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발생하거나 경험한 사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얼마 전에 창고를 정리하다가 2016년에 멜버른에서 썼던 낡은 일기장을 우연히 열어보았어요. 삶에 대한 울컥함, 관계에 대한 딸꾹질과 선명한 감정들이 노트 몇 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8년이 지난 지금의 제가 기억하는 것(머릿속에 저장되어있던 의미)과 완전히 낯선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나 하고 붙들고 늘어지다가 어쩌면 현재의 나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순간들도 진화되고 변화된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현재가 과거를 만든다”
어제가 모여서 오늘을 만들고 오늘이 내일을 만든다 라는 말은 지겹도록 듣는 말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현재가 과거를 만든다고 한다면 어떤가요?
저는 학창 시절,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어요. 따돌림의 그림자는 20대 중반까지 따라다녔습니다. 돌아보면 그때의 저는 무의식 속에서 스스로를 "따돌림을 당한 아이"로 정체성을 삼아 마음이 공포로 가득했어요. 학년이 올라가 새로운 반친구들이 있어도 점점 더 친구들과 친해지기 어려웠고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수치심과 열등감에 휩싸인 채, 가족과도 감정을 나누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따돌림은 끝이 났지만, 수치심으로 스스로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고 소외하는 것은 계속되었어요.
고통스러운 시기였지만 한편으로는 심리학과 처세술을 공부할 계기가 되었고, 사람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독립적인 성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코칭이나 상담이라는 것도 모르고 지금보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오랜 시간을 외롭게 보냈지만, 그 과정은 확실한 성장과 성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저는 그 시간들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024년의 제이드는 수치심을 확실히 지웠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기의 트라우마가 계기가 되어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더 헤아리고, 감정을 포용할 수 있는” 코치로서 도움이 되는 역량의 일부가 돼었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정체성의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폭력은 근절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 시간이 현재의 나를 괴롭히도록 두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따돌림을 받았고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라는 스토리와 “코치로서 사람의 마음을 포용하고 헤아리는 코치가 된 계기”이라는 스토리는 정확히 같은 시기를 돌아보고 부여한 다른 두 이야기 입니다.
과거가 절대적으로 지금을 만든다기보다, 사실 현재의 내 상황, 내 성숙도, 내 마음과 의지에 따라 과거의 의미와 경험의 이야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 의미입니다.
지금도 종종 울컥하거나 잠을 설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미래의 나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며 재구성하는 연습을 해봅니다. 조금 더 지혜롭고 성숙한 5년 후의 내가 지금의 고민을 보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떠올려보는 것이죠.
"그때(2024년)의 어려움과 불편함 덕분에 나는 더 강해졌다 (유연해졌다, 그릇이 커졌다. 사랑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결정능력이 올라갔다, 성숙해졌다, 독립성을 키웠다. 돈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건강을 돌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등등)"라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죠.
생각의 프레임과 의미를 전환하는 것은 나의 힘입니다.
우리에게 발생하거나 경험한 사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그 사건에 어떤 스토리를 입히느냐 입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의 일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와 동력을 제공하고 앞으로의 삶을 위한 재료로 활용하여 재구성해보는 것과 더 가깝습니다.
내 펜을 삶에게 넘겨주지 마세요. 내 이야기는 내가 직접 써 내려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과거의 모든 순간은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현재에 적용하며, 미래를 위해 어떻게 재구성할지에 대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현재에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의미와 슈퍼파워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Memory is not a record but an interpretation."
기억은 기록이 아니라 해석이다.
- 영화 메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