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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rSun Dec 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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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성경을 읽다 눈길이 머문 구절이 있다. 


출애굽기 23장 3절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성경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는 과정이다. 

(出)애굽이란 애굽 국가로부터 나간다는 뜻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간의 애굽 생활을 정리하고 일종의 독립을 하여 고향인 가나안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430년 전 가나안의 어린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우여곡절 끝에 애굽 총리가 된다. 애굽의 풍년과 흉년을 예측한 요셉 총리는 흉년 대비를 하면서 탁월한 정치가의 면모를 보인다. 흉년으로 가나안에 살던 요셉의 형제들이 식량을 구하러 애굽을 방문하면서 요셉과 재회하게 되었다. 요셉이 애굽에 가족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였고,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번성하게 된다. 70명이 애굽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출애굽 할 때는 장정이 60만 명이었다. 반면, 시작은 총리였던 요셉이었지만, 출애굽 당시는 애굽의 노예로 학대받던 민족이었다는 점이다. 


노예는 주인의 자산이다. 

애굽의 자산인 노예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열 가지 재앙을 겪은 후에야 빨리 너희 이스라엘 민족은 썩 나가라는 바로 왕의 명령이 떨어졌다. 바로 왕은 그 명령을 다시 회수하고자 군대를 보냈지만 마주한 것은 홍해의 심판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렇게 어렵사리 출애굽하고 바로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했다. 광야에서 40년 세월을 보낸다. 몇 세대를 노예로 산 이스라엘 민족이 허허벌판 광야를 밟았을 때는 제대로 된 공동체의 모습을 갖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율법이다.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구체적인 시행 세칙을 주셔서 상호 존중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 중 하나가 인트로에 쓴 말씀이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처음에 이 말씀을 접했을 때 물음표가 생겼다. 

부하고 권력이 있는 자를 두둔하지 말라는 것이 좀 더 친숙하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하나님은 왜 하필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하셨을까. 내가 생각한 결론이 그분의 뜻에 합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옳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둔했다면 사안의 시비보다는 당사자의 상황에 집중한 것이다. 사안에 대해 공정한 자세를 유지하기보다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보고 판단한 것이다. 가난한 자인지 알아봤다면 부한 자, 권력자 또한 알아볼 것이다. 가난한 자라고 동정할 수 있다면 가난한 자이기에 멸시할 수도 있다. 부한 자, 권력자이기에 아첨할 수도 있지만 증오나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사안에 대해 공정함을 갖기보다 누구냐에 따라 기준을 달리 잡는다. 거기에 더해, 나 스스로를 가난한 자를 도운 선한 자로 여기고 공정함을 더욱더 잃을 태세일 테다.



 

작년에 한 선배님이 자신이 거래하는 증권사와 직원을 소개해주었다. 

선배님은 거래 상품을 이야기하던 중 자산이 노출되었다. 정작 놀란 것은 직원이었다. 직원은 문서를 가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선배님이 괜찮다며 이런 거에 휘둘릴 이가 아니라고 말씀했다. 사실 그렇다. 선배님이 놀리듯 0이 많다고 말했지만 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볼 수도 있었지만 굳이 보려 하지도 않았다. 선배님은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꽤 큰 자산가가 되었고 이야기가 오가던 금액도 꽤 컸다. 그래도 나의 동공이 흔들리지 않음을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그건 니 거, 내 거 아님, 그러니까 관심 없음"이란 로직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내 것이 아닌 것에는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다. 

그러나 내 것이라는 프레임을 갖는다면 공정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면 상대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을까. 가난한 자, 부한 자, 권력자를 편벽하게 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 내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가난한 자의 송사일지라도 편벽되이 두둔하지 않도록 오늘 말씀을 마음속에 새긴다. 새벽 성경을 읽다 특별한 성경구절에 젖어든 상념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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