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의심’ 제3자 녹음법, 불신사회 키운다

증거는 남기고 신뢰는 지우는 법, 약자를 돕는 손부터 묶어 버린다

‘아동학대 예방의 날’의 기자회견, 그러나 들리는 건 불신의 사회

아동학대 예방의 날, 국회 소통관에서는 아동, 노인, 중증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네 개의 법안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발달장애 당사자, 장애인 단체, 부모 단체가 함께 나와 자신들의 경험을 증언했고, “학대를 입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 필요하다”며 제3자의 비밀녹음을 허용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 목소리에는 분명 진짜 고통과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다른 질문도 떠올랐다.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제도는 정말 약자를 지키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를 서로의 말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만드는 것인가. “학대에 취약한 사람을 보호하자”는 동의하기 쉬운 명분 뒤에는, 우리 사회의 일상 공간을 통째로 감시 가능 영역으로 바꾸는 법적 전환이 숨어 있다. 이 부분을 냉정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약자를 지키는 법인가, 모두를 서로 녹음하는 법인가

개정안의 골자는 이렇다. 아동학대, 노인학대, 장애인학대가 실행 중이거나 실행되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가족 등 제3자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고, 그 자료를 형사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의 예외 규정을 만들어, 지금까지는 불법 도청으로 취급되던 행위를 “학대 방지”라는 이름으로 합법화하겠다는 발상이다.

문제는 이 짧은 문장 안에 들어 있는 여러 모호함이다. 무엇이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인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한 번 녹음기가 가동되면 그 공간에서 오가는 모든 말이 함께 포착되는데, 그 안에 포함된 제3자의 사생활과 인권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의심이 들면 녹음해도 된다”는 신호가 사회 전반에 퍼졌을 때,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정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이 법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심”이라는 감정이 곧바로 “몰래녹음”이라는 행위로 이어지는 통로를 여는 법이다. 약자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우리 모두를 서로를 경계하는 존재로 만들 위험을 품고 있다.


가장 먼저 다칠 사람들: 교사·의료인·복지사·돌봄 인력

이 법의 영향은 특히 교육, 의료, 복지 현장에서 먼저 드러날 것이다. 학교의 교사, 유치원 교사와 보육교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사와 치료사,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약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동시에, 분쟁이 생기면 가장 먼저 의심과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운 사람들이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는 여러 형태의 불법 녹음이 존재한다. 시계 모양의 녹음기, 스마트워치, 가방 안에 숨겨둔 녹음 장치로 교사의 수업과 생활지도가 몰래 녹음되고 저장되는 현실은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 법까지 “의심이 있으면 제3자의 비밀녹음이 가능하다”는 근거를 제공하면, 교실·병실·시설은 언제든지 녹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 결과, 아이를 가르치고, 환자를 돌보고,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람들은 늘 ‘녹음의 그림자’ 속에서 일하게 된다. 갈등 상황에서 상대를 지지하고 조정해야 할 순간에도, “이 말이, 이 표정이, 지금 어딘가에서 녹음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개입할 것이다. 그러면 가장 먼저 위축되는 것은 과감한 개입과 따뜻한 돌봄, 때로는 필요하지만 단호한 훈육과 경계 설정이다.

결국 약자를 지켜야 할 현장의 사람들이 방어적으로 변하면, 그 피해는 다시 약자에게 돌아간다. 누구도 책임 있게 손을 내밀려 하지 않는 공간에서, 약자는 더 고립되고 더 위험해진다.


모호한 ‘정서적 학대’와 기분 상해 소송의 시대

아동학대 유형 중에서도 논쟁이 큰 영역이 ‘정서적 학대’다. 분명 언어폭력과 모욕, 지속적인 무시는 아이의 마음을 깊이 파괴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정당한 생활지도이고, 어디부터가 정서학대인지, 그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현장에서는 이미 “아이 마음이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아동학대 신고가 이루어지고, 상당수가 수사 후 무혐의로 종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교사나 돌봄 인력은 고소·수사·징계 가능성을 한 몸에 떠안는다. 사실관계가 정리되었을 때에는 이미 명예와 관계가 크게 훼손된 뒤인 경우가 많다.

이때 제3자의 비밀녹음이 합법화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맥락이 잘린 채 전달되는 한 문장, 격한 상황에서 나온 단편적인 표현이 곧바로 “학대의 증거”로 제출될 수 있다. 대화 전체의 흐름, 그 이전과 이후의 관계, 아이와 교사가 쌓아온 신뢰는 사라지고, 오직 잘려 나온 음성 파일만이 재단의 기준이 된다.

‘정서적 학대’의 모호함과 ‘몰래 녹음’의 파편성이 결합되면, 법은 약자를 위한 칼이 아니라 ‘기분 상해죄’를 입증하는 도구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정당한 지도와 교육적 개입이 언제든지 소송거리로 둔갑하는 환경에서, 누가 담대하게 아이와 눈을 맞추고 진짜 교육을 해낼 수 있을까.


UN 협약이 말하는 것은 ‘감시’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법안을 발의한 쪽은 UN 아동권리협약과 장애인권리협약을 근거로 든다.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장애인에 대한 폭력과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을 강조하며, 제3자 비밀녹음 허용이 그 전략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UN이 각국에 요구해 온 방향은 조금 다르다. 협약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개인에게 더 많은 감시 도구를 쥐여주라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고 독립적인 조사·감시 기구, 전문 인력을 갖춘 보호 체계, 투명한 신고·조사·구제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가정과 시설, 학교, 병원 어디에서든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 당사자와 가족이 그 시스템을 믿고 찾을 수 있게 하라는 요구다.

이번 4법은 이 책임을 거꾸로 뒤집는다.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다하기 전에, 가족에게 “의심이 들면 당신이 직접 녹음기를 넣어 증거를 확보하라”고 말한다. 이런 방식은 약자를 돕기 위해 국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간 감시와 갈등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는 셈이다.

인권을 강화한다는 이름으로 감시를 제도화할 때, 그 감시의 대상은 결국 힘이 약한 사람들이다. 이 점을 간과한 채, UN 협약의 이름만을 앞세우는 입법은 신중히 재고해야 한다.


약자를 진짜 지키고 싶다면, 녹음 허용 법이 아닌 다른 해법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약자를 지키는 법제도는 필요하다.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다.

무엇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가정 내 학대다. 아동학대, 노인학대, 장애인학대의 상당수가 가족에 의해, 가정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진다. 이 영역에서는 제3자의 녹음기보다, 이웃과 학교, 의료·복지기관이 이상 신호를 조기에 발견하고 신고할 수 있는 안전망이 중요하다. 신고 후에는 전문성을 갖춘 공공기관이 신속하게 개입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인력과 시설이 충분해야 한다.

둘째, 신고 이후 조사와 판단 시스템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지금처럼 신고는 쉽게 할 수 있지만, 그 이후 과정이 불투명하고 느리면, 피해자는 보호받지 못하고, 억울한 피신고자는 오랜 시간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학대 판단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조사 과정에서 당사자와 가족, 교사, 의료인, 복지인의 목소리가 균형 있게 반영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우선이다.

셋째, 허위·악의적 신고에 대한 책임 규정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무고와 악성 민원이 아무런 제재 없이 반복되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안심하고 아이를 가르치고 돌볼 수 없다. 정당한 문제 제기는 보호하되, 명백한 악용은 분명하게 책임을 묻는 기준이 필요하다.

넷째, 학교와 병원, 복지시설과 같은 공적 공간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이미 이들 기관은 각종 인권 규정과 지도·감독 체계, CCTV 등 여러 장치를 통해 일정 수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이 영역에까지 제3자 비밀녹음을 일반적으로 허용하는 것은, 약자를 돌보는 전문 활동 자체를 위축시키는 과도한 입법이 될 수 있다. 오히려 교육·복지·의료 현장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회복을 돕는 독립적인 분쟁조정기구를 만드는 편이 훨씬 생산적인 대안일 것이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약자를 돕는 손을 잘라서는 안 된다

아동학대, 노인학대, 장애인학대를 줄여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스스로 말하기 어렵고, 방어하기 힘든 이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당위 역시 분명하다. 문제는 방법이다.

제3자의 비밀녹음을 넓게 허용하는 이번 4법은, 약자를 지키는 가장 손쉬운 해법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법의 그림자를 따라가다 보면, 교실·병원·복지시설·가정이 모두 상시 감시 공간이 되는 사회에 닿게 된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언제든 녹음과 소송을 떠올리는 사회에서, 진짜 돌봄과 교육, 신뢰와 회복이 가능할지 묻게 된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약자를 돕는 손을 먼저 자르는 입법은 피해야 한다. 아이와 노인, 장애인을 학대로부터 지키는 길은 녹음기를 더 많이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신고·조사·보호·회복에 이르는 공적 시스템을 촘촘히 세우는 데 있다. 교실과 병원, 복지시설이 감시의 공간이 아니라, 다시 배움과 회복, 신뢰의 공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인권입법의 방향이어야 한다.

그 점에서 이번 4법은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법이다. 이 법이 통과되기 전에, 우리는 최소한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 법은 정말 약자를 지키는가, 아니면 약자를 돕는 사람들을 먼저 무너뜨리는가.”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상인천초등학교 교감)


(유튜브) 별의별 교육연구소
https://www.youtube.com/@star-edu


https://youtu.be/5AUuIqc_mRs?si=dlzufONpI_d3DX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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