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에서 우버 몰았던 이야기
처음 우버를 시작했던 날은 마냥 신기했습니다. 얼마나 그 짓이 신기했으면 그 기억을 이렇게 글로 남겼었으니깐요. 2,000번 정도 하니깐 온갖 환멸만이 치밀어 오릅니다. 2,000번 정도 하면서 정말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만났습니다. 토론토는 이민자의 도시라서 정말 다양한 인종까지 맛볼 수 있었습니다. 터키와 시리아 사이에서 박 터지고 있는 쿠르드족도 만나 볼 수 있었고. 티베트인 이지만 행정구역상은 인도 어느 히말라야 산골 출신 진짜 “난민”도 만났습니다. 어떤 손님은 흑인이었습니다. 전화하고 있었는데 타자마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와 같은 언어로 “응, 언니 차 탔어. 금방 봐~”라고 합니다. 한국말 하는 게 뭐 대수겠습니까? 그만큼 토론토는 인종의 용광로 같은 곳.
문제는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이라고 쓰고 개진상이라고 이해한다)을 만날 수 있다는 겁니다. 고객 서비스가 필요한 업종이니 철저하게 나는 을입니다. 캐나다라고 뭐, 갑질 없나요? 있습니다. 인종 구분 없이 다 있습니다. 단, 그 정도의 차이는 분명 사회마다 있겠지요? 그 정도의 차이를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캘거리로 이사 왔습니다. 처음 손님을 이름과 얼굴까지 기억하는 것과 다르게 토론토에서 마지막으로 태운 손님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마지막 손님을 태우기 전전 손님의 에피소드는 기억이 납니다. 에피소드라는 말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늦은 밤, 꽤 괜찮은 이태리 식당 앞에 차를 댑니다. 평점을 보니 5.0 만점에서 4.3점. 아, 개진상입니다. 그냥 취소하고 다른 콜을 기다릴까 하다가 이곳 손님들은 대개 장거리가 많아 돈 욕심에 그냥 기다립니다. 나오지 않습니다. 3분 동안 기다려도 안 나오면 저는 약 4.5불의 수수료를 받고 콜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취소하려는데, 제 또래 여자 두 명이 걸어 나옵니다. 내 창가 옆으로 서더니 손짓으로 창문을 내리랍니다. 내렸죠. 자기가 담배를 하나 피워야 하니 기다리랍니다.
피곤하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아마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나쁜 마음이 한 톨 씨앗처럼 심어졌을 거에요. 나는 기다리겠다고 하고 씩씩대기 시작합니다. 이들, 담배를 피우더니 내 차에 탑니다. 내가 듣고 있던 음악을 끄고 라디오를 틀라, 뭐를 해라 아주 요구 사항이 많습니다. 악마의 씨앗은 벌써 떡잎이 올라왔습니다.
차가 고속도로로 막 진입하는데, 이들이 또 음악 가지고 시비를 겁니다. 니 음악은 지루했다 등등.. 나는 아마 이 상황을 100% 예상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이 이들을 태웠을 겁니다. 고속도로였지만 나는 비상등을 키고 갓길에 급정거했습니다. 고백하자면 일부러 브레이크를 더욱더 힘차게 밟았습니다. 내려라, 너 같은 것들 태우기 싫다. 찰나의 순간. 갑과 을이 바뀌는 상황입니다. 밖은 영하 10도. 다시 우버를 잡기에는 고속도로 위라서 잡을 수가 없을 겁니다. 그들의 옷은 얇습니다. 걔 중 그나마 덜 취해 보였던 손님이 사정합니다.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옆의 여자는 계속 시시비비를 따지려고 하지만 그 태도와 자세는 30초 전보다 무척이나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듣기 싫습니다. 지금부터 한마디만 더 지껄이면 너네는 아웃이라는 경고와 함께 다시 차를 출발시켰습니다.
그들을 내려주고 한적한 곳에 차를 정차하고 방금 전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나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30분 전의 나는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나름 16개월의 우버질에 따른 경험으로 이런 진상들이 차에 타면 어떻게 하면 할지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 손님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던 예전과는 달리 다음 달 캘거리로의 이주가 확정되어 있던 나는 내가 손님에게 더 잘 대해 줄 필요가 없음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런 나쁜 마음을 품고 그들을 태웠습니다. 이미 가슴속엔 증오의 씨앗을 심었던 거죠. 그리고 차를 정차하고, 남자라는 나의 동물적 지위와 나의 자동차라는 것을 무기 삼아 갑질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 씨앗이 자라나 떡잎이 돋아났고, 엄동설한의 고속도로 위에서 꽃이 활짝 핀 거죠.
집에 오는 길에 집 가는 방향의 손님 한, 둘을 더 태웠습니다. 그들의 타고 내림을 메마른 감정으로 지켜보다가 결심을 했습니다. 오늘부로 우버는 그만해야겠구나. 2,000번의 우버질. 16개월을 하면서 1, 2주 빠진 것 말고는 정말 꾸준하게 주 20시간 이상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분노의 갑질을 즐기고 싶어 하던 나를 발견한 어느 그 겨울 날, 나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글을 기점으로 지난 2,000번의 토론토 우버 드라이버의 삶을 더 적어보고 싶군요. 좀 더 낭만적으로 말하자면, 캐나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치는 어느 한 가장의 삶일 수도 있겠습니다.