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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Jul 16. 2024

뜻하지 않은 인생 선물

지금, 여기


파주에 이름난 식당이 있습니다. 오전에 문을 열어 점심 지나 2시경에 문을 닫습니다. 그날의 음식 재료가 떨어져서도 그렇지만, 주인장이 세운 나름의 규정이 있어서입니다.  


음식 메뉴도 대여섯 가지에 불과하고, 오늘의 메인 메뉴 외에 소박한 단품 요리가 전부입니다. 메뉴는 매일 바뀝니다. 주로 인근 오피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단골고객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 늦게 도착하면 자리가 없습니다. 부지런을 떨어야 식사할 기회가 주어지는 식당입니다.   


음식 맛은 소박하고 담백하며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디저트로 제철 과일을 식당 한 구석에 준비해 놓았습니다. 원하는 대로 가져가서 먹어도 됩니다. 주인의 센스입니다.


하루는 날을 잡아 지인과 식당을 찾았습니다. 근처에 주차하고 건물에 당도하니, 아뿔싸, 쉬는 날입니다. 동행한 지인에게 식당 자랑을 잔뜩 늘어놓은 터라 쉬는 날이라는 을 보자 낭패감이 몰아쳤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네요.”

“그러게요.”

둘은 웃고 말았습니다. 차를 돌려 나오면서 물었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딱히 짚이는 곳이 있었지만 확인차 물었습니다. 지인은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오늘은 그대의 일정에 맞추겠습니다.”


근처에 있는 오리구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몇 분을 가던 중에 어죽 파는 곳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물었습니다.

“점심으로 어죽은 어떠신가요?”

동행은 흘깃 간판을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좋지요, 요즘에 딱이겠는데요.”


그렇게 합의가 되어 오리구이 집으로 가려던 마음을 바꿔 핸들을 돌렸습니다. 어죽 식당은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15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주인장의 말을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판을 보았습니다. 메인 요리는 어죽이고, 두 개의 곁들임 음식이 사이드 메뉴였습니다. 놀란 것은 가격. 전에 먹던 어죽은 웬만한 코스 요리 가격과 비슷했는데, 이곳은 그에 절반쯤 되었습니다.   


순번이 되어 자리에 앉았습니다. 바로 나온 어죽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큰 그릇에 담겨 나올 줄 알았는데, 매운탕처럼 냄비에 담겨 끓여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맛. 어죽 특유의 비린내가 없었고, 맛이 칼칼하고 감칠맛이 났습니다. 국자로 연신 어죽을 푸면서 어죽의 구수한 맛에 감탄을 했습니다. 청양고추를 넣으니 입안이 얼얼하면서 더운 기운이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뜻하지 않은 선택에 5점 만점에 5점을 주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계획한 대로 되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이 더 자주 일어납니다. 그 때문에 실망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을 탓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뜻한 대로 되지 않기에 일상이 흥미진진해질 때가 있습니다. 파주의 식당에서 정갈하고 소박한 식사를 꿈꿨지만 쉬는 날이었기에 어죽 집으로 발길을 돌린 것처럼. 만약 가려고 했던 식당이 정상 영업을 했더라면 어죽은 언감생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삶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심심할지 모릅니다. 반대로, 생각지 않게 일어나는 돌발적인 사건들을 기쁘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다채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뜻하지 않은 어죽을 맛본 것처럼. 그런 기쁨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우리 영혼의 건강에 필요합니다.


*숙고명상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 짜증 나고 괴로운 적이 있는가? 이럴 때 역으로 생각하여, 그 덕분에 상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다고 받아들이면 어떨까?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피드백으로 여기고 배움으로 받아들이면 삶은 고마워해야 할 일로 넘치는 생생한 현장이 되기도 한다. 수용이 곧 현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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