교 경계 관리의 어려움 등이 연이어 발생했고, 결국 많은 학교가 사업을 지속하지 못했다.


해외 사례, ‘개방, 안전, 책임 분담’의 삼각구조

해외의 학교시설 개방은 단순 개방이 아니라, 먼저 운영 모델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영국의 학교 시설 개방(Open School Facilities) 프로그램은 학교·지자체·지역단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며, 학교가 모든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부담은 나누고, 안전은 공적으로 관리한다는 원칙이다.

독일 역시 학교를 교육·문화·복지 기능을 결합한 커뮤니티 허브로 보고, 전문 관리 조직을 별도로 둔다. 학교장은 운영의 최종 책임자가 아니라 협력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한다. 사고 발생 시 법적 책임은 지자체나 운영기구가 부담하며, 학교는 안전관리의 일부만 담당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학교시설 개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열기’가 아니라 ‘설계’임을 보여준다. 개방, 안전, 책임 분담이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단 한 곳도 지속된 사례가 없다. 해외 사례의 핵심은 학교가 모든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데 있다.


필요한 것은 개방이 아니라 ‘모델 설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구조다. 학교시설 개방은 교육 공간의 본질을 지키면서 지역사회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 운영 모델을 만드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학교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청이 안전관리 인력과 예산을 책임 있게 지원해야 한다. 출입 통제, 신분 확인, CCTV 확충 등 필수적인 안전 요소는 학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확보할 수 없다.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명확히 나누고, 학교장에게 과도한 법적 부담이 가지 않도록 면책 규정도 마련돼야 한다.

학교의 자율권 역시 필수적이다. 학교별 상황은 모두 다르므로, 일률적 기준 대신 학교가 스스로 개방 범위와 시간, 관리 방식을 조정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예약 시스템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분쟁과 민원에 대비해, 사전 가이드라인과 조정 체계도 반드시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학교를 여는 것’이 아니라 ‘안심하고 열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설계가 탄탄할 때 개방은 교육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학교를 열려면, 학교를 먼저 지켜야 한다

학교는 공공자산이지만,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학생의 교육과 안전이다. 지역사회와 학교의 상생은 매우 중요한 가치지만, 학교의 문을 열기 전에 필요한 것은 안심할 수 있는 안전장치, 예산과 인력 지원, 책임 분담 체계, 운영 모델의 정교한 설계다.

'학교 담장 없애기' 사업의 실패에서 배웠듯, “의도는 좋았으나 안전이 준비되지 않은 개방”은 유지될 수 없다. 학교 체육시설 개방이 진정한 공공성 확대가 되려면, 먼저 학교 구성원을 설득하고, 학교를 둘러싼 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학교를 열고자 한다면, 학교가 흔들리지 않도록 먼저 지켜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역사회 상생이고, 교육공간의 본질을 지키는 길이다.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유튜브) 별의별 교육연구소

https://www.youtube.com/@star-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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