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 원짜리 야매 사주카페에서 엿본 내 운명
스무 살은 바쁘다.
열아홉에서 고작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할 수 있는 건 많아지고 아는 사람도 원래의 두 배는 더 늘어난 것만 같다. 새로운 세계가 나날이 펼쳐지는 흥미롭고 혼돈 가득한 시기.
200X년, 스무 살의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사회인이 된 지금이야 몇 달에 한 번 만나는 친구는 그리 오랜만이라 하기도 민망하지만, 매일 보던 친구를 몇 달만에 만나다니?! 스무 살에게 이건 있을 수 없는(하지만 바쁘고 멀어서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일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쯤, 멀리서 서로를 알아보자마자 돌고래 소리를 내면서 서로를 향해 뛰어갔던 우리였다.
우리는 강남역에서 만났다.
수도권 작은 동네에 살던 우리는 어른이 되어 지하철 타고 몇십 분 거리 강남역까지도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생활 반경이 넓어졌다.
5천 원이 넘는 식사도 아무렇지 않은 척, 눈 딱 감고 지불할 수 있을 정도로 씀씀이도 커졌다.
급식 먹고 후식으로 매점에서 가끔 사 먹던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까지가 그 애와 함께하는 식사의 전부였는데 낯선 장소에서 낯선 동선으로 식사를 하니 묘한 기분이 들고 괜히 어색한 느낌이었다.
밥을 먹고서 친구는, 당시 유행하던 사주를 한 번 보자고 했다.
강남역 CGV 주변엔 사주며 타로며 점을 봐주는 주황색 작은 포장마차들이 즐비했다.
웬 사주? 전혀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콘텐츠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스무 살 혼돈의 시기에 앞으로의 삶을 점쳐보는 것도 재밌겠다 느껴졌다.
그래, 한 번 가보자. 그런데…
- 어느 집을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왠지 분위기가 무서워.
- 그러면 사주카페도 있어. 거긴 음료도 주고 좀 편할 거야.
그렇게 가게 된 사주 카페. 생소한 업장에 붙는 카페라는 말은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어느 낡은 건물의 2층에 위치한 침침한 곳이었다. 녹색 계열의 인테리어가 십수 년 전 어린 내 눈에도 촌스럽게만 느껴졌다.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사주 가격은 7천 원, 밥값만큼 비쌌다.
대신 음료를 주니까… 엉터리는 아니면 좋겠다는 걱정을 하며 아이스초코를 주문했다.
작은 테이블 위에 싸구려 휘핑크림이 가득 올라간 아이스초코가 나오고, 나와 나란히 앉은 내 친구 앞에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앉았다.
조금은 사무적인 말투였지만, 왠지 사기를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지배한 내 말투가 더 딱딱했다.
그는 내 이름의 한자와 생년월일시를 물었다.
신점과 사주도 구분 못했던 나는 속으로 “그것도 몰라요? 맞춰보세요!”라고 하고 싶었는데, 일단 속아보는 마음으로 차분히 알려주었다. 모범생 기질은 졸업해도 변하지 않는 법이었다.
내 이름의 한자는 어려웠다. 아저씨는 내 이름 가운데 한자를 몰랐다.
이거, 한자를 몰라도 제대로 볼 수 있긴 한 거야? 조금 불안해졌다.
아저씨가 책을 뒤져가며 뭔가 열심히 계산을 했다. 나는 아저씨가 눈을 까뒤집으며 나의 미래를 술술 읊을 줄 알고 쫄아 있었는데, 조금 김이 샜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네요?
역… 역마…? 문학 시간에 배운 김동리의 그 역마가 생각났다.
역마살이 끼면 떠돌이 삶을 살게 된다던데… 그게 내 사주에 있다고요?
당황스러워하는 나에게 아저씨가 말했다.
- 역마살 있으면 한 자리에 진득하니 있지를 못해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죠?
- … 아니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삼이었던 애가 어딜 돌아다니겠어요.
학생이어서 뿐 아니라 난 어릴 때부터 타고난 책벌레로서, 방구석에서 책을 읽거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 전공이 뭐길래? 좀 돌아다니는 걸 직업으로 택해야 할 텐데.
내 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코딩하는…
- … 컴퓨터공학이요.
약간 당황한 듯한 아저씨가 한 말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 뭐… 컴퓨터도 전기가 돌아다니는 거니까… (긁적)
.
.
.
돌팔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엉터리다- 라는 촉이 강하게 오는 순간이었다.
뭐? 전기가 돌아다녀?
그래서 역마살이 있지만 뭐 괜찮다는 건가?
굉장한 발언을 들은 나머지, 그 후에 아저씨가 해 준 이런저런 얘기들은 스치듯이 흘러가버렸다.
그저 그런 경험 한 번 했다 치고 친구랑 같이 밖으로 나와선
말도 안 된다, 안 맞는다 뭐 그런 아저씨가 다 있냐 후기를 나누며 길을 걸었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고 역마살이 있다 그래?
하나도 안 맞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역마살이 진짜 있었다…?
스무 살 어린 시절엔 아직 몰랐던 것이었을까.
아저씨가 봐준 사주는 나름 열심히 분석한 것이었던 것 같다.
역마살이 진짜 껴있었다는 사실을 사주 앱을 다운받아서 생년월일을 넣어보고서야 알았다.
불과 몇 년 후에,
집에 있으면 좀이 쑤셔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시간만 나면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한가할 때마다 지난 여행 사진을 곱씹어보고
너무나도 여행을 사랑하게 될 거란 걸 아저씨는 미리 알았을까?
아니면 나 스스로 역마살이 있다는 나의 운명을 받아들인 것일까.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종일 코딩하는 일을 하지만,
머릿속은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고 있는 나.
어쩌면 나 혹시 직업을 잘못 선택해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