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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구리 Jun 23. 2020

사모곡

언젠가는 떠나야 할 사람들이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것

오늘은 엄마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드리는 날입니다.


"엄마아~" "엄마!" "어~ㅁ마" 어떻게 불러도 이젠 대답이 없는 엄마...

평생을 "절약"과 "사랑" 그리고 "자존심"으로 살다가신 엄마. 오늘이 가고 나면 이제 이승에선 다시 볼 수 없게 됩니다.

 

어느 늦가을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 버리신 아버님 대신 함께 살면서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려고 애썼지만 아침에 생각했다가도 밖에 나가서는 잊어버리고 못 해 드린 일들이  이제와서는 회한과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여러분들!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게 있으면 메모해두었다가 하나하나 해드리세요.

엄마 떠나고 나눠드린 책 "40대의 아름다운 이야기"에도 나와있지만 못 해 드린 일들만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도 내가 해드린 것은 위안으로 남구요. 아~ 전쟁기념관과 미사리, 스위스는 결국 못 보내드렸었죠.

여든이 넘은 연세에 미국을 몇 번 다녀오고 호주, 대만, 일본 등을 여행한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자식들 덕에 좋은 구경 많이 했다고 생전에 말씀하셨지만 못 보내드린 스위스가 자꾸만 눈에 밟히네요.

전쟁기념관에 갔었는데 그날이 마침 휴관이라 용산가족공원 벤치에 앉아있다 왔었죠.


빵집에 들를 때면 늘 찹쌀떡을 샀고 일식집에서는 생선초밥을 샀었죠.

그러나, 그 모든 행위들이 제겐 무의미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한동안은 아니 어쩌면 영원히 찹쌀떡과 생선초밥은 안 먹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순두부를 좋아하던 사람이 떠났을 때 한참 동안 순두부를 끊었던 것처럼...


오늘 오후 두시면 엄마를 이승에서 떠나보내는 의식이 시작됩니다.

종교가 다른 분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사후 49일간은 가신 분의 영가가 구천을 떠돈다고 해요.

너무 슬피 울면 저승으로 못 떠난다고 즐겁게(?) 평소처럼 생활하라고 하죠, 그래야 안심하고 떠난다고요.

그렇다고 50일째부터 맘 놓고 울란 얘긴 아니겠지만요.


아버지와 처음 이별할 때는 한참이 지난 후 나와 우리 가족이 아버지 계신 곳으로 갔을 때 아버지가 먼저 자리를 닦고 계시다가 우리를 반가이 맞이해 주실 거다, 아버진 우리보다 좀 일찍 오셨으니까 좀 먼저 가신 거다.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불교의 윤회설대로 어딘가 태어났다면 우린 다신 만날 수 없는 거잖아요?

아프리카 같은 미개한 나라 말고 북한 같은 빨갱이 나라 말고 대한민국이나 미국, 일본 같은 나라에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올 들어 부쩍 말씀하신 건 이렇게 떠나시려고 그런 건가요?

평소 소원하시던 대로 주사 바늘 하나 꽂지 않고 주무시던 대로 가셨기에 참 다행한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남은 자식들에겐 그게 그렇지만도 않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고 준비하라고 알려주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늘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아침에 어쩌다 내가 먼저 일어나는 날이면 엄마 방 문을 열며 "오늘이 아니기를..." 얼마나 빌었었는데 그렇게 빨리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되리라곤 정말 몰랐습니다.


겨울에 행사가 많은 우리 집의 겨울 행사, 엄마 없이 치르며 또 우린 얼마나 많은 슬픔과 만나야 할까요?

주인공 없는 엄마의 2002년 생신, 빨간 카네이션을 꽂을 데 없어 2003년 어머니날(빨갱이 냄새가 난다고 어버이날을 엄만 꼭 어머니날이라고 했었지?)엔 또 얼마나 헤매야 할까요?

어느 해 어머니날 꽃바구니를 선물했을 때 비싼 꽃을 샀다고 나무라시는 엄마에게 그 뒤로는 바구니 대신 가슴에 꽂는 꽃만을 드렸었습니다. 꽃이 싫어서가 아니라 시들면 없어져 버릴 것이 아까워서 그랬던 것을 엄마가 안 계시나서야 깨닫게 된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생각 생각 이는 생각 모두 안타까움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튼 엄마를 아버지 계신 옆에 모셔다 드리고 왔으니 엄마와 아버지가 만나 생전에 그랬듯이 행복하게 남은 영겁의 세월들을 해로하시리라고 믿어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저 살아계실 때 못 해 드린 못난 마음을 자책할 뿐...

아버지 가신 후 엄마와는 비디오도 많이 찍고 해서 엄마의 활동사진은 많은데 아버지 것은 없어서 아버지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했었어요.

근데 얼마 전 부모님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아버지 현직 계실 때의 육성 테이프를 발견하였답니다.

몇 개가 있었는데 아버지와 엄마의 노래도 있었고요,

평소 살면서 나누던 대화가 마치 살아계신 듯한 목소리로 옆에서 들려왔습니다.

여러분들, 기록하세요. 부모님의 음성, 모습 모두...

언젠가는 떠나야 할 사람들의 모습과 음성이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앞으로 살면서 힘든 일, 슬픈 일이 있을 땐 언제나 그분들의 목소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엄마 아빠 사랑해."라는 말 참 잘하죠.

두 분께 사랑한다는 말, 어버이날 보내는 편지 외에 한 번도 못 해 드렸습니다. 엄마는 지금 어디 계실까요?

이 글을 쓰며 울고 있는 내 옆에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고 계실까요?

"엄마! 아버지! 정말정말 사랑합니다."

"저와 만나는 날까지 행복하게 계세요,

그리고 목숨보다 더 아꼈던 자랑스러운 두 분의 아들 딸들(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두 분 좋아하시는 일등으로 살아갈 수 있게끔 잘 보살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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