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거리를 오간다.
바람이 불고 신호등 색깔이 바뀐다.
차가 달리고 경적을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가 출발하며 가속을 할 때 내가 앉아있는 버스정류장의 바닥이 울린다.
시각과 청각, 각종 오감을 깨어있는 동안 늘 느끼고는 있으나 구름이 낀 듯 희미하게 느껴진다.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고, 백색소음이 뇌 속에 재생되고 있다.
자발적인 생각이 이루어지지가 않는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머릿속을 흘러가는 문장 몇 개를 잡아 글로 쓴다.
마치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절전모드에 들어선 듯, 머릿속 스크린이 칙칙하다.
금방이라도 정신이 떨어져 나가 유체이탈 되어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제3의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실제로 살고 있는 것일까?
삶에 열정적으로 빠져들어서 주도적으로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이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나의 의지도 실제 내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환각이 아닐까?
가끔 멍해질 때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사실 치매 노인이고, 지금 나의 삶은 사실 노인의 회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의 일부가 2070년 어느 할머니의 잠꼬대처럼 흘러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잠에 들면 할머니는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오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나의 삶이 흐릿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인가.
올 해는 일부러 다양한 목표를 많이 세웠다.
좀 더 본격적이고 치열하게 살고 싶어서, 그리고 흘러가는 인생의 줄기를 살짝 틀어볼까 하는 마음에서다.
불태울 수 있는 열정이 아직 내 젊음 안에 남아있길 바라며 이런저런 계획을 가득가득 채워놓았다.
아직 작심삼일은 잘 지키고 있는 상태로 영어공부며 운동이며, 계획을 적당히 따르고는 있다.
하지만 공부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 영어단어를 아무리 외워도 뇌에서 받아들이는 양은 현저히 적었다.
도저히 발전하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아직 새해로부터 1개월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발전을 얘기하기에 시기상조일 수는 있겠지만)
삶으로 다시 딥 다이브 하는 방법은 뭘까.
운동을 해서 몸을 고되게 하면 좀 살아있는 느낌이 날까?
활력을 채울 수 있는 영양제라도 먹으면 괜찮아질까?
병원에 가서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감정을 표출시킬 수 있는 자극이라도 줘야 하려나?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해 온 무기력은 지긋지긋하게도 먹구름처럼 정신 여기저기에 끼어
오늘도 나를 무겁고 느리게 만든다.
마치 이건 다 꿈이라는 듯이, 뿌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