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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Jun 03. 2024

그냥 함께 머물러주기

지금 여기


의사인 엘리자베스는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일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당히 연로한 할머니와 딸의 진찰을 의뢰받았습니다. 90대 중반의 할머니는 아주 마른 체구에 전통적인 인디언 방식으로 머리를 땋았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보기에, 할머니는 한 번도 병원에 다닌 적이 없어 보였습니다. 때문에 여러 가지 심각한 질병 증세를 가지고 있었지요. 하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딸네 집에 머물면서 딸의 보살핌을 받았을 뿐입니다. 진료하는 동안 주로 딸이 말을  했고 할머니는 가만히 앉아 그녀를 바라만 보았습니다.


엘리자베스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격주로 모녀를 찾아 진료를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할머니의 여러 가지 증세에 대해 정확한 병명을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했습니다. 요도염에 대해서는 항생제를 투여하고 혈당치를 조절해 당뇨 증세를 완화시켰습니다. 또 저하된 심장기능을 강화하는 치료를 하고 제대로 기능을 못하던 간 기능도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녀는 많은 실험 결과를 정리했고 사회사업기관에 딸이 어머니를 돌보는 비용을 정부에서 보조받도록 해주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할머니는 9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무렵 할머니에 관한 진료 기록지는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정리를 하려고 진료 기록지를 보면서 엘리자베스는 여러 합병증 증세를 보이던 노인을 진료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치료한 자기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몇 달이 지났을 때, 그녀는 애리조나대학의 교수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 인디언의 전통 의학과 치료 방법을 저술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고대의 치료비법을 전수받은 인디언 여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며 그들 중 살아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데 최근에 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교수는 가족에게 전화를 했더니 엘리자베스를 만나보라고 해 이렇게 전화를 하게 됐다면 연유를 밝혔습니다. 가족들 말에 따르면 엘리자베스가 어머니를 잘 알며 필요한 질문에 대답을 해줄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인디언의 전통 치료 비법을 전수받은 여성 의료인은 엘리자베스가 치료하고 돌봐주던 바로 그 할머니였습니다. 그 교수를 만난 엘리자베스. 그녀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며  후회를 했습니다.

 

"저는 전혀 몰랐어요. 그 할머니가 인디언의 전통적인 치료 비법을 전수받은 분이었군요. 이제야 몇 가지 점들이 이해가 되네요."


엘리자베스는 할머니를 잊지 못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항상 가만히 앉아 내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어요. 제가 진료기록지를 정리하고 실험 데이터를 만드는 모습을 바라보던 눈빛이 생각나요. 그때 제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셨을지 궁금해요. 저는 바보스럽게도 수치와 검사 결과지에만 매달려 있었어요. 단 한 시간이라도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면 제가 의문을 지닌 것들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드렸을 텐데요. 고통과 상실, 병과 죽음과 같은 주제에 대해 그분이 어떤 견해를 지니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아니에요. 그냥 그 할머니가 저를 축복해 주시도록 머리를 숙여 청하겠어요."


인디언의 전통치료방법과 현대의 치료방식은 많이 다릅니다. 현대의 치료방식은 과학적 객관성을 전제로 실험하고 측정합니다. 그 데이터로 병의 진전과 치료를 진행합니다. 그에 반해 인디언의 치료방법은 같이 있어주는 방식, 즉 환자 옆에 그냥 머무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 방식으로 환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되니까요.


현대의학은 당장의 치료효과는 높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로 이어질지는 아직도 많은 의문을 남습니다. 《할아버지의 기도》를 저자이자 의사인 레이첼 나오미 레멘 역시 엘리자베스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현대의학의 치료방식은 “우리를 눈뜬장님으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해온 방식을 되돌아보며, 실험 데이터를 정리하고 거기에 매달리기보다는  오히려 대화를 나눔으로써 환자가 지닌 삶에 대한 지혜를 얻고 진정으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회를 날려 보내는 어리석음을 범했다고 고백합니다.


엘리자베스의 뒤늦은 후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환자는 로봇이 아닙니다. 따뜻한 피가 흐르는 존재입니다. 실험 데이터를 무시하지 않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여유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환자와 함께 하려는 마음, 그들의 필요를 섬세히 살피는 따뜻한 교류와 교감이 때론 더 값진 치료, 치유이기도 할 테니까요.


*숙고명상

과학적이고 합리적 이성과 태도는 우리가 당연히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다. 하지만 지나치게 맹신하면 오히려 잃는 것이 더 많다. 인간을  휴먼빙(human being)이라고 표현한다. 존재 자체(being)가 없다면 인간은 불완전하고 바로 서지 못한다. 환자든 그렇지 않든 같이 머무르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 그들의 필요를 알아차리는 것. 이 방식이 더 선진적이고 인간적이고 지혜로울 때가 더 많다.


#1분 이야기 숙고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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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_치유

#명상인류로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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