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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Jun 13. 2024

손을 잡는다면

인생학교에서 그림책 읽기


홀로 무엇을 하리 / 관희


이 세상에 저 홀로 자랑스러운 거

무어 있으리

이 세상에 저 홀로 반짝이는 거

무어 있으리

흔들리는 풀잎 하나

저 홀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서있는 돌멩이 하나

저 홀로 서있는 게 아니다


멀리 있는 그대여


행여

그대 홀로 이 세상에 서있다고 생각하거든

행여

그대 홀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우리 함께 어린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자


밥그릇 속의 밥알 하나

저 홀로 우리의 양식이 될 수 없고

사랑하는 대상도 없이

저 홀로 아름다운 사람 있을 수 없듯

그대의 꿈이 뿌리 뻗은 이 세상에

저 홀로 반짝이며 살아있는 건

아무것도 있을 수 없나니.


관희 시인의 시 <홀로 무엇을 하리>입니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홀로 반짝이는 것은 없다며,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강조합니다. 이 시에서 마음이 머문 곳은 이 대목입니다.


 ‘그대 홀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우리 함께 어린 눈으로 세상을 / 다시 보자.’


시인의 말하는 ‘어린 눈’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아래 있는 연을 보면  ‘밥그릇 속의 밥알 하나 / 저 홀로 우리의 양식이 될 수 없’다는 걸 아는 눈인 것 같습니다. 순수하고 맑은 눈, 이런 눈을 가질 때 우리는 삶과 세상에서 공존의 기쁨과 함께 연결성을 자각하게 됩니다.   


동요 ‘숲 속 작은 집 창가에’는 어릴 적에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한 번쯤 신나게 불러보았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모티브로 독일의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인 유타 바우어가 같은 제목의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제목 또한 『숲 속 작은 집 창가에』입니다. 유타 바우어는 원곡의 통통 튀는 가락은 살리면서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바꾸었습니다. 같은 노랫말로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속 작은 집 창가에서 노루가 밖을 보고 있습니다. 사냥꾼의 눈을 피해 도망쳐온 토끼가 살려달라고 합니다. 노루는 문을 열어 주며 손을 잡으라고 말합니다. 이번에는 사냥꾼에 쫓기는 여우가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합니다. 노루는 여우를 들어오도록 허락한 뒤에 토끼와 손을 잡으라고 합니다. 토끼와 여우, 노루는 곧 친구가 됩니다.  


다음에는 사냥꾼이 노루 집을 찾아옵니다. 사냥꾼은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며 살려달라고 사정합니다. 집안에 있는 동물들은 혼비백산 숨을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노루는 들어오는 걸 허락한 뒤 손을 잡으라고 합니다. 사냥꾼은 기꺼이 토끼와 손을 잡습니다. 노루는 케이크를 준비하고 여우는 사냥꾼과 토끼가 손잡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가까운 사람끼리 손잡는 건 거리낄 게 없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상대라면, 그것도 쫓고 쫓기는 상대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라면 불가능한 주문입니다.


그림책에서는 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현실이 됩니다. 동물과 사람이 손을 잡는다는 행위는 희망을 의미합니다. 악수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관희 시인은 시에서 풀잎 하나 돌멩이 하나도 홀로 움직이지도 서 있지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면 외롭지 않습니다.


그림책명상 세션에 참여한 분들은 ‘손을 잡으렴’ ‘손을 잡아요’라는 대목에서 마음이 멈췄다고 합니다. 손잡을 일이 없는 동물과 사람이 손을 매개로 하나 되는 장면은 감동이라는 말과 함께.


지구라는 전체 속에서 우리는 작은 개체에 불과합니다. 개체의 삶은 전체와 분리되어 살아가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구의 변화가 우리네 삶의 풍경을 바꾸고, 우리의 행위가 지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계곡물로 비유하면, 계곡물은 바위를 만나면 솟구치고, 여울을 만나면 고요해지고, 절벽을 만나면 폭포를 이룹니다. 물의 모양새는 조건과 상황에 따라 바뀝니다. 그 모양새를 보면 제각각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계곡물 차원에서 보면 다 똑같은 물입니다. 한 흐름의 물줄기입니다. 여기선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약한 것도 강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계곡물을 이루는 요소일 뿐입니다.


지구와 지구 안에 살아가는 우리도 동물도 식물도 생물도 무생물도 이와 같습니다. 토끼와 여우, 사람은 엄연히 다른 개체이고 각기 다른 삶의 패턴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이 속한 터전에서 나름의 삶을 일궈 나갑니다. 그렇지만 자연의 품 안에서 보면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언제라도 손잡을 수 있습니다.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갈등멈춰질 겁니다. 로가 하나임을 자각할 때,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때 용서하고 껴안게 됩니다.


마음이 상해 관계가 소원해졌다면 다가가서 그 사람의 손을 잡아 보세요. 맞잡은 손에서, 화해의 기적이 손짓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계곡물처럼 하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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